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통령 전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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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곤욕을 치렀다. 전임 데니스 해스터트 의장의 쌍발엔진 C-20을 C-32 급으로 바꿔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에서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빗대 "'펠로시 원'을 달라는 거냐"고 비난했다. C-20은 승무원 5명, 승객 12명이 타는 소형 군용기. C-32는 승무원 16명, 승객 45명이 탈 수 있다.

펠로시 의장 측은 지역구가 해스터트 의장의 시카고보다 네 배나 먼 샌프란시스코라고 항변한다. C-20으로는 한 번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원의장은 부통령에 이어 권력승계 2인자. 그런데 부통령.장관들이 타는 C-32를 같이 이용하는 게 지나치냐고 억울해한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비행기로 구설에 오른 경우다. 전용기를 도입하려다 '블레어 포스 원'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는 왕실 전용기를 여왕보다 10배나 자주 쓴다. 노동당 행사는 물론 해외 휴가 때도 이용한다. 그 바람에 "개인 택시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이름만 왕실 전용기지 사실은 장관들도 타는 정부 공용기다. 그것도 1967년에 도입한 낡은 VC-10기. 여왕은 외국에 갈 때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보잉 777을 즐겨 탄다. 블레어 총리는 다른 비행기를 타려 해도 경호팀이 반대다.

이승만 대통령은 6인승 L-26을 이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66년 C-54를 들여왔다. 현재 공군 1호기는 85년 전두환 대통령이 들여온 보잉 737-3Z8. 이제 일본 정도만 이용하고, 다른 곳은 민항 전세기로 간다. 항속 거리와 탑승 인원 때문이다.

대형 전용기 도입 계획은 야당 반대에 부딪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용을 따져 보라고 한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외국을 가장 많이 방문했다. 지금 체류 중인 로마를 포함해 재임 중 23차례, 49개 나라에 다녔다. 한 번 나갈 때 전세기 비용이 8억~9억원이라니 임기 중 200억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전용기를 20년마다 바꾼다고 가정하면 같은 기간 전세기 비용은 800억원 정도다. 기름값과 인건비를 제외해도 전용기 도입 비용(19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국가원수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비용으로 따질 순 없다.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전용기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민심이다. 국민이 정상 외교를 걱정하는 상황에서는 여론을 돌리기 어렵다. 필요 이상의 수행원으로 허세를 부리고, 관광지에서 기념사진이나 찍는다는 인상을 줘도 전용기 구입 논리는 궁색해진다.

김진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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