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막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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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東晋)의 권세가 환온은 황제 자리를 꿈꾸는 야심가였다. 그의 속마음을 읽고 황제 자리 찬탈을 위한 계책을 진언한 이는 극초라는 인물이다. 이 둘의 관계는 꽤 깊어서 당시 동진의 사회에선 요즘 표현으로 '극초가 환온을 데리고 논다'는 식의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환온의 야심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당시 동진의 경제권을 주름잡았던 강남(江南)의 명문 귀족. 그중에 사안이라는 사람은 이들 귀족의 대표급이다. 사안 등이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환온은 긴장한다. 책사 극초를 장막 뒤에 서게 한 뒤 방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케 한다.

환온과 사안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방 안으로 갑자기 바람이 몰아친다. 장막이 바람에 올라가자 그 뒤에서 대화를 듣고 서 있던 극초의 모습이 드러난다. 환온과 극초의 사이를 잘 알고 있던 사안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극초 선생은 확실히 '장막 속의 손님(入幕之賓)'입니다"며 웃어넘긴다.

'진서(晋書)' 67권에 등장하는 고사다. 장막 속의 손님, 즉 막료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일화다. 보통 장막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장치다. 은밀하면서 사적인 장소를 만드는 도구다. 이곳에 들일 수 있는 남이란 존재는 자신과의 관계가 매우 은밀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막료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그 앞이다. 한(漢)대 병력을 지휘하는 장수의 야전 거처는 흔히 장막으로 둘러쳐지게 마련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것을 막(幕)이라 했고, 옆으로 가리는 것을 유()라 불렀다. 유막, 혹은 악막(幄幕)은 장수가 머무는 곳이었고 나중에는 '막부(幕府)'라는 말로 정착한다. 그 막부 안에서 장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막료였던 셈이고, 혹은 막직(幕職)으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일본의 쇼군(將軍)을 보좌했던 신하들과 중국 청대에 활동한 각 권세가의 참모들이 모두 이 막료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도 이 막료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요즘의 한국 고위 공무원들이다. 주택 가격을 잡겠다고 소신을 바꿔가며 세금 폭탄을 만들어 낸 경제 부총리, 대통령의 개헌을 앞장서 홍보함으로써 큰 물의를 빚은 국정홍보처 공무원 모두 본분을 넘어선 행위자들이다. 코드라는 장막 뒤로 들어가 임명자에게 충성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막료이지, 진정한 공직자가 아니다. 할 말 못할 바에야 차라리 자리에 엎드려 움직이지 말라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권한다면 지나칠까.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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