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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20대 임용고사를 준비를 위해 시립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절
가끔 머리 터질 듯이 무거워지면 자료실에 들러 책을 '구경'하곤 했다
읽지 못하고 '구경'만 했던 이유는 수험생에게 독서는 사치였으니깐
공부할 시간에 수험서 아닌 책을 읽는 건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 선택이니까
소설 부분 코너를 둘러보다 눈에 들어온 <웨하스 의자>
'책 제목이 너무 이쁘다'
꺼내어 봤지만 책을 읽지는 않았었다
그 이후로 닉네임을 정해야 하는 때 가끔 '웨하스 의자'로 닉네임을 정하곤 했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30대에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타워>를 영화로 보고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게 됐고
40대에 그녀의 단편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개정판을 읽게 됐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고 나니 얼마 전 방구석 1열에서 소개해 준 영화 <최선의 삶>이 머리에서 겹쳤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여고생 3명이 겪는 혼돈의 10대 후반의 모습
내 안에 존재하는 수백만 가지의 감정이 들어있는 판도라 상자를 연 것처럼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아이도 어른도 아닌 채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그때
잊고 살았는데 책을 읽으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때의 기억들
쓴웃음이 지어지고, 생각만으로도 창피해지는 그 순간들

마지막 날 시험은 지리와 현대 국어였다. 양쪽 다 비교적 쉬워서, 답안지를 덮어 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시간이 있었다. 맑게 갠, 좋은 날씨였다. 우리 교실 창문으로는 큰길과 가로수와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보인다. 하늘과, 건너편 건물의 지붕도, 교실은 조용하고, 간간이 헛기침 소리와 연필이 스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시험 기간의 교실 풍경은
기간제 교사 시절 중간, 기말고사 기간의 감독을 하던 교실의 모습이다
학생들은 고개를 파묻고 모든 에너지를 시험지에 쏟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한숨 쉬는 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시험이 끝날 시간이 다 되면 시험지 접고 그 사이에 OMR 카드를 끼우고 철퍼덕 책상 위로 엎드리는 소리
그러면서 나는 안심했던 것 같다
'아.... 다행이다, 너희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지만 난 이렇게 힘든 시험 기간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구나'
어렸을 때, 엄마가 아파 누우면 외로웠다. 온 집 안에 우울함이 고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조바심을 내면서도 나긋나긋한 병의 기척을 나는 아주 민감하게 감지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금세 미안해졌다
' 엄마가 수술했던 지난주, 그리고 아파서 많이 누워있었던 올해의 주말들 너도 이런 기분을 느끼며 슬펐겠구나'
이런 눅눅한 느낌의 우울함을 아이에게 더 이상 남겨주고 싶지 않다
엄마의 존재는 참으로 신기하다
엄마가 아프거나, 엄마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우울하면 바로 집안에 도는 기운이 달라지니깐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집에서 중한 존재인 거다
별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10대에는 나도 그랬다
반에 있는 친구들은 화장실도 손잡고 가는 절친과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싫어하지 않은 사람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누군가가 마구 좋아지지도 않은 플랫한 내 감정선
나는 두 손을 엉덩이와 의자 사이에 껴 넣는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손이 시려울 때, 마음이 불안할 때 나도 그런다
손을 의자와 엉덩이 사이에 넣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중심을 찾는 오뚝이 인형처럼 그런다
#소설
#에쿠니가오리
#언젠가기억에서사라진다해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