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어떨까? 지금 철도 민영화문제를 둘러싸고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는 국민의 발을 묶어놓는다거나, ‘수출 물량 수송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그 이전부터 줄곧 계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가지만 묻자. 그럼 노동자는 국민이 아닐까? 나는 노동자가 아닌가. 만약 내가 내 직장에서 어떤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위에서 물었던 답을 제시해주는 책은 아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어왔던 민중에 대한 역사서술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책은 아니며, 주로 역사학이나 역사 관련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사회변혁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80년대 한국사회에 민중사학의 바람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며, 역사 발전 과정을 민중의 주체성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민중이 주역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망을 모색하는 학문경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경향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시민/민중의 분리라는 한국사회의 다변화 과정에서 과연 민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받게 되었고, 학문 내적으로 주역이 되어야 할 민중이 오히려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종속되는 민중으로서 그려지는, 따라서 민중사학은 엘리트 지식인에 의해 상정된 민중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1990년대 중반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IMF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하였고, 노동과정의 유연화 속에서 과거 민중사학이 내걸었던 실천성과 비판의 정신을 되살려보고자 하는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역사학계 일각에서 새로운 민중사를 표방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내 연구반인 민중사반이 그 대표적인 연구자 단체이다. 이 책은 바로 민중사반이 새로운 민중사를 내걸고 발표했던 글들을 새롭게 묶어낸 것이다.

 

새로운 민중사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믿음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12).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민중을 투쟁하는 주체에 앞서서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생활자로서 받아들이고, ‘민중이 특정한 계급연합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다양한 구성과 정체성을 내포한 여러 목소리를 갖는 주체로서 상정한다. 또한 저자들은 민중을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압받기 보다는 종속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 주체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저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실천적인 역사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과거에 민중사가 가능했던 것은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는 계급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고그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의 투쟁에 의해서 역사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한국사회의 조건이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87절차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된 이후 사회 분화가 훨씬 심화하면서 탈중심, 다변화한 사회로 바뀌었다. 이랬을 때 그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재현해갈 수 있을지,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 새로운 민중사시도에 많이 녹아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고, 그런 고민들을 실제 역사서술에 녹아내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러한 연구 결과물들을 민중’, ‘대중’, ‘다중등으로 표현되는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그럼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전망해가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은 만만지 않다. ‘새로운 민중사를 펼쳐나갈 때, 그것이 역사학계의 학문적인 방법론에 관한 검토에만 머무른다면 과거 민중사학에 대한 실천성에 대한 비판적 계승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민중사가 나아갈 방향이 쉬운 것만은 아닌 상황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바뀌려면, 앞에서 언급했던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뀌려면(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지식업계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이지만^^), 이 책에서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민중사는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들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미국민중사'의 저자이자 미국의 살아있는 지성이었던 고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노동자든, 유색인이든, 여자든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하고 저항함으로써 운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 하워드 진, 앤서니 아노브 엮음,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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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정병욱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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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라고 하면 대체로 저항과 친일의 형상들이 많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친일과 저항은 식민지라는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잘 드러내주지만, 그것이 식민지 사회를 모두 드러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 역사가 말해주듯이 일반 사람들이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민족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식민지 현실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어찌 보면 평범한 것으로 보이는 일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경성으로 유학 온 시골학생, 시골에 머물다가 장터에 읍내 구경을 돌아다녔던 농민과 같은 인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편으로는 ‘불온’하다는 혐의를 받거나 실제 불온함을 꿈꾸다가 일제 식민권력에 붙잡혔기에 저자를 통해 우리들 앞에 등장할 수 있었다.

 

‘불온’하다는 것이 뭘까? 그것은 통치자, 지배자의 시선에서 마땅치 못한 어느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용어다. 저자는 그러한 ‘불온’함을 일상적인 불평불만 속에서 잡아내고 있으며, 일상생활이라는 차원에서 식민지 사회가 포착된다. 일상적인 불평불만이 그때뿐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불평불만이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통치권력이 전시체제기라는 극도의 상황, 권력의 힘이 ‘내선일체’를 표방하면서 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촘촘하게 통제를 가했던 상황 변화에서 가능했다.

 

저자는 지배권력의 시각이 듬뿍 담긴 법원의 형사사건 기록을 파고들면서, 그 이면의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추리소설과 같이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그래서 글은 자칫 딱딱할 것 같으면서도 잘 읽히는 편이다. ‘잘 읽히는’ 과정에서 식민지 말기 조선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식민지 말기 강제동원과 일상적 차별이 더욱 심해지던 공간에서 식민지 치하에서 살던 일반 사람들은 대체로 고단한 삶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 감내의 이면이 여러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경성유학생 강상규의 경우 일제의 지배에 대한 역겨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도 학교생활은 모범적이었다. 또 입신출세는 독립된 세상에서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있었다. 학적부에 기록된 ‘모범’적인 강상규의 삶은 겉으로 보면 체제의 말을 잘 따르고 협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따로 기록한 일기에는 일제에 대한 비아냥과 분노가 점철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저자는 모범과 불온의 동거, 개인의 이중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정치나 운동이 아닌 삶의 공간에서는 불온과 순응의 모호한 공존이 일상적”(236쪽)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불온과 순응이 공존한다는 차원에서 식민지 사회는 ‘저항과 친일(협력)’을 넘어서서 다채로운 식민지 사회로 바뀐다. 또 개인 차원에서 양자가 모두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렇게 식민지 사회의 다채로움, 그리고 그 사회를 살아갔던 사람의 디테일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한다.

 

여담이지만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저자가 얘기했던 것처럼 불온은 저항의 뿌리가 될 수 있다. 다양한 '불온'함은 결국 식민지에서 해방을 가능케 했다. 또한 “불온이 없는 사회에서 독재는 시작된다.”(242쪽) 많은 사람들을 ‘불온’하게 만드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불온’함이 안 보이는 사회, 막혀 있는 사회 역시 바람직한 사회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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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
이정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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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보름 남짓이다.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는 가운데 국무위원 인선도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현재까지 인사문제와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당선 당시 그녀가 표방했던 ‘국민대통합’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기를 바란다. 그런 와중에 주목할 만한 책이 한 권 출판되었다. 조선시대를 전공하고 있는 역사학자 이정철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역사비평사, 2013.2)이 그것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민생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민생’을 생각하며 청백리로 살아간 네 명의 인물을,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 시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네 인물은 16~17세기 당대에 손꼽히는 경세가들이었다. 그 유명한 율곡 이이(1536~1584)는 성현의 법도와 마음가짐만을 강조하던 당대에 민생을 위한 경제개혁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개혁론은 당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나갔다. 이원익(1547~1634)은 40여년에 걸쳐 재상을 하면서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나라에 백성의 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뒤를 이어 조익(1579~1655)은 조선 후기 국가에 의한 최고의 개혁으로 알려진 대동법(*아래 주석 참조)을 기초하였고, 김육(1580~1658)은 그것을 완성시켰다. 이들은 모두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현실에 근거한 대책을 제시해갔던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네 인물을 저자는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이이), 진심으로 헌신한 관리(이원익), 이론과 현실을 조화한 학자(조익), 안민을 실현한 정치가(김육)로서 표현했다.

 

한참 인사청문회가 펼쳐지고 후보자들이 각종 비리의혹으로 구설수에 있는 시점이다. 그 시점에서 위의 네 인물들은 대체로 청렴한 관직생활로도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한 예만 들면, 이원익은 평안도 안주 목사로 임명된 다음 날 혼자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대개 지방관에 임명되면 한동안 한양에 머물면서 자신의 임명과 관련한 정부 기관들과 유력자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차리는 일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그 때 신임 수령을 모시러 현지 아전들이 서울에 도착하면, 신임관은 부임지에 떠들썩하게 내려갔다고 한다(153쪽). 또 그는 40년에 가깝게 3대에 걸쳐 정승을 지내는 등 매우 보기 드문 관직생활을 지냈지만, 기와집도 아닌 두어 칸 띠집에 머무를 정도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인조는 그를 칭찬하며 새 집을 지어주고 이불과 요를 내렸다고 한다(221~222쪽). 오늘날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공직에 머물면서 전시행정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고, 나중에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남긴 채 ‘먹고 튀는’ 인물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책은 역사물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조선시대 상황과 관련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점도 독자의 이해를 편하게 한다. 보기를 들면 신사임당이 결혼한 뒤에도 강릉 친정에 남아 있었던 것을 두고, ‘시집(시아버지 집)간다’는 말과 ‘장가(장인의 집)간다’는 말의 차이점을 설명하여 조선 전기에 장가가는 것이 큰 흐름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37쪽).

 

또한 책의 주인공, 네 인물들은 모두 뛰어난 업적 내지 명망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인물들의 업적과 생애를 소개하면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도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온다. 이이는 10대 후반 신사임당의 죽음으로 정서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지만, 그 혼란에는 아버지 이원수의 여자 문제도 더해졌다는 속내가 있었다(39쪽). 이러한 설명들이 책 중간중간에 초상화라든가 관련 사진들을 많이 넣음으로써 이해를 돕게 만들고 있는 점도 주목을 끈다.

 

지금도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등등 각종 사회경제적 현안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제기되고, 구호로서 끊임없이 부르짖는 모습을 목도하지만 막상 그것을 정책화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눈을 돌릴 때는 공염불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관료와 지식인들의 인식도 의외로 관념적이거나 낮은 수준인 경우도 보인다. 여기서 다뤄진 네 인물들을 보면서 지금도 마찬가지로 ‘경세’가 필요한 현실로서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진실’로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는 21세기적인 의미의 경세가, 목민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일독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 대동법 : 조선후기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여, 공물 유통과정에서의 각종 폐단을 방지하고자 한 제도. 전국적으로 유통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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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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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분단되는 과정은 미소의 분할 진주와 민족 내부의 좌우 대립의 산물이었다. 전쟁 후 분단체제의 형성은 이념과 사상적으로 양 극단으로 분열하는 과정이었고, 그 사이의 제3의 길 또는 상호 협동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은 배제되고 말았다. 후지이 다케시의 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탄생되고, 분단체제가 성립되는 와중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해갔던 그룹과 그 사상에 주목한 것이다. 초점은 일제시기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고 광복군을 이끌었던 인물인 이범석과 그를 중심으로 한 조선민족청년단(족청) 계열에 있다. 그들 족청계열의 사상과 활동은 반공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이었으며, 포퓰리즘적인 대중민주주의를 구사했다. 족청계열을 검토함으로써 저자는 대한민국 초기 국가의 성격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범석은 일제시기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군사화·지도자 숭배’로 요약되는 장제스식의 파시즘 사상을 익혔다. 또한 족청계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였던 안호상은 독일에서 인종주의적인 경향을 띤 철학자의 지도를 받으며, 헤겔식의 민족의 절대적 규정성을 중요시하였다. 한편 양우정은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가 1930년대에 전향하고 가족을 중시하였다. 이들이 결합되어 족청계의 사상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념은 파시즘이 저항민족주의와 결합한 형태였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되는 경향 속에서 계급투쟁에 강경하게 대처하려 할 때, 파시즘이 참고할 만한 사조로 존재하고 있었던 점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족청계는 이승만이 한민당과의 동맹관계를 깨면서 새롭게 파트너로서 선택된다. 그 결과 이범석이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족청계는 반공주의를 취했음에도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를 고취하면서 미국과도 대립하였고, 그들의 대중동원형 정치 형태 역시 한국의 내정 안정을 원했던 미국의 입장과 배치되었다. 이런 가운데 족청계와 이승만 지지 세력은 갈등을 빚었고, 족청계는 미국의 견제와 이승만의 제거 명령으로 권력의 중앙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반공주의를 취하면서도 민족주의적이었던 족청계의 몰락은 이제 더 이상 남한사회에서 민족주의를 표방하기 어렵게 된, 반공 일변도의 사회로 진행되는 냉전체제의 완성으로 귀결되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국민당과 관련 자료에서 미군정 및 미 대사관 자료, 서구사회의 이론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를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가 언급한 자료도 일본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에 걸쳐 있어, 그 지적 편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족청계의 활동과정과 한계를 그 중심세력의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분석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족청계가 조직력을 자랑하면서 원외 자유당 세력을 거의 포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미국의 공작과 이승만의 제거 명령에 의해 쉽게 몰락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점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족청계는 계속해서 이승만의 의사에 좌지우지되었다.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점은 이승만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리더 중심의 세력화와 대중 동원형 정치의 특징과 한계라는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이 책의 제목이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이다. 족청계가 파시즘에 공명했던 부분은 상당히 비중있게 설명되고 있지만, 제3세계주의라는 측면은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장제스식의 파시즘을 받아들이면서 민족 지상주의를 택했던 점이 나치 등의 파시즘과는 차이일 것인데, 그것이 갖는 제3세계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향후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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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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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쪽에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게 되었다. 특사가 파견되고 새롭게 관계 설정이 이뤄지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역시 한일 간에 항상 중요한 화두는 역사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양측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사인식이 공유되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상호이해가 진행될 때, 양측의 평화로운 공존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일 역사인식/역사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책이 존재하지만, 이번에 이연식의 <조선을 떠나며>(역사비평사)는 좀 색다른 구석이 있어 주목된다. 이연식은 조선이 해방을 맞이한 1945년 그 직후의 일본인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그 이전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한국을 곧바로 연결해주는 글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해방 직후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조선인, 그리고 점령군(미군, 소련군) 등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피력했듯이 이 책은 한일 양 민족의 '헤어짐'의 방식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일본인들의 회고를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5쪽). 여기에는 해방 직후 일본인들의 다채로운 인간군상이 묘사되어 있다. 일본이 패망하고 천황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고 당황했던 일본인들, 일본이 패전할 것을 예측하고 재빠르게 재산과 가족을 미리 일본으로 옮겨간 사람들,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조선에서 구현하고 과시하고자 했던 조선총독부가 패전 직후 상황에 특별히 대처하지 못하고 조선에 있던 많은 일본인에게 불안과 분노를 샀던 사실, 자신의 고향은 조선이라는 믿음 속에서 잔류를 원했던 일본인들, 소련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38선 이북의 일본인 남자들과 남겨진 일본인 여성들과 아이들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본토 귀환과 정착 과정을 통해 저자는 구 일본제국의 균열과 취약성, 일본 지배체제의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 패전 과정에서 일본으로 귀환했던 해외 일본인들은 본토인 입장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민폐 집단으로 비춰졌다. 패전의 폐허 속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귀환 일본인들은 골칫거리로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조선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삶에 무지했고, 관심이 없었다. 그 점은 일본제국의 지배체제가 갖고 있던 취약성이었다. 아무리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나라는 '내선일체'를 강조해도 막상 일본인들의 무관심과 무지가 존재하는 이상, 그 구호에는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의 회고에서 드러나는 조선인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일제시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어떻게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총독부 관리의 딸로 조선에서 20여 년을 살았던 한 일본인 여성은 노년에 다시 한국 땅을 찾았다. 그가 살았던 지역인 현재의 충무로 일대는 그가 눈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었던 만큼 여전히 익숙한 곳이었으나, 거기서 인사동과 종로 쪽으로 가자마자 그는 낯선 이방인이 되었다. 조선에서 20년을 살았지만 그의 행동반경은 그가 살던 집과 학교, 근처에 머물고 있었고, 조선인들이 살던 곳으로는 시선이 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다시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결국 일본 통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편 이 책은 해방 후에서 현재까지 한-일 양국의 문제에 가로놓여 있는 역사인식이라든가, 여러 문제들의 기원, 특성을 이해하고 파악하게 해주는 글이기도 하다. 패전 직후 일본 정부는 사회 곳곳에서 불거진 집단 간의 균열을 막고자, 모든 국민이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정치적 수사를 구사하며 광의의 '전쟁 피해자.희생자론'을 유포했다. 이는 국가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였다. 어쨌든 귀환 일본인이나 본토 일본인 등 자신들이 '패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은 이후 동아시아 역사분쟁을 낳는 인식적인 기반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라는 사실이 가려지고, 일본이 점령했고 통치했던 사람들의 피해상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문제가 발생했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도 피해자'라는 인식에서 왜 너희만 피해자라고 강조하느냐는 인식의 구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현재 한일관계의 문제와 그 배경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과거 일본에 피해를 입었던 우리만을 생각하고, 이후에 한국(사회)이 다른 사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없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현재 '다문화'라고 표방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공존의 차원에서 한국사회가 '함께 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한 문제들에게도 시선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가해와 피해의 시각을 넘어서서 진정한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기 위해서, 끝으로 '세계인'으로서의 한 귀환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7장 부분에서 저자는 조선의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함흥 지역에서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직후에는 고통을 겪고 있던 일본인 동포의 귀환에 힘을 썼고, 귀국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그가 살았던 북한 사회가 발전하도록 애정을 갖고 기원했던 한 일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혹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는 않았는지 ... "(264~265쪽)

 

  민족과 국가의 틀을 벗어나서 진정하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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