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38395

[분수대] 하얀 거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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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최고 화제는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이다. 병원을 무대로 한 의사들 얘기다. 일본 원작 드라마의 모범적 리메이크라는 호평이 잇따른다. 인기 비결은 강한 리얼리티다. 권력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인간 군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병원이 무대지만 '하얀 거탑'은 의학.의료 드라마가 아니다. 기업이나 공직 사회나 '출세 아니면 도태'인 곳에서는 어디든 적용 가능한 설정이다. 정치드라마, 보다 정확히는 '직장정치''사내정치' 드라마다. 프로 정치꾼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권력암투와 생존게임이 우리의 일상적 조직생활 안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음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그간 TV가 외면해 온, 경쟁적 조직생활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간 우리 드라마.영화 속에서 직장이란 연애의 장이거나 소소한 갈등쯤은 정으로 해결하고 넘어가는 '유사가족' 정도였다. '직장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미개발이었다. 그나마 거의 유일한 직장드라마인 'TV손자병법'(KBS 1987~93년)은 중소기업 배경의 인정극이었다. 상사의 호통과 부하의 무능이 매회 반복되지만 갈등은 웃음꽃으로 해결됐다. 각종 첨단 직종을 끌어들인 '전문직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의 세련된 배경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린 이명세 감독의 영화 '남자는 괴로워'는 직장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의 판타지로 마무리됐다. '하얀 거탑'이 진화된 직장드라마의 출발인 이유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다. 극중 경쟁적 생존방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기도 하다. 권력투쟁은 삶의 정당한 현실이며 권력에의 열망은 비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극중 인물 중에서도 인간적이지만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최도영(이선균 분)보다 야망을 위해 때론 비열해지는 장준혁(김명민 분)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준혁의 승승장구는 거부감보다 공감을 자아낸다. 어차피 소박한 인정의 시대는 갔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생활원리로 내재화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정치드라마라면 이미 TV 말고도 물리도록 보아온 우리가 아닌가. 연일 여의도에서 생중계되는 정치드라마 말이다. 물론 결정적 차이가 있다. 적어도 '하얀 거탑'의 의사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공공선이나 누군가(국민)의 이름으로 위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위선적인 정치드라마에 박수칠 관객은 없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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