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45246

[분수대] 그들만의 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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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항공.발전설비 등을 주 업종으로 하는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에는 범용기.특차 사업본부란 이름의 부서가 있다. 처음 그런 부서명이 적힌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은 '특차(特車)'란 이름이 뭘 의미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특수차량'의 줄임말이란 설명이 뒤따르긴 하지만, 실제로는 자위대에 납품하는 전차, 즉 탱크를 의미하는 말이다. 자위대도 지금은 전차란 용어를 쓰지만 한동안은 공식 용어로 특차란 말을 썼다.

자위대엔 알쏭달쏭한 용어가 많다. 영어로는 'destroyer'로 번역되는 중형급 이상 전투함인 구축함을 해상 자위대는 '호위함'이라는 점잖은 용어로 부른다. 막강 전력의 이지스함 '곤고'나 '아타고'도 분류체계상으로는 호위함이다. 공대공뿐 아니라, 공대지.공대함 공격 능력까지 갖춘 항공자위대의 F-2는 공격기란 용어 대신 '지원전투기'라 부른다. 자위대와 관련한 문서나 기사를 제대로 읽자면 별도의 용어 대조표를 갖춰 둬야 할 판이다.

자위대가 그들만의 용어를 쓰는 이유는 '전수 방위' 원칙 때문이다. 현행 헌법의 전력 보유 금지 조항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공격 전력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자위대식 용어로 바꿨다. '군'과 '병'이란 글자는 절대 금지다. '보병'은 '보통과', '포병'은 '특과', '공병'은 '시설과', 심지어'군악대'는 '음악과'로 불린다. 하지만 용어 자체에 공격적 이미지가 없는 '장갑차'는 그냥 그대로 쓰인다. 하긴 '자위대'란 이름 자체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어니 그런 궁여지책에도 이해가 간다.

24일 일본이 발사한 정찰위성도 공식명칭은 '정보수집위성'이다. 4기 체제를 갖춰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하루 한 번씩은 마음먹으면 촬영할 수 있는, 엄연한 스파이 위성임에도 군사적 색채가 강한 용어 '정찰'을 배제한 것이다. 실제로 위성의 임무 가운데에는 대규모 재해 대응이 포함돼 있다. 위성의 운용 주체는 방위성이 아닌 내각정보조사실이다. 그렇다고 위성의 군사적 성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위성 촬영 사진의 최대 고객인 방위성은 가장 숙련된 분석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위대의 용어가 방어형에 국한돼 있듯 전력 체계 역시 방어형 위주여서 공격 능력과는 현저히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방위성과 자위대는 눈에 띄지 않게 전력 강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언젠가 그들만의 용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날을 기다리면서.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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