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구인배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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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을 비교할 때 흔히 비율(比率)과 배율(倍率)을 쓴다. 비율이든 배율이든 비교 수량을 비교되는 수량으로 나눈 숫자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두 가지 모두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 얼마나 큰지, 또는 얼마나 작은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비율과 배율은 계산하는 방법은 같지만 실제 쓰임새에선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선 비율(rate)에는 기준량이 있다. 비율은 비교하려는 수량이 기준 수량에서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본다. 예컨대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고, 야구에서 타율은 유효 타격(타수) 가운데 안타를 때린 비율이다. 비교하는 수량이 기준량보다 큰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비율은 대개 1보다 작다. 특히 어떤 것의 구성비율은 항상 1 이하일 수밖에 없다. 다만 증가율의 경우 간혹 증가분이 기준량보다 커 예외적으로 1을 넘기는 사례가 있다.

이에 비해 배율(ratio)은 딱히 기준량이 없이 한 가지 수량이 다른 것의 몇 배나 되는지를 따진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의 확대배율은 실제 크기보다 몇 배나 크게 보이는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배율은 대개 1보다 크고, 곱절을 뜻하는 배(倍)를 단위로 쓴다. 복사기의 축소 배율처럼 1보다 작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비교하는 수량이 비교되는 수량보다 상당히 클 경우에 주로 쓰인다.

이런 점에서 일자리 형편을 보여주는 지표로 구인배율(opening-application ratio)이 쓰이는 것은 꽤 뜻깊다. 구인배율은 신규 구인 인원을 신규 구직자 수로 나눈 것이다. 이 숫자가 클수록 일자리 사정이 좋고, 작을수록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것을 배율로 나타냈다는 것은 일자리의 수가 구직자 수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가 넘치기를 바라는 기원과 고용 사정에 대한 낙관이 담겨 있다.

전후 최장의 확장국면을 구가한다는 일본에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내년 대학 졸업 예정자에 대한 구인배율이 2.14로 16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일자리 수가 취업 희망자를 모두 뽑고도 남을 만큼 넘친다는 얘기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대학 졸업자의 구인배율은 0.25였다. 일자리 한 개를 놓고 4명이 다툰 것이다. 차마 몇 배라고 하기조차 민망하다. 구인배율을 비율로 바꾼다고 사정이 나아질 리가 없으니, 배율이 본래의 의도로 쓰일 수 있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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