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문제적 인물 [중앙일보]

197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 개발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젠 비밀 축에도 못 낀다. 수년 전 공개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비밀문서(1975년 2월 28일자)는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박정희는 그 후 재미교포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불러들여 독자 핵 개발을 시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 적을 두고 활동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이 과정에서였다. "햇병아리 CIA 직원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조사 시작 3개월 만에 비밀 핵 개발 계획의 존재를 밝혀냈다. 핵 개발 관련자의 한 사람으로부터 극비 자료를 통째로 입수한 것이다. 그 후 '핵 개발을 단념하지 않으면 한국과의 모든 관계를 총점검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전하러 서울에 온 사람은 포드 정권의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였다." (후나바시 요이치 '김정일 최후의 도박' 원제는 '페닌슐러 퀘스천') 훗날 CIA에서 으뜸가는 한국통으로 성장한 그의 이름은 리처드 P 롤리스, 다름 아닌 현 국방부 부차관보(아시아.태평양 담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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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스는 72년부터 87년까지 CIA에 근무했고 레이건 정권 때에는 NSC에서 일한 적도 있다. 주 분야는 위성.원자력 등 군사적으로 민감한 기술 정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해외 임지는 서울이었고 도쿄에서도 일했다. "한국인 협력자를 많이 확보했다"는 평이 있고 지금은 헤어진 부인도 한국 여성이었다.

2002년 롤리스가 재등장했다. 이번에는 '음지'가 아닌 '양지'였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부름을 받고 부차관보가 돼 한.미, 한.일 군사 현안을 쥐락펴락 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용산기지 반환 협상 등에서는 의표를 찌르는 제안을 내놓거나 때로는 강압적.위협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버거운 협상가였다. 내정간섭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주일미군 기지 재편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일본에서도 그는 악명이 높았다.

'문제적 인물' 롤리스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7월 사임한다는 보도다. 그는 협상이 끝나면 한국 대표단과 소주나 폭탄주로 분위기를 풀 정도로 한국적 문화가 몸에 밴 '지한파'였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얼마나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배려해 준 '친한파'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미국 편에서 보자면 그는 대단히 유능한 정보원이자 협상가였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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