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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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분단되는 과정은 미소의 분할 진주와 민족 내부의 좌우 대립의 산물이었다. 전쟁 후 분단체제의 형성은 이념과 사상적으로 양 극단으로 분열하는 과정이었고, 그 사이의 제3의 길 또는 상호 협동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은 배제되고 말았다. 후지이 다케시의 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탄생되고, 분단체제가 성립되는 와중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해갔던 그룹과 그 사상에 주목한 것이다. 초점은 일제시기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고 광복군을 이끌었던 인물인 이범석과 그를 중심으로 한 조선민족청년단(족청) 계열에 있다. 그들 족청계열의 사상과 활동은 반공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이었으며, 포퓰리즘적인 대중민주주의를 구사했다. 족청계열을 검토함으로써 저자는 대한민국 초기 국가의 성격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범석은 일제시기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군사화·지도자 숭배’로 요약되는 장제스식의 파시즘 사상을 익혔다. 또한 족청계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였던 안호상은 독일에서 인종주의적인 경향을 띤 철학자의 지도를 받으며, 헤겔식의 민족의 절대적 규정성을 중요시하였다. 한편 양우정은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가 1930년대에 전향하고 가족을 중시하였다. 이들이 결합되어 족청계의 사상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념은 파시즘이 저항민족주의와 결합한 형태였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되는 경향 속에서 계급투쟁에 강경하게 대처하려 할 때, 파시즘이 참고할 만한 사조로 존재하고 있었던 점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족청계는 이승만이 한민당과의 동맹관계를 깨면서 새롭게 파트너로서 선택된다. 그 결과 이범석이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족청계는 반공주의를 취했음에도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를 고취하면서 미국과도 대립하였고, 그들의 대중동원형 정치 형태 역시 한국의 내정 안정을 원했던 미국의 입장과 배치되었다. 이런 가운데 족청계와 이승만 지지 세력은 갈등을 빚었고, 족청계는 미국의 견제와 이승만의 제거 명령으로 권력의 중앙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반공주의를 취하면서도 민족주의적이었던 족청계의 몰락은 이제 더 이상 남한사회에서 민족주의를 표방하기 어렵게 된, 반공 일변도의 사회로 진행되는 냉전체제의 완성으로 귀결되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국민당과 관련 자료에서 미군정 및 미 대사관 자료, 서구사회의 이론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를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가 언급한 자료도 일본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에 걸쳐 있어, 그 지적 편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족청계의 활동과정과 한계를 그 중심세력의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분석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족청계가 조직력을 자랑하면서 원외 자유당 세력을 거의 포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미국의 공작과 이승만의 제거 명령에 의해 쉽게 몰락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점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족청계는 계속해서 이승만의 의사에 좌지우지되었다.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점은 이승만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리더 중심의 세력화와 대중 동원형 정치의 특징과 한계라는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이 책의 제목이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이다. 족청계가 파시즘에 공명했던 부분은 상당히 비중있게 설명되고 있지만, 제3세계주의라는 측면은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장제스식의 파시즘을 받아들이면서 민족 지상주의를 택했던 점이 나치 등의 파시즘과는 차이일 것인데, 그것이 갖는 제3세계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향후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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