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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겨울, ‘신인 작가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문학동네 계간지』에 10여 명에 달하는 신인 작가들의 단편이 실렸을 때,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것은 비단 나만이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신인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이 수록되었을 때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작가들의 단편들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조금 가지 않아 누워서 책을 보는 나를 벌떡 깨우는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였다. 아주 무거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이 소설에 나는 한눈에 반했고,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마음 속 작가 리스트에 올려놓게 만들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우주 비행이니, 발사체 에네르기야니 하는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SF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이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우주비행사 경수에게 옛 애인이자 현재의 친구인 ‘우정’이 새 제품을 맡기고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우정이 남긴 제품은 겉보기에는 돌멩이와 다름없는 제품인 인공존재 ‘조약’이다. “기능성 제품이 아니고, 말하자면 존재성 제품”인 것이다. 기계가 존재를 증명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우정의 자살 이유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경수는 돌멩이의 존재 증명을 위해 골몰하면서 한편으로 우정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우정과 경수는 한 때 연인 사이였지만 현재는 그들의 우정을 쿨하게 인정해 주는 아내와 남편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소울메이트 관계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우정이 신제품을 만들 때마다 경수에게 보여 주며 이해를 바라며, 경수는 우정의 남편이 알지 못하는 우정의 습관마저 알고 있다.
그러나 경수도 우정의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돌멩이를 끌어안고 이렇게 저렇게 존재의 이유를 찾던 경수는 결국 그 존재를 우주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쯤 되면 ‘돌멩이=존재=우정’이라는 도식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인공지능 같은 건가요?”
“아니요. ‘인공존재’라고, 최고의 공학자가 만든 물건입니다. 이건 진짜 예술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쓸모가 하나도 없거든요.”
“존재라, 태생적으로 외로운 물건이군요.”
“네, 외롭게 태어난 물겁입니다.”
“우리만 외롭게 태어난 게 아니었군요. 자, 그럼 그 외로운 인공존재를 우주로 내보내도 될까요?”
존재가 빠른 속도로 지구의 반대편 우주를 향해 날아가자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 존재보다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그것은 경수의 마음에 우정이라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생긴 구멍과 같다. 경수가 그 순간들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심하게 아팠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한 성찰을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그것은 붕 뜨거나 먼 얘기가 아니라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얘기이다. 더 나아가 이 이야기는 존재의 ‘사라짐’에서 그치지 않고 존재의 ‘잊힘’까지 이야기한다.
부란 착륙 후 팔십사 일이 지난 어느 날, 태양전지를 몸에 두른 ‘존재’가 지구 공전궤도 바깥쪽을 향해 날아가다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의심한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의심한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한다. 존재한다. 의심한다. 존재한다. 의심한다. 의심한다. 존재한다. 의심한다. 존재한다. 존재한다.’
존재는 날이 갈수록 순수해졌다. 이제는 생각보다 의심을 더 많이 했고, 의심을 하면 할수록 존재를 더 많이 했다.
그 사이에 간혹 의심이나 생각이 끼어들었지만 곧 압도적인 존재가 몰려와 생각이나 의심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그러자 존재는 무려 세 시간이나 존재만을 반복했다. 그다음에는 다섯 시간 연속으로, 그 뒤에는 스물여덟 시간 연속으로 존재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때 예측 가능한 확률로 실수가 일어났다. 계속되는 ‘존재한다. 존재한다. 존재한다…….’ 사이에 예측된 실수가 끼어들었다. 빈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 칸이었다.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원이 계속 공급되는데도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존재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그 공배를 대신 채워 줄 착각을 구하지 못했다. 존재는 오류 없는 두비토 회로의 저주에 따라 인과관계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 무렵에, 나는 신우정을 내 안에서 거의 다 지워버렸다. 인공존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새 소식을 전했다.
“우주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대요.”
“우주 어디에서? 우주는 늘 대폭발을 해. 시작도 대폭발이었고.”
“아니, 태양계 안에서요.”
“응?”
존재에 실수가 발생한 지 몇 분 뒤에 지구에서는 목성만 한 크기의 대폭발이 관측되었다. 존재폭발이었다.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존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에게 ‘존재’되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는 ‘기억’의 다른 말이 아니다. 그랬기에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먹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장면은 바로 ‘존재’가 가장 ‘존재’하는 모습으로 사라지는 장면, 다시 말하면 ‘우정’에 대한 기억이 경수에게서 사라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사라짐의 접점에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스스로 가장 빛나는 존재를 증명하며 사라진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늘 기억되는 존재이다. 누구를 기억하고, 기억되며, 또 잊어가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쯤에서 신우정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신우정의 자살은 그녀가 만든 신제품만큼이나 획기적이었다. 모니터 없는 컴퓨터, 울리지 않는 전화기……. 가장 자신다운 것의 부재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들이다. 신우정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기억되거나 잊히지 않고 스스로를 가장 자신답게 증명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었고, 그래서 가장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