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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추천사를 이슬아님과 최혜진님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여름의 피부'는 나에게 그린 라이트.
나에게 어떤 색이 좋냐는 질문을 하면 나는 머뭇머뭇하며 말한다, 그레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그레이가 주는 느낌은 우울함이니깐, 그건 내 속마음을 들키는 기분이니까
띠지의 문구가 마음에 들어온다.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내는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
그럼 블루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 마음도 조금은 청량해졌을까?
책을 덮고 나니 내 마음의 그레이는 베이지가 살짝 섞인 따뜻한 그레이가 되었다.
나보다 10살 어린 90년생 작가가 쓴 이야기에 꼭지마다 공감, 또 공감했다.
작가도 나랑 비슷한 과구나.
아니 사람은 모두 다 나 같은 면이 있구나.
그래, 마음이 그레이 빛깔이라고 나쁜 건 아니야, 위안이 된다.
p82
연남동에 '북향'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이름이 단정하게 적힌 간판이 달려 있고 늘 의자 한두 개가 바깥에 나와 있던 곳. 좁은 공간에는 테이블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 앉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게끔 책장으로 낮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10평 남짓한 카페는 어쩐지 독서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얇은 커튼을 쳐둔 실내는 약간 습하고 눅눅했다. 날씨가 어떻든 그곳은 조금 흐렸다.
북향의 주인은 그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환영했다. 그렇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북향에 주로 공부를 하러 갔다.
p85
직사광선으로 쏟아지는 빛은 어떤 그늘도 허락하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이 모두 집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자주 불안해했고, 드라큘라 마냥 블라인드를 내리고 지낼 때가 많았다. 북향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하다. 세상이 어떻든 상관없이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다. 뜨거운 여름 어느 건물의 차양 아래 있는 듯, 세속에서 비켜나 유배지가 있는 듯. 북향의 그런 서늘하고 무심한 기운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창백한 빛 속에서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풍경이 숨겨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 편이다.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영화는 집 '안'에서의 이야기가 많은 영화다.
책에서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실내 화가'라고 하던데 그럼 내가 좋아하는 집 '안'에서의 스토리가 많은 영화는 '실내 영화'라고 불러도 될까?
책 안의 여러 작품 중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 그림을 하나만 고르라면 보나르의 <전원의 다이닝룸>이다.
이 작품을 보고 머릿속에서 겹친 영화 <첫사랑>
손때묻은 원목 가구들과 원색의 페인트칠,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작가가 사랑했다던 카페 북향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도 떠오른 이미지와도 겹친다.
저런 느낌의 카페가 내 주변에도 있다면 그곳이 나의 아지트가 되지 않았을까.

블루라는 컬러에 매이지 않고 책을 읽었다.
고전 위주의 작품을 설명한 미술 관련 책이 아닌 1800, 1900년대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훨씬 더 작품을 그린 작가들의 일생과 공감하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이야기,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이야기, 작품이 잘 섞여 있어 영화 보듯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여름에 읽은 <여름의 피부>가 내년 여름에도 생각날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