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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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쯤 될까. 아니면 가죽신 정도 되나. 어쨌든 춘추 시대 정(鄭)나라에 살던 한 인물이 장이 서는 어느 날 신발을 사기 위해 문을 나섰다. 그는 출행하기에 앞서 자신의 발을 쟀다. 끈으로 발을 잰 뒤 시장에서 자신의 발에 꼭 들어맞는 신발을 사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시장에서 그는 신발 파는 장사치를 찾았다. 아뿔싸. 신발을 사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그는 노끈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이 생각났다. 가만히 되새겨 보니 의자에 걸쳐 둔 채 문을 나서고 말았던 것이다.

이 정나라 사람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갔다. 급히 문을 들어선 뒤 의자에 걸쳐 놓았던 끈을 찾아서 그는 시장으로 다시 향했다. 바삐 가노라고 갔지만 시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 신발을 팔던 상인도 철시를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에게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영문을 알아본 다음에 사람들은 물었다. "끈으로 재는 것보다 당신 발로 신발을 신어 보면 되는 것 아니었느냐"고.

'정나라 사람 신발을 사려 하다[鄭人買履]'라는 우화다. '한비자(韓非子)'에 소개된 뒤 가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내용이다. 신발을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발일 게다. 발 크기도 그렇고 그 폭도 그렇다. 신발을 파는 노점에서 직접 신발을 신어 보면 모든 답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뭔가에 크게 매달린 눈치다. 끈으로 자신의 발을 쟀던 행위에 생각이 빠졌던 것일 텐데, 그는 그만 근본을 잊어 버리고 말단에 빠져 버린 꼴이다.

자신의 지향(志向)이나 이상, 또는 원칙 같은 것에 빠져 발과 신발이라는 현실의 그림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시장에서 신발을 살 수 없게 된 처지. 결국에는 망상 등으로 자신을 그르쳐 현실의 여러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다. 낡은 관습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태를 일컫는 '묵수성규(墨守成規)'와 근본을 잃어버린다는 뜻의 '망본(忘本)'이 모두 같은 뜻일 것이다.

이른바 '삼불(三不)정책'을 두고 나라가 또 한바탕 소란에 빠지고 있다. 대통령도 나서고, 교육부총리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다. 교육이 벌어지는 현실의 장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의 정책은 뭔가 지향점이 있는 듯하다. 원칙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혹여 평준화에 죽고 살자는 교조(敎條)적 망상이 아닌지 되새겨볼 일이다. 신발을 사는 데는, 발을 쟀던 노끈보다 그저 맨발이 훨씬 나은 법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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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마루 2007-04-1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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