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으로 보면 그물을 원통처럼 말아놓은 듯한 형상이다. 다이아몬드보다 강하고 구리보다 전기가 잘 통한다. '21세기 꿈의 신소재'라는 탄소나노튜브다. 가느다란 것의 지름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1에 불과해 '나노(nano) 과학'의 총아로 대접받는다.
일본 NEC의 한 연구원이 1991년 흑연 실험 도중 이 소재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이후 반도체와 평판 TV, 초강력 섬유, 생체 센서 같은 차세대 첨단 장치들의 토대가 됐다. 반세기 동안 '산업의 쌀'로 군림한 반도체의 위광을 빼앗을지 모른다. 탄소나노튜브를 발견한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노벨상 단골 후보로 오르내린다.
원소기호 C, 원자번호 6인 탄소(炭素)는 영어로 carbon이다. 숯을 뜻하는 라틴어의 carbo라는 어원만큼이나 칙칙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화학자들 사이에 탄소는 '밝은 성격의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우선 다른 원소와 쉽사리 반응한다. 사슬.고리형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 가지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 탄소끼리 똘똘 뭉치는 데에도 능하다. 다이아몬드가 바로 탄소의 결정체다. 사람으로 치면 가정.사회 생활을 두루 잘하는 모범생이다. 그뿐인가. 단백질.탄수화물 같은 탄소 화합물을 빼고 생명의 신비를 다루는 생화학이나 유기화학을 논할 수 없다. 나일론.아스피린.페놀처럼 인류의 경제생활을 뒤바꾼 혁명적 물질도 대개 탄소 화합물이다.
뭐니 뭐니 해도 탄소의 가장 큰 소임의 하나는 광합성을 통한 지구 생태계 순환일 것이다. 이산화탄소(CO2)가 물과 빛을 만나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고 동식물의 생로병사를 통해 탄소 성분이 대지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다. 문제는 온실가스의 일종인 이산화탄소가 과다할 때 생기는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탄소 카드'라는 이색 구상을 내놨다. 휘발유 주유량까지 마일리지로 누적해 탄소 과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화석연료 위주의 '탄소경제'시대를 보내고 청정에너지 위주의 '수소경제'시대를 앞당겨야 한다고 재촉한다. 탄소나노튜브 연구자들이 머쓱해질지 모르겠다. 지난주 보도된 우리나라의 '탄소 펀드' 구상도 천덕꾸러기 이름이 된 탄소의 자화상이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이를 훼손한 인간들의 적반하장이라 문득 탄소를 위한 변명을 하고 싶어졌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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