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40479

[분수대] 샌드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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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노인이 한적한 시골 길가에 앉아 넓적한 빵을 베어 물고 있다. 지나가던 고을 경찰서장이 묻는다. "영감님, 뭔가 끼워서 잡수시겠지요?" 버터 한 점 없는 맨빵을 보여 주면서 노인이 대답했다. "나으리, 꿈이 들어 있다오." 비토리오 데시카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빵과 사람과 꿈'의 한 장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나라 국민의 궁핍과 불행, 삶의 의지를 담았다.

언론인이자 문필가였던 홍승면씨는 자신의 백미백상(百味百想)을 담은 수필집 '꿈을 끼운 샌드위치'에서 '서민의 멋이 담긴 샌드위치'로 이 촌로의 '희망의 빵'을 꼽았다. 고인도 미국 유학 시절 거의 매일 싸구려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샌드위치는 원래 형편이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이들이 한 끼 때우는 경식(輕食)이었다. 아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장할 정도로 꽤 알려진 샌드위치 어원에 관한 일화가 패스트푸드 인상을 더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각료까지 지낸 존 몬테규 샌드위치 백작은 자택에서 지인들과 트럼프 노름에 몰두하기 일쑤였다. 식사 시간도 아까워 귀족 체면에도 불구하고 빵 조각 사이에 식은 고기와 야채를 대충 끼워 먹던 게 아예 샌드위치로 불리게 됐다.

이제 샌드위치는 지구촌 대중식이다. 미국의 서브웨이라는 전문점은 85개국에 2만7000여 점포를 뒀다. 맥도널드에 버금가는 규모다. 소득과 여가의 증대는 샌드위치에 웰빙 개념을 불어넣었다. 이젠 격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지, 영국샌드위치협회는 '사촌지간'인 햄버거를 동업계에서 제외한다고 매정하게 선언했다.

샌드위치는 우리 언어 생활에도 깊숙이 뿌리내렸다. '샌드위치 세대'니 '샌드위치 증후군'이니 하는 말에선 식빵 조각 틈에서 납작하게 눌린 햄이나 치즈가 쉽게 떠오른다. 요즘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정부 구호가 무색하게 중국과 일본 틈바구니에서 쪼들리는 '샌드위치 코리아' 걱정이 늘었다.

하지만 이런 말 쓰임새를 확 뒤집어 보는 건 어떨까. '샌드위치 신세'를 답답한 처지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는 호기로 해석할 수 없을까. 샌드위치의 속성인 '빨리빨리'와 '실속 추구'는 실로 한민족의 능기(能技) 아니던가. 샌드위치의 묘미는 빵보다 끼우는 식재료에 좌우된다. 비빔밥.김밥처럼 수백 가지 맛의 변주가 가능한 게 샌드위치의 장점이다. '샌드위치 코리아'에도 뭐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를 터, 이젠 어떤 꿈을 끼워 넣을지 함께 고민해 보자.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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