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더딜 수는 있지만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나의 모습이 나아졌길 바라고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또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보며 흐뭇해 하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만일 과거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이 변함이 없다면? 앞으로의 나의 미래가 지금과 크게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면 그 누구도 '발전'이나 '성공'에 대한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고 "자기계발" 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러운 단어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멈춰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밝은 미래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늘 성공하고 발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나 어마어마한 명성과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인생의 굴곡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성장하고 누구는 멈추거나 퇴보하는 걸까요?
"나 자신을 알라"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인 해더 서머스와 앤 왓슨은 성공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맞서게 되는 고민 중 하나인 "왜 나는(그대는) 제자리인가?" 라는 직설적 질문을 통해 바쁘게 뛰어가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 볼 시간을 갖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많은 자기계발 도서들을 읽으면 에필로그부터 방법들 그리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런 자기계발 도서들을 한 10권 정도만 읽어보면 결론에 이르는 단 하나의 무언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부터 알라." 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 철학적 한 마디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자 발전의 과정 중 난관에 봉착했을 때나 스스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껴질 때 유일하게 뚫고 나올 수 있는 정답입니다.
언젠가부터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되어지는 때가 오면 사실 그것을 느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몸으로 혹은 다른 주변상황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무시하다가 결국 쌓이고 쌓여서 불만이되고 이유없는 짜증이 쏫구칠 때야 비로서 우리는 '지금 내 상황은 뭔가 잘못되고 있어.' 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을지도 모릅니다. 의견을 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긱기도 하죠. 왜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이런 슬럼프나 정체기를 알아채지 못할까요? 혹은 알고 있으나 대처하기가 힘들까요?
책에서는 7가지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몇가지 질문들이 있습니다. 42개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통해 간단하게 나는 어떤 유형인지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을 인식한 후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여러 상황들이나 방법들을 스스로 적용해 보길 권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유독 "행운" 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됩니다. 성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책에서 행운이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으나 행운은 우연히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고 원하고 있는 것을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얻어지게 되는 산물이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뇌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먼저 선택하고 정리하는 것 처럼 행운이라는 것 역시 우리가 바라고 원할 때 먼저 선택할 수 있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또 "직감과 직관" 에 대해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직감과 직관은 이미 그 하나로도 책으로 나왔을 정도로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인식이 되어 있는데 단순히 내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하면 이 능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제자리인가> 는 당신이 왜 멈춰져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이미 멈춰있던 발걸음을 떼어 미래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믿는 것 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역작.
작가의 고집이 엿보이는 작품.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바로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시대와 시간,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내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마치 등장 인물 중의 한명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장편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특히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소설의 경우에는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어 몰입도가 큰 편입니다. 거기에 문체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이야기의 흐름을 영상처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주는 소설을 읽는다면 그 즐거움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진하게 남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제게 그런 소설이였습니다. 닉이라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문체 하나하나에는 당시의 상황을 눈 앞에 펼쳐보일 듯 선명하게 이미지화 되어 책을 읽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 라는 문구가 주는 기대감은 아닙니다. 오히려 김석희씨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는 다른 출판사에서 내놓은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에 비해 상당히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번역을 놓고 번역하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가 변형되지 않고 원본 글의 내용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오래된 고전 문학을 읽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대한 개츠비>가 1925년에 발간 되었으니 고전은 확실한 고전이네요.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보면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 함께 궁금해하며 닉의 시선을 따라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개츠비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의 집착과도 같은 데이지에 대한 관심은 사랑이라기 보다 예전에 자신이 갖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갈구가 욕망이 되어 그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개츠비를 보면서 "위대한" 이라는 문구가 정말 의아하더군요. 작가는 왜 이 소설의 제못을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런 저런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봤습니다만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답변들은 없더군요. 하지만 책의 뒷부분에 나온 그의 삶을 읽으면서 그가 살아온 삶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이런 제목으로 출간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편소설로 돈을 벌기 보다 장편소설로 작가로써의 명성을 남기기를 바랐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그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됩니다. 그의 삶과 개츠비의 삶이 묘하게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이지를 향한 집착처럼 위대한 장편소설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집념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자품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이어 두번째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이 되었더군요. 영화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
당신이 평소에 쓰는 말들이
당신의 인생을 좌우한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입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런저런 행사들도 많고 모임도 많죠. 그동안 못봤던 지인들을 만나느라 분주한 한 달입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나 가족, 스승님들. 누가 되었건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행복한 한 해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연말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올 해 과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내뱉은 말들은 어떤 말들이였을까? 대화나 그 말들은 긍정적이였나 아니면 부정적인 말들을 더 많이 사용했나?' 하는 생각 말이죠.입시생을 가르치다보니 아무래도 민감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들인데 나는 그 아이들에게 스승으로 어떤 말들을 많이 했으며 그 말들은 그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제자가 안되길 바라는 스승이 어디있겠습니까만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달리 말투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의도로 받아들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말' 과 관련된 속담이나 격언들이 참 많습니다. 금방 떠올리기에도 '말은 한번 뱉으면 주어담지 못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 등 다양한 표현들로 말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나 대화들은 과연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격언들이 생겨났으며 말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하고 강조하는걸까요?
말의 힘
우리가 하는 말에는 모두 어떤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자신의 푸념이 섞여있고 또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본심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아무 뜻없이 던지는 말이라는 것은 솔찍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말에는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게 됩니다.
작은 말 실수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큰 싸움이 될 뻔한 일들이 작은 말 한 마디에 금새 풀리기도 했던 기억들이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어릴적이나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 가운데 정작 나 자신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심지어는 연인들조차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싸우는 일보다 주위의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영향을 미쳐 싸우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실수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혹은 기쁨을 얻는 모든 일련의 것들에는 그 시작이 늘 '말' 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말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면 단순히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말 조심을 해야하는 걸까요?
좋은 생각과 좋은 말은 좋은 행동을 낳는다.
TV 나 영화에서 흉악범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왜 흉악범이 되었는지에 관한 장면이 나올 때면 참으로 안타갑게도 그들은 애초부터 흉악범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가정환경도 불우하고 혼자 남겨진 세상에서 멸시를 받고 삐뚫어진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환멸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일은 이 세상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고통일겁니다.
그럼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흉악범이 되나요? 그럴 확률이 높을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옆에 누군가가 그를 믿어주고 그를 위한 긍정적인 말들을 해주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꼭 훌륭한 스승이나 중요한 사람 또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알아서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이고 도전이 되는 말을 해줌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 수 있는 힘.
기대(expectation)와 소원(desire)의 차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긍정적인 말' 이나 타인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그 말이 나쁜 말이건 좋은 말이건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다치게도 할 수 있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좋은 말을 뱉으면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말을 뱉으면 나쁜 열매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내 상태가 미래에 어떻게 바뀌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에서 미래의 우리 모습에 차이가 나타나는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래의 삶을 "기대(expectation)" 하느냐 아니면 "소원(desire)"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일 겁니다.
"소원이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욕망을 암시 한다면, 기대는 겉으로 드러난 적극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대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즉, 기대는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예언이 되는 것이다. " p79
저자의 말 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인공으로써 우리 미래를 적극적으로 바라보며 기대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소극적으로 소원하며 살아갈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자신에 차있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늘 함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이 끝에 "좋은 예언자가 되기 위한 12단계" 를 소개하며 좋은 말과 생각을 통해 긍정적인 예언의 힘을 기르라고 조언합니다.
이 책은 종교서적으로 각 장마다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저자의 생각과 여러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끝날 때마다 묵상할 수 있는 주제와 기도할 수 있는 문장들을 함게 실어 독자들에게 생각하고 기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뒤로 갈 수록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데미안 Demian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은 1919년 출간된 이 후로 지금까지 고전문학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뽑히는 작품입니다.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시절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불안하고 혼란한 청춘기의 내면의 변화와 고뇌를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나간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피천득님의 <인연> 입니다. 지금처럼 책을 읽을 때마다 서평을 쓴다거나 좋은 글들을 따로 적어놓질 않아서 이제는 무슨 내용이였는지도 희미할만큼 되어버렸지만 청년시절 기억 속에 자리잡은 단 한권의 책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인연>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따로 적어놓지도 않았는데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글귀 하나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이 짧은 글귀를 읽었을 때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머릿속에 각인이 되더군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내면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젊은 날에 이런 인생의 진리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책이나 글을 만났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데미안>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책이였습니다. 고전문학 작품을 거론할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책을 저는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 한번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며 기억에서 멀어졌을 때쯤 다시 눈에 들어온 이 책은 책을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읽기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 젊은 날에 <데미안>을 만났더라면 그저 그런 소설 책쯤으로 여기며 읽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하며 반쯤 읽다 책을 접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공유하고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특히 가장 외형적으로나 내형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10~20대에는 누굴 만나는가가 정말 중요하죠. 이 때 우리는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스승을 만나기도 하고 첫 사랑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또 비슷한 시기를 지나 비슷한 경험들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데미안>에 등장하는 싱클레어의 모습은 크게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되고 그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인지하고 성숙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그는 어떤 무엇엔가에 가까이 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무엇인가를 알아 가기 위한 과정에서 그는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만나 우리가 말하는 '진리' 라는 모습에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갑니다. 싱클레어는 때론 무엇엔가 홀린듯 이끌려가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과 이념은 접어두고 데미안의 말에만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하루종일 그가 한 말을 되뇌이기도 합니다. 어느순간에는 자신만의 생각과 개념을 확고히 다지며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아를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어린 시절 강렬하게 남아있던 데미안의 그림자를 계속 찾아 헤메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와 동일시 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데미안>을 읽다보면 젊은 시절의 내가 싱클레어에 투영되어 보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한듯 보이는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만나고 내면의 변화를 겪으면서 고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와 세상에 속한 진리의 모습 사이에서 투쟁하는 모습은 마치 젊은 날의 우리 모두의 자화상 같습니다. 결국 싱클레어가 겪게 되는 모든 경험과 어떤 형상을 관찰하는 것, 선과 악의 경계등은 우리 안에서 내면의 일치라는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데미안을 계속 갈망하던 그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의 모습을, 에바 부인의 모습을 만들어 냈던 것 처럼 말이죠.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이 열망하던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의 열망과 필연성이 이끈 것이다.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남은 이 문장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가는 열쇠가 됩니다. 싱클레어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계속 열망하면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나게 되고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나 성격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왜이렇게 소심할까?' '나는 왜이렇게 우유부단하지?' '나는 왜이렇게 부정적일까?' 등등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버린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성격을 바꾸기 위한 지침서. 누구나 자신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 7가지 심리테라피 수록.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성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뭔가 계속 손해를 보는 것 같거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거나 이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내가 왜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원해서 갖게 된 성격도 아니니 억울한데 그렇다고 마음먹은데로 쉽게 바뀌지도 않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는체 우리는 점점 피해자가 되는 느낌을 받거나 사회로 부터 고립되는 느낌을 가진체 살아가게 됩니다.
개성은 '식재료', 성격은 '요리의 맛'
성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자는 우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성은 '식재료', 성격은 '요리의 맛' 으로 비유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재료(개성)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정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 맛(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처럼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맛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나 솜씨가 다르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첨가되는 여러가지 다른 부가물들이 들어가면서 음식의 맛은 다르게 나올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즉, 개성은 변할 수 없지만 성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성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짓는 가장 근본적인 개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바뀔 수도 바뀌어서도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성격을 재대로 바꾸고 싶다면 우선 나의 개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개성이라는 근본 뿌리 위에 성격이라는 줄기가 펼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로고천국> 카페에서 다운 받은 이미지에 작업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의 성격을 딱 하나로 단정지어 말하기는 힘듭니다. 개성이라는 뿌리에서 뻗어나간 성격이라는 가지는 한줄기가 아니라 다양한 줄기로 뻗어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어떤 성격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누군가는 집에서 성격과 회사에서 성격, 학교에서의 성격이 다른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가족을 대할 때와 친구를 대할 때 사회생활을 할 때 각각 조금씩 다른 '나' 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였습니다. 왜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와 어떤 상황에 있는가가 우리의 성격을 결정짓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가정환경은 한 사람의 개성과 성격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의견을 존중 받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리더의 성향을 갖게 되지만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소심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데 힘들어하게 됩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생각과 행동에 거침이 없고 활달하며 개방적인 성격이 형성되만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약간은 보수적인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하에 놓여있다고 해서 똑같은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 때문에 성격은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것이고 매우 복잡하게 변해갑니다.
좋은 성격, 나쁜 성격
그럼 과연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이 있는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이 역시 어떤 상황에 자주 노출되어 있는가와 생각의 차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굉장히 소심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 불만인 사람이 있어 대범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소심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 꼭 나쁜 성격일까요? 소심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재대로 하지 못하거나 쉽게 상처를 받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늘 신중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않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갖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좋은 성격이 따로 있고 나쁜 성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바꾸면 되는 것이 성격입니다. 물론 성격이 동전 뒤집듯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동안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갈등이나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기에 지금의 '나'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면 또는 나아지기를 바라거나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하나하나씩 부족한 부분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7가지 심리 테라피 제시
책에는 성격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질문들 외에 7가지 심리 테라피 항목이 있습니다. 각각의 질문들을 자신이 직접 써내려가면서 나의 성격과 내가 개선해야할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7가지 심리 테라피를 직접 따라해보면서 조금씩 변화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7가지 심리 테라피를 해본다고 해서 나의 성격이 바로 변하거나 적혀있는 느낌들이 바로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천히 조용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따라해보는 것이 좋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해보는 것이 훨씬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저의 성격의 어느 부분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그 부분이 개선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거란 기대감도 생깁니다. 분명 쉽게 개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나은 '나'를 위해 나의 개성과 성격을 차분히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