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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파시즘: 유능한 파쇼와 무능한 자유보수주의!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나에게 주목받고 있는 신생출판사 가운데 하나가 "교양인"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최후의 14일"(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어떻게 알고... 감사) 그리고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이 그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는데, 현재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모두 8종의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탄탄한(물질적 측면이 아니라 출판사를 꾸려나가기 위한 다른 역량-문화적 마인드, 필자 풀, 번역서의 경우엔 그걸 분별할 수 있는 식견 등) 역량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도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 원제는 "The Anatomy of Fascism"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시즘의 해부" 정도가 될 수 있는, 이 책은 "교양인"에서 출간한 책 가운데 현재로서는 가장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는 책이다. 전체 600여 쪽의 책 가운데 주석 부분과 기타 참조 부분(용어, 인명 찾아보기 등)이 100여쪽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전문적인 학술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읽는데 족히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이 분야에 흥미가 많은 탓이고, 둘째. 필자와 역자, 그리고 편집자들의 수고 덕이겠지만 읽기 쉬웠다. 셋째.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책값이 27,000원인데 10% 할인해서 24,300원인데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나로서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지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본인에게 직접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잘 안 난다. 한홍구 교수는 최근 국내 최초로 평화박물관을 개원해 몸소 재원을 마련하고, 운영하느라 무척 바쁘다.) 평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이 분야가 특히 취약해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민주주의에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독재 체제(파시즘, 전체주의, 권위주의 등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스운 말이지만, 우린 해방 이전과 이후의 근대화 기간 동안 전쟁과 너무나도 가깝게 살아온 나머지 웬만한 전쟁 이야기엔 면역이 되어 있고, 해방 이전엔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해방 이후엔 권위주의 독재, 군부 독재 시대를 거쳐온 탓에 독재 혹은 권위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측면 두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드 세르토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거대 도시의 마천루적인 시각과 더불어 그 밑을 걷고 있는 자의 시각이 혼재해 있는 것이다.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원경으로,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일반인들로서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는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머리말을 쓴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유효적절해 보인다.

"파시즘을 정확한 기술적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은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그럼으로써 '진짜' 파시즘이 출현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중독 되어 파시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우려도 있다. <본문 14-15쪽>"

팩스턴의 "파시즘"은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1장. 운동하는 파시즘"은 파시즘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주요 전략, 정치적 운동 방향 등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파시즘의 정의를 시도한다. "2장. 파시즘의 탄생"은 말 그대로 파시즘이 탄생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 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는가를 분석한다. "3장. 뿌리 내리기"에서는 파시즘의 준동이 유럽의 각국에서 어떤 형태로 출현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이탈리아, 독일 등과 달리 다른 유럽에서 파시즘이 실패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4장. 권력장악"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정권 탈취에 실패한 파시즘이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던가를 보여준다. "5장. 권력행사"에서 팩스턴은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어떻게 내부 분열을 겪고, 그 가운데 지도자 중심의 권력 독점으로 기울게 되는지에 대해, "6장. 급진화인가 정상화인가"에서는 파시즘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파시즘의 어떤 요소들이 이런 급진화를 부추겼는지 살핀다. "7장.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종말을 고한 듯 보이는 파시즘이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어떤 형태로 잔존했는가? 이후에도 파시즘의 출현은 가능한가를 살핀다. 그리고 마지막 "8장.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시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현대 사회에 출현 가능한 파시즘을 예측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팩스턴은 마치 법의학자가 시신과 대화를 나누듯 파시즘의 세세한 측면들을 들춰내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미국 출신의 학자임에도 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파시즘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파시즘은 무엇이다'란 식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팩스턴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파시즘이 주요한 정치 이념으로 출현해 다시 정권 탈취, 권력 장악을 하도록 방치해선 안 되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힘은 얻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파시즘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파시즘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치 형태 중 가장 강력한 시각적 호소력을 발휘하는 파시즘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다음과 같은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무아경에 빠진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광신적 애국주의 선동정치의 모습,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젊은이들의 행진 장면, 악마로 둔갑한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특정 색깔의 셔츠를 입은 극렬분자들, 새벽녘의 갑작스런 가정 침입, 함락된 도시를 행진하는 규율 잡힌 병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파시즘의 그러한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파시즘 선전원들이 거둔 최후의 승리다. 또 그 이미지는 파시즘 지도자를 승인하고 용인한 국가에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그 지도자를 도와준 개인, 단체, 제도로 향하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 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훨씬 더 정교한 파시즘 모형이다.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는 몇몇 유럽 민족 내 민족들이 선천적으로 파시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그런 민족적 특성 때문에 파시즘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가정에 힘을 실어준다. 이 가정으로부터 한 나라의 결함 있는 역사가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겸손한 듯 오만한 믿음이 따라 나온다. 이러한 믿음은 쉽게 파시즘을 방광하는 국가들의 알리바이로 바뀔 수 있다. 즉, 자기네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본문 38-39쪽>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엘 시드"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 한 가지를 던져준다. 1492년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모든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레콩키스타"로 알려진 실지 회복 전쟁이 끝났을 때, 다시 기독교도 왕국이 된 스페인은 이교도에 대한 이전의 관용정책을 포기한다. 이전까지 종교적 자유 아래 기독교도 국왕인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바쳤던 무어인들은 개종해야 했고, 개종한 무어인들은 '토르나디소스(tornadizos, 변절자)'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대규모 인종학살이 빚어진다. 1391년 세비야에서만 4,000여 명의 유대인이 불 속에 던져졌다. 레콩키스타를 종료한 스페인은 지리상의 발견 시대를 거치며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축적되기 시작한 서구 유럽의 자본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촉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들 사회가 새로운 격변을 맞이한 것은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였다.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1820년대 영국 리즈, 버밍엄, 브래드퍼드는 각각 47%, 40%, 65%의 인구 증가)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 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라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당시 영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이론가였던 M. 아널드는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말로 대중사회의 도래를 기존 사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 요소로 보았다. 자유주의 사상가 J.S.밀과 A.토크빌은 대중사회가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에 의해 수적으로 증가한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대중을 오도하여 선출된 소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제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즘'들은 정치가 교양인의 일이었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상대방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끈질기고 학구적인 의회 토론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고전적인 '이즘'은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그 이즘들의 강령을 검토함으로써 설명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파시즘은 대중 정치 시대에 급조된 새로운 고안물이었다. 파시즘은 세밀하게 연출된 의식과 감정이 가득실린 수사를 적절히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서에 주로 호소했다." <본문 53쪽>

대중사회는 출현했으나 대중을 노동계급으로만 해석한 사회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파악한 보수주의, 교육받은 시민들만을 정치 세력으로 인정한 자유주의 모두 대중을 정치권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중은 분명한 정치세력이었으나 이들을 단지 무지몽매한 세력으로만 파악한 기존의 정치이념들이 놓친 공백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은 대중을 인정치 않거나(보수주의, 자유주의) 반대로 대중이 지닌 보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대중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의식과 더불어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성향을 함께 지녔다) 사회주의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할 세력이 없었거나 세력, 대안을 조직화해내지 못했고(무능했고), 보수주의는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다른 정치 세력으로 파시즘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유주의 정권이 확립돼 있었거나 자유주의 체제 확립으로 나아가던 중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은 개인은 물론이요 집권당의 경쟁세력인 여러 정당에도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부 구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했다. 자유주의 정부는 또한 시민과 기업에 광범위한 자유를 허용했다. ...<중략>... 이런 유형의 자유주의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졌다. 전면전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강력한 조정과 규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은 끝났으나 자유주의 정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쟁 이후 밀어닥친 여러 갈등, 위기, 긴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팩스턴은 이런 현상이 사상적 문제이기 보다는 위기에 처한 "통치의 기술" 문제라 말한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들은 좌우를 막론한 누구든 대중선거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정치 거물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동안 파시스트들은 대중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노동계급을 장악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파시즘"의 정권 장악엔 필연적으로 "대중의 동의"가 뒤따랐음을 지적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시즘의 등장을 대중의 동의 탓으로 밀어 붙이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반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중을 파시즘의 정치적 동반자로 부각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과거 자유주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대중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무지몽매한 군중(mob)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와 결합하면서 대중을 다시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게 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들은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 87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의 책임(양 김의 득표가 노태우보다 훨씬 더 상회했음에도)을 대중에게 전가시킨다. 이들은 중요한 사실(fact)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1921년 10월 30일 로마진군을 결정한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은 대중이 아니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였다. 이탈리아 국왕은 파크타 총리가 제출한 계엄령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내어줄 결심을 내비쳤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상황을 결정지은 것은 파시즘 세력이 아니라, 무솔리니에 맞선다면 자신들의 권력이 위험에 처하리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두려움이었다. 로마진군은 오합지졸의 거리 행진에 불과했으나 효력을 발휘했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성공은 곧바로 독일 나치스를 부추겼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헌납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폭동은 간단하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정부 기능이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보수주의자들은 아직 히틀러를 신뢰하지 못했다.

독일 좌파들은 히틀러가 앞으로도 이탈리아의 방식(쿠데타, 폭동)을 통해 정권 탈취를 노리리라고 방심하고 있었다(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히틀러는 쿠데타라는 불법적인 방식의 권력 탈취 기도가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합법적인 선거에 참여해 이전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히틀러의 힘을 빌어 좌파 세력을 견제하려는 결정을 내리기에 미적거리는 동안 나치당의 인기는 다시 하락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대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적은 사실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위기에서 히틀러를 구해준 것은 보수주의자 프란츠 폰 파펜이었다. 그는 정치 초년생인 히틀러를 명목뿐인 수상에 올려놓고, 자신이 부수상에 올라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1932년 7월 31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독일 의회에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1932년 11월 6일 치러진 선거에서 지지율은 다시 33.1%로 하락했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에 그쳤다. 나치 돌격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2명 중 1명 이상이 나치당에게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은 1921년 5월 15일에 참가한 자유 의회 선거에서 535석 중 불과 35석을 얻는데 그쳤다."  <본문 225쪽>

데틀레프 포이케르트는 "나치시대의 일상사"를 통해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정치적 권력 장악 이후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해 대중의 일상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보여준다. 히틀러의 계획은 노동계급의 일상까지 파괴하고 있으나 동시에 히틀러와 나치의 문화정책의 의도가 대중의 교묘한 저항에 부딪쳐 어떻게 변질되고 좌절되었는지도 잘 묘파해준다. 대중은 히틀러의 문화정책을 교묘하게 비틀었는데, 예를 들어 모든 히틀러 유겐트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상식과 달리 나치 이념을 전파하는 본래의 목적엔 전혀 관심없는 이들에 의해 장악되어 친교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히틀러 유겐트 조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일종의 반항집단화된 하위집단)의 저항을 받아 유겐트 제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이런 반항이 나치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나치 체제의 붕괴를 앞당기거나 대중이 무조건적인 동의를 보냈다는 편견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최근의 사태를 맞이해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의 연원에 대해 팩스턴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그는 1920년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일본의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철저하게 탄압당한 반면, 파시즘의 일부를 모방한 위로부터의 파시즘이 존재해왔음을 지적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파시즘을 모방하였으며 파시즘의 특징을 여럿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식 파시즘은 단일 대중 정당이나 대중 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통치자들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유럽식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일본 지식인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마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타도한 결과로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립된 것과도 같았다." <본문 446-447쪽>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정권은 비록 파시즘 특유의 대중 동원 기술을 사용했지만,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일 만한 자생적 대중 운동이 형성되지 못했기에(나는 아직까지도 일본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시민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 - 물론 전후 일본을 통치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철저한 전후 처리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 일본의 정치질서는 비록 겉으로는 몇 차례 변동을 겪은 듯 보이지만 정치 권력 체계는 본질적으론 시민사회 혹은 대중사회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본다. 일본을 유럽의 파시즘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든 가장 큰 차이는 사상적으로 파시즘을 따른 것이기 보다 국가가 지원하는 대중 동원을 포함한 국가주의 군부 독재란 점이다. 즉, 유럽에서와 같이 명망있는 기존의 정치가들을 전복시킨 파시스트 세력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명망있는 기존 정치가들이 파시즘을 모방하였고, 그들이 전쟁을 치르고, 전쟁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현존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정치 세력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일본, 평화헌법의 일본에서 우경화로 나아가는 현재까지 마치 수백년을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온 뱀파이어처럼 단 한 차례도 교체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사회의 문제, 세계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 파시즘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팩스턴은 파시즘이 기존의 다른 정치 이념과 달리 강령이나 어떤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이기 보다는 권력 그 자체의 쟁취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내세웠던 강령 역시 시시때때로 변화시켜왔음을 지적한다. 그런 까닭에 파시즘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며, 팩스턴이 내리는 파시즘의 정의가 비록 협소한 의미의 정의에 불과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파시즘적인 방식을 모방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군부 독재, 급진화된 민족주의 정치 질서의 출현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셔츠 색깔을 보거나 20세기 초 반체제적인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세운 구호의 메아리를 찾아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위기에 직면한 정치적 교착상황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경고 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 때는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적법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을 빌리기 시작하고 파시스트들의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파시즘 추종 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본문 458-459쪽>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긴 하지만, 다른 정치 세력과 결합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할 때, 기존의 정치 세력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엔 마치 휴면에 들어간 바이러스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효용에 눈뜬 보수세력과 결합할 때, 파시즘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그 점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군부독재와 기묘한 동거를 자청했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 그들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 "파시즘"은 별다섯이 아깝지 않은 매우 좋은 책이고, 부피에 주눅들지만 않는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어느 분이 지적하고 있듯 중간 몇 부분에 다소 어이없는 교정실수들이 보인다는 점은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180쪽 13번째 줄엔 "그러나 신당은 1931년 10월 선거에 단 하나의 의석도 없지 못했다."란 문장이 있는데, "얻지 못했다"가 맞을 것이다.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이 책이 많이 팔리길 바란다. 써놓고 보니 어느새 200자 원고지 60매였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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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때로는 희망이 사람을 망친다
이별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 지음, 김주연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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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5월 12일 독일 함부르크 출생. 1947년 11월 20일 스위스 바젤 사망." 어떤 한 남자가 태어나서 26년을 살고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볼프강 보르헤르트'란 이름을 내가 처음 듣게 되었던 것은 80년대가 거의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 문학의 소위 <잃어버린 세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실업학교를 중퇴하고 연극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곧 징집을 당해 동부전선으로 투입된다. 그는 군인 신분임에도 후방으로 보낸 어느 편지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는 허위에 직면해 찾아낸 진실을 썼다. 결국 그는 재판에 회부됐고, 이후에도 수 차례 더 투옥 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이 과정에서 그의 건강은 소진된다. 종전 직후 자신이 집필한 희곡《문밖에서(1947)》의 초연 전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보르헤르트를 처음 만난 때가 굳이 80년대가 아니었더라도, 그 무렵의 나는 무언가 막연한 절망과 정신적 공황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담했던 운동 단체가 산산조각 나고, 지하 생활자로 변해 있을 무렵이었다. 나에게 세상은 온통 사기였으며 불가능한 이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행가 가사조차도 나의 정신 건강엔 극도로 유해했을 이 시기에 나는 《이별없는 세대》(민음사)를 잡았고, 이 책의 몇 구절인가를 적어 친구들에게 엽서로 보내곤 했다.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과도 같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이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 ―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쫓겨난 탓인지, 이 세상은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겨우 26년을 살다간 한 청년이 냉혹한 한 시대를 견딘 상흔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이별없는 세대》는 짧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하다. 이 책은 내게 사물의 이치는 지식보다 사랑을 통해 파악된다고 가르쳐 주었던 몇 권의 책 중 하나다. 이제 나는 결혼도 하고 스무 살 무렵의 그런 열정과 절망은 잊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앞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머지 삶이 남아 있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 휴가라는 것이 몸만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쉬게 해주는 것이라면 이 책과 함께 자신의 마음속으로 잠시 휴가를 떠나는 것도 좋으리. 이 책에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펼쳐진 드넓은 러시아의 설원과 안개 자욱한 북부 독일의 스산한 거리가 보인다. 그 어디쯤 당신이 고민하고 절망했던 시대의 기억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윗글은 내가 외부잡지의 청탁을 받아 쓴 첫 원고였다. 벌써 오래전 어느 날의 일이다. 아마 이 글을 쓸 때만하더라도 나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고, 이십대였을 게다. 스스로 늙기로 결심한 뒤로부터 나는 청탁 원고를 아직까지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어느날엔가 나는 숨막히도록 뜨거웠지만, 이제 나는 더이상 뜨거울 것도, 싱싱할 것도 없는 표정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책들은 여전히 나를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시베리아 벌판으로 끌어들인다.

어느 병사가 넋나간 표정으로 노리쇠가 얼어붙지 않도록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텅빈 숲을 향해 총알을 발사한다. 조용한 숲 속으로 울려퍼지는 표적없는 총성에 놀란 겨우내 쌓인 눈들이 투둑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다. 이 책의 첫 머리에 나는 지난 1987년의 어느 날 이렇게 적어 두었었다.

"때로는 희망이 사람을 망친다."

뜨거운 바람은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북상 중...
나는 천천히 식어간다. 차갑게 식은 코코아 처럼...

당신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생각된다면....
절대로 이 책을 읽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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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일본사에 대한 첫걸음을 쉽고 재미있게 해주는 책
상식 밖의 일본사 지혜가 드는 창 19
안정환 / 새길아카데미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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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해 말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이긴하다. 알듯 모를듯한 일본 혹은 가깝고도 먼 일본,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나 그 역사에 대해서는 막상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일본. 이제는 극일(克日)도, 반일(反日)도 넘어선 차원에서 일본에 대해 배우고 알아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지 한번쯤 누군가가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읽고 싶다. 기왕지사 일본에 대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으니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역사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해보겠다. 새길에서 나온 "상식 밖의 일본사"란 책이다. 새길에서는 "상식 밖의~"란 시리즈를 통해 "예술사, 과학사, 동양사, 한국사" 등을 펴낸 바 있다. 이 책 "상식 밖의 일본사" 역시 지난 1995년에 나왔으니 어느새 10년 전 책이다. 그 가운데 예술사와 과학사, 일본사까지 이 시리즈 가운데 3권을 읽었는데 세 권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책이었다. 이 책 일본사만 하더라도 300여쪽에 약간 덜 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단단하게 여문데다 가격마저 무척 저렴하다. 물론 지질면에선 요즘 화려한 책들이 워낙에 많으므로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겠다. 그럼 좀 어떤가. 내용이 튼실하면 되었지 않나.

"상식 밖의 일본사"는 모두 58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일본 역사에 대한 대중적 개론서이다. 58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고대 일본부터 현대의 일본까지 두루 아우르게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자칫하면 중요한 에피소드들만 나열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저자 안정환의 전문적 식견과 글솜씨가 어우러져, 거기에 대중적으로 조절된 난이도로 인해 쉽게 읽고, 책을 덮었다가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 다시 손에 쥐게 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손쉽다는 말에는 안 좋은 의미도 포함되기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엔 손쉽다는 말의 긍정적인 의미만 십분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58개의 에피소드들은 이런 것이다. "1. 일본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을까."를 통해 선사 시대 일본의 역사를, "3.쇼토쿠 태자는 최고의 인텔리"에서는 쇼토쿠 태자 한 사람을 통해 씨족간 갈등을 제압하고, 고대 천황제의 기틀을 확립하는 일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인들의 정신 속에 깊이 남아 있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왜구, 우리에게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가게무샤"의 시대 배경으로 익숙한 "다케다 신켄과 겐신",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의 역사를 아우르는 "조선통신사", "가난 때문에 아이를 죽여야 했던 농민들", "전통은 살아있다 - 남녀혼욕"과 같이 당시 일본의 풍속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도 있다. "뇌물로 더럽혀진 정신" 같은 대목에서는 근대 일본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일어났던 유명한 지멘스 뇌물 수수사건(이는 훗날 다나카 전 수상의 '록히드 사건'에서 반복된다), 쌀파동, 야구와 영화를 통해 수입된 서구 문화가 어떻게 일본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이처럼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결과 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꾸며져 있다.

대중적인 글쓰기가 성공적이기는 생각외로 매우 어려운데, 이 책은 그 어려운 난제들을 두루 잘 해결하고 있다. 혹시 일본에 대해 알고 싶은데 너무 어려운 책은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이나 일본의 역사 만화들을 좀더 재미있게 읽고 싶은 분들은 물론 좀더 폭 넓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권해드리고 싶다.

* 이상하게 새길에서 나온 책 전권이 알라딘에서는 품절로 나오고 있다. 꽤 여러 종의 출판물을 내고 있는 곳이자, 예전에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냈던 곳이기도 한데... 신간이 안 나오는 건지 하여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중 서점들을 잘 뒤져보시면 건지기 어렵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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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의미를 둘러싼 투쟁의 무기, 기호학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기호학연대 엮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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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낯설게 읽기"는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쓰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모두 꼭같은 의도를 지녔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것들은 첫째. "대중문화는 지배 블록과 피지배 블록의 헤게모니가 투쟁하는 장"이란 점이고, 둘째. "대중은 무지하고 야만적이고 대중매체에 쉽게 조작당하는 우중이자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앞의 세계에 대응하고 문화와 예술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읽는 수용자"란 것이다. 그리고 셋째. "문화는 억압인 동시에 해방"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넷째. "기호학은 읽고 쓰는 능력을 일컬었던 기존의 ‘리터러시(literacy)’라는 개념을 대체하여 문화에 대한 이해와 판단 능력을 포함한 새로운 읽고 쓰는 능력"이다. 대체로 이상과 같은 부분에서 필자들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으며 기호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기호학을 해방의 수단(방법론)으로 쓰고자 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는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도흠의 "왜, 어떻게 대중문화를 낯설게 읽을 것인가?"와 강인규의 "기호학 : 의미를 둘러싼 투쟁"은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의 전체 핵심을 관통하는 글들이다. 먼저 이도흠의 글은 어째서 대중문화가 어째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하는 장이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도흠의 글은 이 책의 목적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강인규의 글은 문화연구의 방법론이 어째서 기호학이 되는가?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김기국은 "신창원 사건 보도 뒤집어 보기"를 통해 매스 미디어의 보도 논법을 기호학적으로 어떻게 낯설게 읽을 것인가를, 백승국은 우리가 쉽게 마주치는 식료품점의 진열장이 어떻게 우리들을 조작하는가에 대해, 박여성은 청소년 베스트셀러였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만화의 기호학적 속성을 통해 우리들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밝힌다. 이렇듯 앞의 두 장이 전체를 통괄하고 있다면 뒤의 8개 장은 각각의 개별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실생황에서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어떻게 조작과정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기호학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할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대중은 엘리트에 의해 조작되는 동시에 나름대로 대중문화 텍스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주체들로서 그들 나름의 미학적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하고 있다. 지금까지 예술을 바라보는 미학은 전통예술에 기초해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일 뿐이며, 이는 서구의 비평가들이 낯선 동양의 예술을 야만으로 간주한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편견일 뿐이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맥락과 층위(context)에 따라 다르게 수용된다. 모든 문화는 의미소통이며 의미작용이자 이것을 조직화하는 체계다. 한 문화 안에서 인간이 의미를 만들고 소통을 하고 조직화하는 것은 세계관의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 문화의 헤게모니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이들은 그동안 우리가 낯익은 것들이므로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모든 것들을 새롭게, 그리하여 낯설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낯설게 읽기란 기존의 읽기 방식 또 이에 의존한 이데올로기와 제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부정의 읽기이며, 이런 작업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낯설게 읽기는 부정의 읽기이고, 동시에 창조적 해석이므로 기존의 의미(지배 이데올로기)와 투쟁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진보적 실천의 행위가 된다.

대중은 원자화하고 부품화하며 이질적, 고립적, 비조직적 개체이자 타자와의 강한 유대 속에서 삶을 구현하고 조직을 형성하며 공동체를 추구하는 구성원이다. 대중은 지배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대상이자 지배층에 맞서 저항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실천 집단이다. 대중문화가 저질이고 야만이란 것도 이분법적 편견이다. 중생과 부처, 주체와 대상 사이가 서열도 대립도 없이 평등한 것처럼 대중과 엘리트, 작가와 독자, 나와 타자라는 것도 둘이 아니며 하나도 아니다. 대중이 교양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면 엘리트요, 엘리트라 할지라도 대중을 계몽시키지 못하면 진정한 엘리트가 아니다. 문화는 억압인 동시에 해방이며 문화는 길들임과 동시에 부정의 행위다. 대중예술은 욕망을 추구하면서 욕망을 억압하려는 체제로부터 일탈한다. 예술이란 것이 현실을 넘어서 꿈을 꾸는 것이듯 대중예술 또한 현실의 굴레를 넘어서서 꿈을 꾸고 비전을 제시한다. 문화가 양가성을 갖듯 대중문화 역시 양가성을 갖는다. 대중문화에서 억압과 길들임, 해방과 일탈의 양면을 볼 때 대중문화는 올바른 위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텍스트를 바꾸면 현실은 전혀 다르게 변한다. 정직한 텍스트일수록 진정한 현실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텍스트와 현실 사이엔 ‘좁혀지기는 하지만 만날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이처럼 텍스트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쓰는 주체는 자신이 가진 이데올로기, 세계관 등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선택한다. 그는 말 그대로 현실을 다시 존재(re-presense)하게 한다. 재현은 단순히 의미생산에 그치지 않고 당대 권력과 유착해 지식을 생산하고 그 지식은 당대 진실로서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띤다. 재현은 본질적으로 정치성을 지닌다. 텍스트는 의미를 드러내는 만큼 감춘다. 신화는 사물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정화시켜 순결하게 만들고 그것에 자연적이고 영구적인 정당화(justification)를 부여하기에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신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기만하는 신화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광고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독자는 주체의 의도대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현실을 표상할 것이 아니라 이를 뒤집어 읽고, 자기 나름으로 해독하여야 한다. 그리고 텍스트를 다시 써야 한다. 텍스트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수신자를 향하면서 담론으로 변하고 담론은 이데올로기를 품는다. 언어도 그렇지만 텍스트는 억압하는 습성을 가진다. 텍스트의 분석은 신화를 캐는 작업을 동반해야 하며 가장 적극적인 신화 캐기는 그 신화와 대항신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롭고자 하는 이들은 텍스트를 뒤집는다. 뒤집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낱낱이 파헤치고 텍스트를 다시 쓴다. 텍스트를 다시 쓴다는 것은 세계를 다시 창조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시 쓰기는 텍스트를 단순히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신화에 조작되던 대상이 주체로 서서서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기호학은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는다. 기호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미를 찾아 나선다. 기호학은 모더니즘 예술 못지않게 화장실의 낙서에도, 그리고 누벨바그 영화 못지않게 싸구려 에로비디오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기호학이 사회의 모든 현상을 기호(sign)로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해 내는 ‘기호의 과학(science of sign)’이라면, 기호학의 관심은 어떤 문화가 더 ‘우아’하고 ‘고상’한가가 아니라 어떤 문화현상이 ‘더 의미 있는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저급문화’와 ‘고급문화’의 위계화된 구분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대중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기호학을 방법론의 하나로 채택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권력은 그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고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는 의미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물론 그들의 이익에 역행하는 의미와 즐거움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것으로 제시된다. 예컨대 남성지배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자연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관련된 일을 맡기에 적합한 것으로 의미화된다. 기호학은 이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문제 삼음으로써 현실을 낯설게 보여주는 장치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을 ‘거짓말의 이론(theory of the lie)'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호학은 기호로 간주되는 모든 것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상과 의미 있게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기호가 될 수 있다. 기호가 특정 대상을 지시할 때 그 대상은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호학은 원칙적으로 거짓말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만일 어떤 것이 거짓말에 사용될 수 없다면, 역으로 이것은 진실을 말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이라크와의 전쟁(War with Iraq)’라는 기호는 얼핏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중동의 언론이 사용하는 ‘이라크 침략’이나 ‘이라크 학살’등의 기호와는 달리 ‘전쟁(war)’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이데올로기적 기호다. 그리고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와의(with)’는 ‘~에 대한(against/on)’과는 달리 두 세력의 충돌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처럼 제시한다. 실제로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이란 기호를 사용한 반면 알자지라 등 아랍계 언론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라는 계열체를 사용했다. 하나의 대상이 동시에 ‘민중해방’과 ‘민중학살’이 될 수 없는 일이라면, 누구 하나는 에코의 지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진은 말없이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대중매체의 보도 사진에는 언제나 ‘자상한’ 설명이 따라다닌다. 미디어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사진의 의미를 특정한 방향으로 한정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쟁을 보도하면서 민간인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미군의 사진을 사용했을 때, 그 신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군에 대한 특정한 의미와 느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독자들이 사진을 보면서 “미군들이 이라크 민간인들을 거지 취급하고 있다”거나 “미국이 경제제재로 이라크 민간인들을 굶겨 놓고 이제는 사탕으로 환심을 사려 한다”는 창의적인 해석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신문은 사진의 의미를 차단하기 위해 밑에 글을 달아 그 사진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친절히 설명해 주려 한다.

기호의 둔갑술로 인해 이라크를 공격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평화의 사도’가 되기도 하고, ‘국제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이 둘이 동시에 옳을 수 없다면, 어느 하나는 ‘대상을 갖지 않은 기호’, 즉 ‘거짓말’일 것이다. 기호를 통한 의미의 구성은 언제나 특정 입장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기호는 그리 허술하게 자신의 허구성을 폭로하지 않는다. 이렇게 의미체계가 특정 개인 및 집단의 현실적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호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물리적 실체이며 권력 관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기호는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가?”

우리는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다루는 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뉴스 역시 항상 정해진 순서대로 정해진 이야기의 틀을 따라간다는 점에서는 소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실은 결코 그 자체로 이야기의 요소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뉴스가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것뿐이다. 결국 뉴스란 사건을 이야기체로 내러티브화하는 작업이며, 이 과정에 특정한 시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내러티브(narrative)란 항상 특정한 기술자의 입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건이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이약의 형식으로 재구성된다면, 뉴스는 사건보다 앞서 쓰이는 이야기인 셈이다. 뉴스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파업이 ‘불법’이고 ‘과격’하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라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익숙한 이야기’란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배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 말해 ‘현실’이란 객관적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지배적 현실감(dominant sense of realism)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남자의 보살핌을 받아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고, 지방색을 벗고 표준어를 써야만 멋진 인텔리가 될 수 있으며 ‘과격한’ 지하철 파업을 근엄하게 꾸짖어야만 ‘온건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비현실’을 지향해야 한다. ‘현실’이란 지배체제의 자화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현실’을 거부할 때, 사회의 변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제기, 즉 ‘의미를 둘러싼 투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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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과거 모든 시대에, 광장은 항상 존재하였던 것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507
미하일 바흐친 지음, 이덕형 외 옮김 / 아카넷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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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워낙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바흐찐(Mikhail M. Bakhtin 러시아, 1895∼1975)은 1895년 1월 17일 모스크바 남부의 오룔(Oryol)시에서 은행원 미하일 니꼴라예비치 바흐찐과 바르바라 자하로브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895년 12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노동자계급해방동맹”을 결성한다. 이것은 앞으로 바흐찐의 앞날에 펼쳐질 러시아 혁명의 파고가 그의 삶에 어떤 험난한 역경들을 펼쳐질지 미리 예견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바흐찐은 이미 12살 무렵을 전후해 독일어 철학서를 탐독하기 시작했고, 1918년 대학 수업을 마친 그는 M.I.까간(우리에게 “미학강의”로 유명한), 뿜빤스키, V.N.볼로쉬노프 등과 함께 이른바 ‘바흐찐 써클’을 결성한다. 1928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가 전세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스탈린과의 투쟁을 호소할 무렵 바흐찐은 우익지식인 그룹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친구 뿜빤스키와 함께 체포된다. 이듬해 바흐찐은 지정 주소를 이탈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예비 구금 상태에서 풀려나지만 여러 번의 심문 끝에 유죄판결을 받고 강제수용소 5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이때 바흐찐은 다발성 골수염이 악화되어 입원 치료 중이었다.

1930년 그는 부인과 까간, 고리키, 알렉세이 톨스토이 등의 탄원으로 금고5년형에서 추방 5년으로 형이 감형된다. 이해 마야코프스키가 자살한다. 1932년 그의 형 니꼴라이가 망명하여 영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문학박사 및 철학자로 활동하며 비트겐슈타인과 교류한다. 유형기간이 종료된 뒤에도 바흐찐은 카자흐스탄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1934년 소련은 제1회 전소작가대회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기본적 창작방법으로 승인한다. 그는 나이 40세에 이르러 동료 메드베제프의 추천으로 모르도바 교육대학에서 문학개론과 문학교수법을 담당해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무렵 소련에서는 형식주의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고, 학자와 예술가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개시된다. 이듬해 바흐찐은 스스로 학교를 퇴직하고 모스크바 근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근무한다. 42세에 다발성 골수염이 악화되어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만다. 1942년 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에서 '문학장르로서의 소설'을 발표(훗날 '서사시와 장편소설'로 개칭)하지만 곧 독소전쟁이 발발한다.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어머니와 여자 형제가 모두 사망한다.

바흐찐의 논문도 전쟁 중 폭격으로 불타 없어진다. 다행히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모르도바 대학 교육대학 일반문학 담당 조교수로 임명되어 강의하게 되었다. 1950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의 문제"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수정해 제출한다. 같은 해 형 니꼴라이가 영국에서 사망한다. 1961년 정년퇴임한 뒤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문제"를 출판한다. 이 책을 통해 바흐찐은 학계의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69세이던 1965년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의 문제"가 정식으로 출판된다. 1967년 그에 대한 이전 판결의 혐의가 벗겨져 명예회복이 이루어진다. 1973년 그의 나이 77세에 이르러 바흐찐 연구자 이바노프에 의해 메드베제프와 볼로쉬노프의 이름으로 저술된 상당수의 논문들이 바흐찐의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1975년 3월 7일. 러시아 혁명이란 역사의 파란 속에서 도리어 민중의 웃음에서 건강한 희망과 하잘 것 없는 것으로 평가받던 카니발(축제)에서 민중의 가치 전복성, 소통에 대한 굳은 믿음을 선사해준 미하일 바흐찐이 세상을 떠났다. 이것이 간단하게 살펴 본 바흐찐의 생애다.

역사적으로 정의된 민중문화의 웃음의 형식은, 일반적인 엄숙함에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일방적, 도그마적 엄숙함의 형식에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고대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장르에서 가장 심오하게 표현되고 있었던 비극적 엄숙함을 알고 있었다. 비극적 엄숙함은 보편주의적이다(그러므로 <비극적 세계관>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또한 비극적 엄숙함은 창조적인 파멸의 이데아가 스며들어 있다. 비극적 엄숙함은 절대적인 독단주의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그마적 비극은 도그마적 웃음처럼, 불가능한 것이다(고전주의적 비극은 독단주의를 제압하고 있는 가장 훌륭한 본보기이다). 독단주의는 그 어떤 형식과 다양성 속에서도 진정한 비극을, 진정한 웃음을 모두 사멸시키고 만다. 고대문화의 제반 조건 속에서 비극적 엄숙함은 세계에 대한 웃음의 측면을 배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과 공존하고 있었다. …<중략>… 고대의 엄숙함은 웃음이나 패러디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음으로 하여금 자신을 정정하고 보완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세계에서 공식문화와 민중문화 사이에는 중세에서와 같은 그러한 첨예한 대립은 있을 수 없었다. …<중략>… 진정한 웃음은 양면가치적이고 보편적이며, 엄숙함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정화하여 그 자리를 메워준다. 독단주의, 일면성, 경직성, 광신(狂信)과 무조건성, 공포와 위협적 요소, 교훈적 성격, 소박성과 환상, 조악한 일차원성(一次元性)과 일의성(一意性), 우둔한 목청 돋구기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본문 193-195쪽>

바흐찐에게 어쩐지 최인훈이 4.19직후 잠시 동안 해방된 남한의 한 귀퉁이에서 발표한 "광장"이 연상된다면 최소한 나의 기준으로는 정확하게 본 것이다. "광장""밀실", 혹자는 광장은 남한을, 밀실은 북한을 상징한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광장과 밀실은 인간의 야만이 문명 속에서도 잔인하게 꽃피듯 어디에나 있다.

바흐찐은『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의 서문에서 프랑수아 라블레의 문학사적 위치를 유럽 근대문학의 창시자들이라 할 수 있는 단테, 보카치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의 대열에 올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라블레가 이들 근대문학의 창시자들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작가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라블레가 "다른 작가들보다 민중적(民衆的)원천들, 특히 그 특징적인 원천들과 밀접하고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여 년에 걸친 민중문화의 발전 속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될 수 있는 라블레의 이런 요소들이 비록 17세기, 18세기를 거치며 퇴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런 요소들은 살아남아 있다.

웃음의 퇴화(退化) 과정은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던 것인가?
17세기에는 절대군주제라는 신질서의 안정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새롭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전세계 - 역사적 형식>이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 형식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과 고전주의 미학에서 그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찾아내고 있었다. 합리주의와 고전주의는 새로운 공식 문화의 기본적 특징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는 교회-봉건 문화와는 상이했지만, 비록 도그마적인 분량이 적었을 뿐, 이전과 같은 권위주의적인 엄숙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르크스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지배 계급이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라고 제시하는 새로운 지배 개념이 창조되었던 것이다. <165쪽>

바흐찐은 라블레에게 있어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기법(바흐찐의 문학 이론에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카니발적 현상이 하나의 역동적인 소설 기법으로 수용된 문학 양식. 기존의 고정된 사물의 형태나 예술적  양식을 일그러뜨리거나 과장된 모습으로 부풀려 자유분방하고도 기상천외한 형태로 재창조해 내는 것)은 세계에 대한 그릇된 전체상을 파괴하고 재정립하며, 사물과 관념사이의 허위에 가득 찬 위계적 연결 관계를  역전시킴으로써 해체하고, 그로부터 사물들을 해방시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타고난 본성에 맞는 자유로운  결합과 이상적인 생명성의 고양에 이를 수 있도록 하려는 예술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보았다.  계급과 국가 사회 제도가 형성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앞서 살펴본 고대세계에서 공식문화와 민중문화 사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신성(神聖)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엄숙함과 우스꽝스러운 관점"들은 모두 거룩한 것, 다시 말해 공식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근대 부르주아 문화와 미학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웃음에 대한 그릇된 문학연구들은 웃음의 요소를 가장 미천한 곳에 자리하게 하였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기법)에 기반한 웃음은 비공식적인 관점의 위치로 전락하였다.

중세의 웃음은 모든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영역들과 모든 공식적인 삶과 사회 생활의 엄격한 형식들의 범주 외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략>… 중세 공식 문화의 특징은 일방적인 엄숙함의 음조였다. …<중략>…  성 요한크리소스톰은 어릿광대와 웃음이 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악마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도들은 항상 엄숙해야만 하고, 자신의 죄악에 대해 참회해야 하고 슬퍼해야만 하는 것이다. <본문 125쪽>

바흐찐은 계급문화 속의 엄숙함 - 공식적이고, 권위적인 것이며 강제와 금지, 제약들로 이루어진 - 은 항상 공포와 위협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중세 민중들은 이런 엄숙함의 공포와 위협에 대한 승리가 웃음에 있음을 감지하였는데, 웃음은 도적적 공포를 무화시키고, 죽음과 내세에 따르는 징벌, 지옥에 대한 승리로 이끌어 내는 요소로 보았다. 축제(카니발)은 모든 공식적인 체계들의 효력과 금지들, 계층 질서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힘을 지녔다. 오늘날 "문화연구"에서 대중문화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헤게모니를 놓고 벌이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흐찐이 주장하는 카니발의 이런 속성에 기대고 있다. 카니발은 공식문화(지배계급의 문화)가 지닌 관습적이고 타성적인 문화형식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대중의 즐거움, 웃음은 지배계급이 제공하는 공식문화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한 방식으로 이를 기이한 형태로 뒤바꿔 버린다.(존 피스크 식으로 말하자면 대중은 수동적 거부로부터 적극적 거부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로 지배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 물론 이때 가장 적극적인 거부는 텍스트의 전복적 다시 읽기를 통한 새로운 텍스트의 창조다. 종종 이것은 패러디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흐찐은 17세기 이후 웃음의 퇴화 해체 과정이 웃음의 지배 영역을 점차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웃음은 역사적, 보편적 개성(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시대 정신"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를)을 풍자하는 것에서 점차 개인적인 조롱으로 사적인 영역으로 후퇴한다. 그는 이것이 17세기로부터 시작해 18세기에 이르러 세계의 모델 자체가 일반화, 경험론적 추상화, 전형화와 같은 요소들의 의의가 현저하게 증가된 결과 개별적인 단독자(單獨者)가 남게 된 까닭이라고 보고 있다. 개인이 출현한 것이다. 바흐찐은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유쾌한 상대성"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유쾌한 상대성"이란 바흐찐의 표현대로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의 입장으로 나를 전이시키는 상호주관적인 인식 태도를 말한다. 이를 통해 인간 존재는 세계와의 화해, "삶과 죽음과의 화해"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서가 아닌 유기적 전체처럼 부분과 부분들의 공존을 전제하면서, 그들의 전체가 단일한 하나의 총체적 형상을 구현하는 세계감각이며, 공존의 의지마저 상실하게 될 때 세계는 "거대한 미로"가 된다고 말한다.

16세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라블레의 소설을 읽고 웃었는데, 웃는다고 해서 그의 소설을 경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와 쾌활한 웃음은 웬일인지 경멸당하고, 차원이 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본문 188쪽>

바흐찐은 합리적 이성에 기댄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새로운 엄숙함을 만들어냈음을 비판한다. 나의 개인적인 추측임을 전제로 이야기하자면 바흐친이 이런 비판을 가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소비에트 러시아, 스탈린 체제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공식적이고 기본적인 창작방법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채택할 무렵 유형생활을 떠나야 했던 경험, 지노비에프와 트로츠키가 숙청되는 등, 한 때 혁명동지로 강철 같은 대오를 자랑하던 이들이 서로를 고발하고, 모함하며 잔인한 숙청을 일삼던 시기를 살아낸 경험 말이다. 그렇기에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도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릅니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바흐찐 자신도 그런 경험을 치렀다. 이때 유형지에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에게 금지된 책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희극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극을 해결한 뒤 윌리엄 수사가 한 그런 말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흐찐은 공식적이고 성스러운 것(공식문화)들이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한 것들을, 삶의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들로부터 인간 자신을 해방하는 힘으로 웃음을 선택했다. 나의 결론을 대신하여 이 책의 말미에 적힌 바흐찐의 생생한 목소리를 옮기는 것이 낫겠다.

언제나 존재하였으며 결코 지배계급의 공식문화와 합쳐지지 않았던 민중의 독특한 웃음 문화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 인류 역사의 문화적, 문학적 삶과 투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를 조명할 때에, 우리는 자주 "각 시대의 말을 믿도록", 즉 그 시대의 공식적 이데올로기(많건 적건)의 주창자들을 믿도록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중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민중의 순수하고 흠없는 표현을 찾아서 해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우리는 중세와 중세 문화에 대해 매우 단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세계사라는 드라마의 모든 움직임들은 웃고 있는 민중들의 합창 앞에서 공연되었다.(물론 민중은 스스로가 세계사라는 드라마의 참가자이다. 그러나, 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 다른 차이점들은 별개로 하고 - 민중은 양면가치적인 웃음을 웃을 권리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중략>... 민중문화는 세계사의 각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 모든 시대에, 광장은 항상 존재하였던 것이다. <본문 721-722쪽>

* 오늘 처음으로 일독한 책에 대해 겁없이 리뷰를 올리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언제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에 대해선 별을 다섯 밖에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만나기 어려울 만큰 전공자들이 큰 공을 들여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바흐찐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단 분량면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필자 연보와 옮긴이 후기 등까지 포함하면 거의 800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와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되 "엄숙"해지고 싶지 않은 독자라면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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