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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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자꾸만 내가 알던 내가 아닌, 어딘가 어긋나고 바닥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다.

차라리 나 혼자만 아래로 아래로 치닿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자꾸만 주변으로 잿빛 기운을 옮기는것 같아 문득문득 우울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슬픈 마음이 나를 물들이기 시작했는지, 어디서 그 마음은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서 모르고 싶어 끝끝내 외면한건지도 모르겠다. 

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감정의 사춘기는 이틀에 한번 꼴로 나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리와 인간관계, 철학 등 많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나를 이해하고 싶었고, 어떤 형태로든 위안을 받고 싶었기에 나는 집착하듯 책을 읽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던 내게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가 들어왔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책의 제목이 나에게 이미 위로를 건네고 있었거든.


남들이 보기엔 괜찮은 외관들 속의 나는 사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주는 누군가가 나타난 것 같았다. 망설일 시간 없이 읽어 내려가며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나는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외관상 누군가의 분류에 의해서는 정상인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의 마음을 보둠에 준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사랑"이였다.


내과의인 저자가 이 정도의 깊이로 양극성 장애를 공부했다는건 그녀가 딸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간절한 마음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을 살리고 싶은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껴져 의학적 설명부분을 읽는데도 목안이 시큰거리는 기이한 경험을 되풀이하게 된다. 구구절절한 신파가 아니라 더 애달프고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와, 이해받고 싶었던 딸의 입장에서의 위로가 동시에 공존하는 책이다.


이 책은 비단 '사랑'만 주는 책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정신 질환을 대하는 기조에 병폐에 대해 생각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제도적 한계가 높다. 그들이 사회에 포용될 기회와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하다보니 아직도 정신질환은 음지에 머물게 되고, 그로 인해 환자와 그 가족들은 고통과 고립의 진창에서 여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많은 부류에게 읽혀지길 바란다.


저자가 딸의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부딪혀온 지난 시간들을 의료인으로서, 부모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관점으로 서술해 그동안 잘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영역들을 진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므로..


어쩌면 세상에 소위 "정상인"이라는 부류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정상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모두 조금씩 삐뚤어져 있는 사람들일디 모른다.

나 조차도 내 안에 지킬과 하이드가 동시에 공존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의 엄격한 잣대로 주변을 재단하는일도 비일비재하다.

나에게 당연한 그 일들이 누군가에겐 왜 그렇게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들 중 누군가는 나를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준이 많을까, 강박이 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비단 이런 예만 보아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상인이 되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곁을 내어주는 행동이 가진 힘을 새삼 느낀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누군가가 조금 더 곁을 내주었다면 나의 뒤늦은 사춘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곁을 조금씩 내어 준다면, 그들 또한 조금은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가족과 사회로 인해 마음이 힘든 사람들과 또 그들의 회복을 온 마음으로 빌고 있는 가족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음 한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이 작은 다독임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해 색안경을 낀 사람들과 너무 높은 잣대로 그들의 독립에 비협조적인 국가에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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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창비세계문학 55
토마스 만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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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주인공인 샤를로테가 괴테가 거주하고 있는 독일의 작은 마을 바이마를 44년 만에 방문한 실화를 토대로 씌여진 소설로, 괴테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샤를로테와 그녀가 만나는 여러 인물들이 괴테를 중심으로 대화하는 내용들을 서사한 특이한 형태의 소설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샤를로테에 대한 이야기로만 오해할 수 있지만, 글을 이루는 전체 대화들은 결국 괴테의 문학과 생애를 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보자마자 번득 들었던 생각은, 어슴프레 이름만 들어 본 '토마스 만' 이라는 작가의 작품이자, 책 제목 조차 생소한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라는 조합으로 인해 미쳐 읽기도 전부터 이 단어의 조합들이 주는 무게에 눌려 괜시리 마음이 지레 움츠려 들었었다. '너무 어려운 책이면 어쩌지? 읽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이해 조차 못하면 어떻하지? 나 괴테에 대해 잘 모르는데..'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하면 과장이라고 느끼려나..? 


그런데 왠걸, 몇 페이지 채 읽기도 전에 '재밌다!', '끊어 읽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몰입도 높은 내용과 매끄러운 번역의 조합이 이전의 생각들이 기우였음을 금새 깨닭았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3 part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로테가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예상치 못한 여러 인문들의 억지스런 만남을 통해 지난날과 지금의 괴테를 알아가는 부분과 괴테의 개인적인 독백과 일상, 그리고 그 둘의 만남, 이렇게 3가지를 이야기의 큰 골자로 삼고 싶다. 


먼저, part 1의 경우, 

젊은 시절 잠깐이지만 강렬한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를 노년의 나이에 다시 떠올리며 만나고 싶어하는 샤를로테의 설레이는 마음의 묘사는 마치 내가 그녀가 된 듯 오랜만에 두근거림과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다. 젊은 시절의 마음을 나누었던 이들을 잠시 떠올려보게도 하고..^^; 

그리고 괴테와의 생활을 복잡한 애증의 감정으로 끊임없이 토해내는 리머박사를 통해 괴테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밀도 있게 상상해볼 수 있게 해주어 괴테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 보고 싶어짐과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복잡다단한 양가적인 감정을 다측면에서 들여다보며 들려주는 긴 이야기들은 회사에서 어떤 이에게 느꼈었던 나의 감정이 이와 다르지 않았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다음, part 2,

실제 괴테의 생각은 아니지만 토마스 만이 상상한 괴테의 속마음을 통해 작가가 고된 망명 생활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시대관을 얼핏얼핏 엿볼 수 있는 영역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들을 통해 느껴지는 괴테는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권위적인 인물의 전형같아, 타고난 재능에 대한 호감이 다소 반감되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명한 사랑관들이 그의 작품들과 어울어져 기술되는 부분들은 향후 괴테의 작품들을 찾아 읽을 때 배경지식으로 도움이 될 듯하다.


끝으로 part 3,

기대하던 괴테와의 만남이 자신이 원하던 바와 다르게 전개되어 실망과 동시에 무너진 자존심, 또 주인공에서 밀려날 것 같은 불안함이 복합되어 그동안 우아하고 고상하게만 묘사되었던 로테가 '환영'의 괴테에게 격렬하게 감정을 퍼붓는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빼어난 부분이 아닐까 한다. part 1,2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로테의 극단적인 성격변화와 환영의 괴테가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명언들, 그리고 괴테 혹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한 눈 팔 여지 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몰입도를 선사함과 동시에 이전의 로테와 괴테의 모든 대화와 행동들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들어 책을 쉽사리 덮지 못하게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으면 지금 읽은 것과 또 다른 감동과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 그 어느 누구도 평면적이지 않아, 마치 시대와 장소의 배경만 다를 뿐 지금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들과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정말 8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 맞는 건가? 너무나 현대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책이 바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대가, 사회가 달라져도 우리 인간에게는 되풀이되는 경험과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삶의 방향성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을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를 통해 다시금 깨닭게 되었다. 


긴 글을 마무리 하며, 밑줄 그은 문장들 중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글귀들을 일부 소개하며 끝내고자 한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다른 이들은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전을 통해 삶을 재정비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감히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 우리는 시간의 자식들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시들어가고 하강해왔지만, 

   삶과 젊음은 언제나 저 위에 있었고 삶은 언제나 젊었으며 언제나 젊음은 우리와 더불어, 

   인생을 다 살아낸 우리 곁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 인생을 살면서 나이가 드니까 비로소 너무 서두르면 넘어진다는 걸 알겠더군, 

   진짜 영웅정신은 꿋꿋이 견디는 것이고, 죽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야


∨ 자기 자신을 견지하여 삶의 통일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지키는 것은 삶을 쇄신하고

   다시 젊어지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 이별은 기나긴 장이었지만 재회는 짧은 소절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미완으로 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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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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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업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책 답게 프롤로그부터 사용된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그럴테지만, 유난히 세심하게 문장 속 단어들을 고르고 골라, 글에 생기를 부여하기 위해 애쓴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시종하게 느껴진다. 이로 인해 '고르고 고른 말' 을 읽는 내내 다음 페이지엔 어떤 단어들을 골라 배치했을까 기대감마져 생겼다.

 

나이가 들 수록 , 아이를 키울수록 새치 혀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아지는 요즘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내가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온기를 느끼게 하고,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지만, 사실은 가볍게 내뱉은 말들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또 나는 누군가의 의식하지 않은 말들로 인해 힘을 얻기도 하고, 며칠을 앓기도 했던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말들이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졌음을 그녀의 글들을 통해 다시금 깨닭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글이 예전보다 훨씬 깊어지고, 본인의 색을 점점 갖춰가는 느낌이다. 동년배의 공감대를 느끼게 해주었던 그녀의 그간의 글과 그림들이, 시간과 함께 깊이가 더해져 이제는 공감과 위로를 넘어, 그녀가 제시한 주제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이 책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며 한글자 한글자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애쓰며 완독했다.

 

오랜만에 괜찮은 책을 읽었다.

 

그녀가 오래 오래 찾아 읽을 수 있는 작가로 계속 남아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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