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다리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8
천선란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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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한국 SF 소설 시리즈물을 발간하고 있는 그래비티북스. 대학교를 졸업하면 그래비티 북스에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전부 사서 읽어봐야지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취업하고 자리를 잡다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오래된 서평 정리들을 하면서 그래비티 북스 출판사의 책들을 찾아보았는데, 약 2년 동안 새로운 SF 신간들이 여러권 나왔더라. 소개를 보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두 권 남짓 있었다. 이제 여유가 생기면 GK 시리즈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참 할 일이 많구나 ㅎㅎ..(GK 시리즈는 외계행성:EXO PLANET 이후로 한 권 밖에 안 나왔더라. 고등학교 과학 수준이 아니라 전공자 정도부터 알 수 있는 지식을 자세하게 설명해줘서 정말 좋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깊이가 깊은 교양서를 내다보니 수요자가 많지 않나보다. 외계행성 정말 좋았는데.. 이럴 땐 내가 좀 더 부지런해서 블로그 방문자가 더 많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홍보가 되지 않았을까 ㅠㅠ..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요가 많아져야 비슷한 책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특색있는 출판사이다 보니 관심이 많아서 잡담이 길어졌다.




<무너진 다리>는 인류 식민지로 테라포밍할 외계행성 '가이아'로 가던 우주인 '아인'이 임무에 실패하면서 벌어진 전지구 스케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인은 그의 기억과 정신만 남은 채 기계의 몸에 옮겨진다. 그가 임무에 실패하면서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아메리카 대륙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간 형태의 안드로이드 '휴론' 800대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 오염된 대륙을 청소하게 한다. 그러나 이 기기 800대는 본부와의 연락이 끊어지고, 인간들은 이 안드로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진다. 모든 일의 계기는 아인의 임무 실패로 벌어진 일. 아인은 '휴론'의 몸을 한 채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파견되어 사라진 기기 800대의 전말을 알아내는 임무를 맡게 된다.

안드로이드는 워낙 소프트 SF 단골소재이긴 하다. 이전에 그래비티북스에서 냈던 <꿈을 꾸듯 추듯>에서도 안드로이드의 존엄성에 대해 다뤘었다. 하지만 <무너진 다리>는 '인류의 멸망'과 '계급문제'로 소재를 다양화하고 비교적 사건을 촘촘하게 구성했다. 특히 주인공 '아인'의 동생 '아라'와 관련된 과거사, 트라우마를 풀어 나가면서 독자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소재가 흔하기 때문에 지루하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작가의 가치관을 담아서 다른 안드로이드 소설과 차별점을 보여줬다. 아쉬웠던 점은 많은 등장인물이 교차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와중에, 그들간의 이야기를 엮어주는 것이 '동시간대'라는 공통점 밖에 없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사건 구성이 촘촘한데 주인공 외 인물의 매력이나 캐릭터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가가 인간과 휴론의 동맹을 통해 계급문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작품 내에서 인간들은 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의 경쟁자로 인식한다. 800기의 휴론이 사라졌을 때도 그들은 인간의 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휴론이 인간을 위협하지도, 모든 인간이 휴론을 착취한 것도 아니었다. 자본가를 비롯한 소수의 지배계급이 로봇을 만듦으로써 인간의 착취를 더 쉽게 만들었다. 로봇에 의해 삶의 경계로 밀려나게 된 인간들은 로봇을 미워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같은 피착취계급인 로봇(휴론)과 협력함으로써 불합리한 체제를 전복시킨다. 이런 이야기는 요즘처럼 혐오와 갈라먹기가 판치는 시대에 시기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젊은 세대로 가면 갈수록.. 먹고 산다는 기본적인 문제 때문에 눈 앞의 파이를 놓고 같은 계급끼리 싸운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힘든지 편을 나눠 싸우느라 구조적인 불합리함을 외면한다. 오히려 그 불합리를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약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등수매기기에 세뇌되어온 결과 시험점수만이 완전한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세대의 문제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아마 더 많은 시간과 새로운 지면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세상에 '공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로봇과 인간이 힘을 합쳐 새 행성에 희망을 쏘아올린 결말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삶의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대립하기보다는 화합하고, 작은 문제보다는 보다 크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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