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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평점 :
지나치게 일에 빠져 사는 사람을‘워커홀릭’이라 한다.
일중독자. 이렇게 된 게,
스스로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닌지는 별개로 하고.
일에 미쳐 사는 남편땜에, 남편 얼굴보기도 힘든 아내.
남편 있지만, 생과부처럼 살아야하는 뿔난 아내가
남편회사에 소송을 거는 영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재밌는 제목에 끌려 별 기대않고 본 영화지만,
가볍게 볼 수도 없었던.
뭐, 흔한 건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 있다.
퇴근시간 지나도 집에 안가고 야근도 모자라,
집에까지 일거리 싸들고 오는, 쉬는 날 또 출근까지.
아니, 누가 그러고 싶어 그러냐고? 맞다.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사는 사람말고,
우리 보통사람들은 마칠 시간 언제 오나,
더디게만 가는 시계 힐끔거리며 살아간다.
강제로 묶여있던 것만 같은 일터에서 벗어나고서야,
지금부터 진짜 내 시간의 주인이라도 된 양,
짧은 해방감을 느끼는 존재.
이제 뭐할까. 술먹고 노래방, 아님 영화라도 한편 때려?
하지만 하고 싶은 거 하면서도,
맘이 마냥 즐겁고 편하진 않을 때가 있다는.
중요한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놀아도 논 게 아니고 쉬어도 쉰 게 아닌.
우리는 대개, 개미를 롤모델로 삼고 살지 않나.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근면성실한 그 개미.
롤모델까진 아니라도, 베짱이보단 개미처럼 사는 게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 여기면서.
베짱이처럼 살다간, 미래에 비참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얘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겁박.
개미의 부지런함, 베짱이의 게으름.
개미는 다수의 지지를 받고, 베짱이는 거의 몰매 맞는 분위기.
아무래도 베짱이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 같다는.
‘나가수’나 ‘복면가왕’같은 오디션이 있거나
유투브에 동영상이라도 올릴 수 있는 세상에 살았더라면,
갈고 닦은 연주와 노래 솜씨를 평가받아 보기라도 했을 텐데.
혹시 아나, 싸이가 한류열풍을 일으킨 거처럼 ‘베짱이스타일’로 뜰지.
이 책 저자 폴 라파르그라면,
베짱이를 격려했을지도. 베짱이 파이팅!
그리고 개미를 걱정어린 눈으로 봤을 거 같다는.
너 그러다 일중독자 될 수도 있어. 과로로 쓰러지면 어쩔라구.
라파르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아주 까칠하게 쏘아붙인다.
숙련노동자가 열흘에 할 일을 기계는 단 10분이면 되는데,
왜 아직 하루 8시간도 모자라, 12시간 넘는 노동에서 못 벗어나는지.
그럴 거면 기술개발은 왜 하나. 누구 좋으라고.
일 안하면 불안해서 스스로 일중독자가 돼가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거의 종교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노동자는 ‘노동교’를 믿는 노동교신자로.
‘노동이 나를 구원해주리라, 언젠가는.’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자는 격리까지 하고
담배중독자에겐 벌금도 때리면서.
일중독자처럼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게 하는 현실엔
그토록 관대한 건지.
그걸 조장하고 방치하는 사회를 향해선,
왜 분노하지 않냐고.
이 아저씨 성깔 있네.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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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작으냐
정말 얼만큼 작으냐......
김수영 시인이 마치 반성문 쓰듯 한 시처럼,
먹고 살기위해 이윤 쫌 남겨볼 속셈에 저지른
설렁탕집 주인의 얄팍한 상술엔 분노하면서,
택배물 내집 현관안까지 배달 안 한 택배기사에겐
서비스정신이 가출했네, 소비자를 졸로 보네 분노하면서도,
우린 더 큰 부조리엔 눈감고,
작은 거에만 분노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