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비뚤어진 근대화와 기반 없는 모던의 추종


1920~30년대에 자본주의 쇼윈도는 모던걸․모던보이들이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유혹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소비자는 그 유혹에 화답하기 힘들었다. 경성에는 그만큼의 수요욕구를 감당할 자본기반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 사람들은 ‘모던함’을 계속 추구했고 이는 외형적 화려함에 가려지지 않는 병폐를 낳았다.


이 책은 석영 안석주의 만문만화를 통해 당시 조선의 불안정한 모습을 살피고 있다. 만문만화란 글자 그대로는 흐트러진 글과 난잡한 그림을 뜻한다. 말풍선으로 인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반 만화와는 달리, 만문만화는 풍자적이고 우회적인 말투의 서술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일제의 검열과 사상 탄압을 피하면서 당대 상황을 나타내고자 했기에 만문만화라는 장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산책자’로서 근대도시 경성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안석영의 시선은 주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소비에 비해 생산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도시 경성은 그 기형성으로 인해 새로운 수요창출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의 모던걸․모던보이들은 백화점에서 치장을 하고 카페에 앉아 ‘다이스키’를 연발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왈츠를 추는 것을 즐겼다. 안석영은 이러한 경성 도심에서 근대적 인간들과 그들의 타락한 공간을 발견한다.


이러한 기반이 없는 수요와 모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핸드걸’이나 ‘스틱걸’같은 비윤리적인 사회현상을 낳았다. 모던걸은 겉으로는 값비싼 구두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가난에 희생되어 거리에 몸을 팔러 나가는 인텔리여성이었던 것이다.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찬어요.’라고 외치는 모던걸의 모습도, 무산계급과 유산계급간의 갈등의 심화도 미성숙한 근대화와 불안정한 기반에서의 수요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사실을 비틀거나 과장해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예를 들어 안석영의 만문만화에서 부르주아의 모습은 보통 짧은 다리를 가진 정삼각형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과 안정된 모습을 뜻한다. 늘씬한 모던걸의 모습은 텅 빈 머리로 유행과 사치만을 추구한다는 해석에 이를 때 짧은 다리에 비대한 모습으로 희화화된다. 가냘픈 몸매에 화장을 한 모던보이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고급 양장을 입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나오는 모던걸의 모습과 기름때 묻은 월부 양복에 고급 넥타이를 맨 모던뽀이의 모습은 사치스런 양태와 초라한 식민지 조선 현실 사이의 괴리를 잘 설명한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상징적인 그림과 글의 인용을 통해 당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잘 표현했다. 각 만화가 신문에 연재되었던 덕분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기에도 용이했고, 지은이의 해석과 설명은 자칫 지나칠 수 있었던 부분들까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만문만화를 인용할 때 당시의 문법과 어투를 그대로 사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전체적인 주제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해도, 장을 넘나들어 반복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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