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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이야기 -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앙리 베베르 지음, 임명주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본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다들 알거다.
임금님 귀를 본 뒤 입이 근질근질하다, 말하고 싶어서.
말하다 걸리면 뒤지게 맞을 수 있다, 그래서 고른 게 대나무 밭.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 )) ) )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에선 사람 미친다, 숨 막혀서.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말하면 안 되는 금기어가, 읽어선 안 되는 금서가 있었다.
영화 <변호인> 본 사람 많을 거다.
‘불온서적’이라 낙인찍힌 금지된 책을 읽었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려 온갖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변호를 맡은 ‘송변’이 그 책들의 내용이 뭔지 밤새워 읽는다.
거기엔 <역사란 무엇인가>도 있다. 한때 이 책은 서울대 필독권장도서.
영화대로면 이 책 권장한 서울대 교수들은 ‘빨갱이’인거고
서울대는 ‘국립 빨갱이 양성소’가 되는 셈이다.
좌파. 하면 공산당, 마르크스를 떠올리는 사람들 많을 거 같다.
우리나라면 빨갱이, 종북좌파, 북한을 생각할지도.
좌파라는 말에 편견을 갖는 이유 중엔
공산주의를 표방한 옛 소련이나 현재 북한의 영향도 크다.
얘들이 뻘짓을 참 많이 했다. 소련이나 북한 같은 나라는 짝퉁 공산주의다.
특히나 북한은 공산주의라 하기도 민망. 걍, 현대판 김씨왕조에 가깝다할까.
마르크스가 말한 진짜 공산주의는 아직 실현된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 같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사회를 꿈꿨다.
이론으론 가능하나 너무 이상적이다.
현실에서 이럴 수 있는 사람은 바보거나 천사표.
그렇다고 이 선언문의 주장들이 다 꿈같은 얘기고 과격한 생각은 아니다.
여기서 표방한 10대강령 중 7~8개는 이미 실현됐거나 부분적으로 도입중이니까.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무상급식, 보육, 교육, 의료, 공공주택 같은
복지정책들이다. 유럽에선 이미 보편화돼가고 있는.
13살, 15살 두 딸과 아빠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으로 바캉스를 떠나고 있다.
운전 중인 아빠는 지루해할 딸들을 위해
재미난 얘기를 해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당출신 정치인의 숨길 수 없는 직업본능이 어김없이 작렬한다.
딸들을 위해 택한 주제는 좌파이야기, 깬다.
이 깨는 아빠가 ‘좌파’와 ‘우파’라는 말의 유래부터 꺼낸다.
설명을 위해 프랑스대혁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좌파가 보는 인간관과 가치관은 어떤 건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우파와 어떻게 다른지 들려준다.
딸들은 제법 진지하게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도 던진다.
그러다가 가끔
“아빠 그만해. 너무한 거 아냐.”는 투정으로 아빠를 삐지게 하고는 곧,
의기소침해하는 아빠에게“아빠 계속해봐.”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아빠와 두 딸이 토닥토닥 하는 모습이 재밌어 살짝 웃음짓게 한다.
이 ‘좌파’라는 말도 우리나라에선 한동안 금기어였다.
뭐, 지금도 그닥 자유롭다 할 순 없지만.
그래서 좌파대신 ‘진보’란 말을 더 자주 쓴다.
‘노동’보다는 ‘근로’로 쓰고 ‘인민’ ‘민중’이란 말도 꺼린다.
서양에선 자연스럽게 쓰는 말인데도.
내가 어릴 적엔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란 동요도 있었는데
‘동무’란 말도 ‘친구’로 바꿔 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불행을 겪었다.
좌우 이념대립이 불러온 참극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와 레드콤플렉스가 남아있어
은연중에 자기검열을 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이것도 불행한 일.
<동아시아 30년 전쟁>이란 강의를 보면 독립투사들도 서로 이념이 달랐다.
그러나 좌우를 뛰어넘어 독립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한 동지.
해방후 독립투사들 중 좌파는 북으로 우파는 남으로 갈라진다.
어제의 동지가 이제는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희생된
우리 이 비극적 역사를 알아야한다며 격정적인 강의를 한다.
참 인상적인 강연이었다. 이념이 대체 뭐길래..ㅠ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좌파든 우파든 이념이란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
이념이 사람보다 먼저일 순 없다.
이 책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넘어 좌파라는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한다.
복지국가라는 유럽은 좌파사상의 장점도 적극적으로 국가정책에 반영해왔다.
다수 국민들이 더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제도를 고민하고 시행하는 게
국가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