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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미술실 - 언어도 국적도 묻지 않는 우리들의 작은 교실
아이보리얀 신경아 지음 / 차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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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



우연히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종 분야를 섞어가며 책을 빌립니다. 좋아하는 건 그림이 많은 책, 글이 짧은 책입니다. 하지만 줄글 책들을 일부러 더 많이 빌립니다. 글자들로만 빼곡한 책을 읽다 지치면 그림책, 살림책 같은 것을 읽는 식으로 하려고요. 이 책은 그 경계에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이지만 줄글 책이었어요. 


저에겐 여섯 살 딸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랄 수록 공교육의 한계, 사교육의 범람을 근처의 사람들과 언론을 통해 학습하듯 알아가고 있어요(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서도 한 테이블 걸러 한 테이블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학원을 보낼지, 대기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하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이 일찍이 세상의 한계를 짓지 않도록 공교육이 다시 힘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이 생각을 하고 있기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입이 있어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제 생각을 떠들고도 있습니다. 네 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이니 일반유치원이니를 고민하는 것부터,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되는 학원 라이딩, 여섯 살 때 본격화 되는 학원 스케줄링, 일곱 살이 되면 빈틈이 없어지는 사교육 시간표를 보면서 이것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인지 부모가 해주어야만 하는 의무인지 자꾸만 의문을 가져보자 하는 거죠. 


대개의 부모는 비슷한 답을 합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나도 그렇게 이상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 역시 경쟁 사회라는 프레임 안에서 아이들이 휩쓸려가지 않도록 아이를 지키는 부모의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딱 거기까지 였어요. 공교육을 부족해 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아이들만 보였습니다. 한글을 다 때고 학교에 온 아이들 사이에서 8살까지 한글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나머지 공부 격으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며 가르쳐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제야 공교육은 그런 것이다, 교육의 소외를 만들지 않고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라고 했을 뿐이었어요. 


세상이 다 ‘이 정도’ 수준의 아이들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안산에는 저는 모르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드문드문 다문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아주 피상적으로만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모국을 떠나와 겪을 감정과 상황을 피부에 닿게 느껴보지는 못했거든요.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서 온 친구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많이 울었어요. 그곳에서는 한국에 오는 게 꿈이며, 부모님은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밤낮이 없이 노동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160년 전 이방으로 떠난 후 160년이 지나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후손들이 겪었을 시간이 막막하기만 한 아이들의 한국어 수업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곁에 있고,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처럼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왜 우냐고 물었을 때, 니가 곁에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내 나라의 것이라는 것이 행복해서 운다고 말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대’를 나온 우리나라 최고의 기득권을 가진 저자가 이토록 낮은 곳에서 낮은 곳에 흐르는 물과 같은 교육을 이끌었다는 사실이 뭉클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좇아 위로 더 위로 올라가고만 싶어하는 세상에서 낮은 곳을 굽어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책 읽기를 시작은 하지만 프롤로그부터 목차, 에필로그까지 글자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읽은 책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부록으로 담긴 아이들의 미술실 풍경까지 정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습니다. 중간 중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무엇일지, 어떻게 미술실에서 티 파티를 벌일 수 있었는지, 검은 판 위에 그린 세계의 음식들은 어떨지 궁금했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유튜브를 찾아보려고 애써 아껴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이 책 안에서 곧장 펼쳐지니 얼마나 기쁘고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책의 구성 자체가 출판사와 저자의 깊은 애정 속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1장에서 저자가 느낀 당혹감에 공감하고, 2장에서 눈물을 쏟고, 3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응원을 하며 책을 마치고 나니 눈물을 닦아낸 휴지와 한 번도 쉬지 않고 써내려 간, 감상문이라고 하기엔 도무지 부끄러운 글이 남았네요. 


뭐랄까, 대한민국의 학부모이자 국민으로서 이런 일들을 해내신, 그리고 이 과정을 책으로 엮어내신 저자 분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응원할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이렇게 감상문을 쓰는 일이었네요. 소박한 응원이지만 저자님 아니 선생님의 고단한 하루에 한 순간의 미소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이 이 책을 읽어 보셨으면 하는 과분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아직 많이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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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건 처음입니다
미즈노 마나부 지음, 고정아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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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은 루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직장 생활에 꼭 필요한 루틴을 쉽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책. 그 ‘제대로 된‘ 방법을 몰라서 나는 지금까지 힘들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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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리더는 반드시 답을 찾는다 - 까다로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통합적 사고법
로저 마틴.제니퍼 리엘 지음, 박세연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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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충분히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책! 조금 어렵긴 하지만, ‘통합적 사고‘를 잘 익히면 의사결정뿐 아니라 기획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한 번 더 읽어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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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트렌드 X - 향후 10년,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특별한 1%의 법칙
마크 펜.메러디스 파인만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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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트렌드서를 봐왔지만 이 책만큼 재미나게 미래를 꿰뚫는 책은 처음이네요~ 책 속 50가지 트렌드가 가져올 파급력만큼은 전혀 ‘마이크로‘ 하지 않을 듯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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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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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읽히는 소설

 

― 마누엘 푸익, ‘거미 여인의 키스’

 

 

 

 

 

 

책을 펼치자마자 대화문이 끝나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게 되는 소설. 때문에 소설이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었나를 고민하게 한 소설. 표범여인은 있는데 대체 누가 거미여인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 발렌틴의 말인지, 몰리나의 말인지 자꾸만 되돌아가 읽게 만드는 소설. 지금껏 길들여진 소설의 형식이랄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듯 자유분방한 소설. ‘색, 계’를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내게는 영원한 ‘이한’일 김남길의 ‘후회하지 않아’를 떠올리게 하던 소설. 1부를 힘겹게 끝내고 2부에 들어서서야 겨우 속도가 붙는 소설. 새벽 네 시, 소설을 모두 읽고 난 뒤에도 거침없는 여운으로 잠 못 들게 한 소설. 내게 있어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는 대략 그러했다.

 

 

소설 속에서 몰리나는 6편의 영화를 ‘들려’준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 몰리나와 발렌틴이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이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것은 “여기에 갇혀 있는 동안 미치지 않으려면, 이것처럼 멋진 일을 생각하는 것 빼고는 할 일이 없”으며, “내가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좀 내버려둬 달라는 말이야. 내가 더 이상 현실을 비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범여인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맹수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여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현재 곁에 있는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러한 복선은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웨이터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 대사로도 나타난다. “내 진짜 이름은 비제의 여주인공인 카르멘이라는 것” 카르멘이 돈 호세를 몰락시킨 팜므파탈이라는 점에서 2부에서 제시될 몰리나의 배신의 복선을 차차 만들어 가는 것임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영화는 발렌틴과 대비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마키단에게 배신을 저지르는 여가수 레니와 청년장교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몰리나와 정치적 입장에서 질 나쁜 영화라고 매도하는 발렌틴을 통해 몰리나의 여성성과 발렌틴의 남성성을 대치시키며 정치범인 발렌틴을 자극하려는 목적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총에 맞아 죽는 레니는 2부 15장의 총에 맞아 죽는 몰리나의 모습과도 중첩된다.

 

 

세 번째 영화는 발렌틴에겐 들려주지 않은, 몰리나만의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결함이 있는 두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승화되어 갈 것인가에 대해 보여준다. 그들이 빛의 세계로 나왔을 때 받은 상처에 대해 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행복하게 보냈던 저 여름이 왜 그토록 매혹적이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들은 서로를 아름답게 보았던 것이오. 당신들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람들이오. (중략) 당신들이 서로의 육체를 쳐다보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장님처럼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게 한 것이오.”

 

 

이 부분은 수감 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는 ‘행복했던 여름’ 동안의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에 대해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정치범에게 정보를 빼내야 하는 입장의 몰리나와 ‘너는 나와 같은 남자’라고 말하는 발렌틴이 서로 교감을 하게 되는 것은 ‘서로를 아름답게’ 보았기 때문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눈’이라는 피상적이고 육체적인 감각을 거부하고, 장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그래, 거기”라고 외치며 두 사람이 관계를 갖는 것은 동성과의 섹스의 수치심 때문만이 아닌 서로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감은 눈’의 시간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네 번째 영화는 상당히 재밌는 부분을 갖고 있다. 몰리나는 여자와 남자가 이별하게 되는 사건, 피상적인 영화의 끝 부분만을 발렌틴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독자는 이탤릭체로 서술되는(나는 이탤릭체로 쓰인 부분을 인물 내면의 독백이라고 생각한다.) 부분에서 영화의 그 이후를 만날 수 있다.

 

 

여자, 청년, 어머니, 아버지, 처녀, 동료에 관한 상황을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 인물에게서 떨어져서 서술한다. 반복되는 어미를 사용해 심경과 사건을 들려줌으로서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화시키고 각 인물들의 상황을 분절시킨다.

마지막 영화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의 정점을 찍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발렌틴은 죽어가면서 이 영화를 재조합하기에 이르는데, 마르타로 등장하는 여자는 몰리나라고 볼 수 있다.

 

 

몰리나는 영화를 들려줄 때 영화 주인공의 이름 대신 여자, 청년 등으로 지칭한다. 영화의 내용은 달라지지만 특정한 캐릭터성은 사라진 지칭으로 인해 마치 다른 영화 속 인물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자나 청년이라는 단어로만 영화 속 인물들이 기억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이는 몰리나의 입을 거쳐서 나오는, 몰리나의 주관적인 판단을 거쳐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몰리나는 이야기를 하다 끊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부풀려 이야기하기도 한다. 몰리나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조합되거나 덧붙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이야기다.

 

 

이 영화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하나의 공통점이 도출된다. 그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이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는 결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랑은 태생적인 것(표범여인), 정치적 상황(나치), 외모적 결함, 처한 세계(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심지어는 주술적인 부분(좀비), 돈이라는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하지만 배신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거나, 이별을 종용 당한다.

 

 

스크린, 아니 정확히는 몰리나의 머릿속의 인물들의 비극은 현재 감방에 갇힌 이 두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이들 역시 행복한 결말을 맡기에는 영화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삶을 닮은, 영화의 삶보다도 훨씬 비극적인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 삶을 집합한 듯한 두 사람은 16장에 이르자 몰리나가 들려준 모든 영화가 발렌틴의 무의식 속에서 재조합 된다. 몰리나가 나름의 ‘편집’을 가했던 영화 속 이야기를 ‘재편집’하는 발렌틴의 모습은 그것이 어쩌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을, 그들만의 교감 방식으로 변화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너도 나와 같은 몸을 가진 남자’, 자신을 여자라고 지칭하는 몰리나를 향해 ‘거기서 여자는 너야?’라고 묻던 발렌틴조차도 몰리나의 여성성을 인정하고야만 부분이 바로 몰리나를 ‘거미여인’으로 명명하는 부분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다 가늘고 힘이 없는 거미줄, 그러나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은 처음엔 위협적이지 않지만 덫에 걸린 뒤에야 그것이 덫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투명한 감옥이다. 발렌틴에게 있어 몰리나는 감옥 속의 또 다른 감옥이며, 가장 편안하고 매혹적인 덫이다. 발렌틴은 결국 덫에 걸린다. 그가 덫에 걸리게 되는 순간은 다름 아닌 키스.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곤충은 희미하고 가는 줄에 꽁꽁 묶여 결국 잡아먹힌다.

 

 

거미줄도 덫이거니와 암컷 거미는 자체로도 위협적이다. 암컷 거미가 교미 후 수컷 거미를 잡아먹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생식을 마친 후의 암컷 거미는 수컷을 그저 새끼들을 위한 영양분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비정한 거미의 습성인 것이다.

 

 

이러한 거미의 교미를 통해 성은 곧 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섹스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오르가즘이 무아의 지경에 도달한다고 해서 오르가즘은 프랑스어로 ‘작은 죽음’이라고 풀이된다. 서로를 위험하게 만드는 접촉, 섹스가 일종의 죽음이라는 것에서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생식을 목적으로 한 비정한 암컷 거미에 비해 몰리나의 경우 그보다 더 비정한 인간의 손바닥에 거미줄을 친 가엾은 암컷 거미라는데에서는 좀 차이가 있다. 언젠가 손이 다물어지는 순간 위압적인 힘에 의해 파스락 소리와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다라는 점에서.

 

 

감추어야 하는 발렌틴과 그것을 드러내도록 만들어야 하는 몰리나 사이에는 편지와 볼레로만큼의 간극이 생긴다. 그러나 나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의 짐”이며 이런 정보로 네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던 발렌틴이 “난 너를 믿어. 너도 날 믿지?”로 변화하는 동안, 그들의 유대관계는 처음의 것과 달라진다. 사경을 헤매는 발렌틴에게 마르타는 당신이 내게 숨기지 않는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비밀이 없을 때에만” 너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도착한 편지가 영화 속의 볼레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조직의 활동내용을 감춰서 전달하는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를 묻기 위해 쓰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비록 그 내용은 거짓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표현에 있어서 볼레로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요지다.

 

 

집권세력에게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투쟁’과,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죽음으로 되갚아지는 ‘사랑’은 양 쪽 모두 들켜서는 안될 금기라는 점에서 맞닿는다. 금기와 금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투쟁의 실현은 몰리나에게로, 냉소적이던 발렌틴에게로 두 사람의 금기는 교차한다.

 

 

몰리나와 관계를 맺은 이후 동료와 투쟁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며 몰리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냈다고 생각한 발렌틴에게도 가장 두려운 질문은 바로 ‘사랑’이다.

 

 

마르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거야! 이 말만은 당신에게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것을 물어볼지 몰라 두려웠고, 그러면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어

 

 

발렌틴이 질문을 두려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몰리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의 내지는 그녀의 질문을 받아들여 그것에 일일이 답을 하는 순간 투쟁의 금기도, 마음의 경계도 허물어져 내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마치 ‘잘못 잠긴 수도꼭지’처럼 자신이 모조리 새어나갈까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발렌틴에게 있어서 최고의 금기는 ‘사랑’이다.

 

 

그리고 금기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거미여인의 키스’는 금기에 관한 기록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너무 느긋하게 준비하다 보니 못 다한 이야기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과 지나치게 느긋했던 내 자신을 탓하면서 커다란 입 두 개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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