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수학 -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수학의 원리
아드리안 파엔사 지음, 최유정 옮김 / 해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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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년이니까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수학> 쯤 쉬울 줄 알았다. 역시 수학은 나이순이 아니다. 무슨 객기였을까? 즐겁고 편안하게 읽으려던 호기로운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생각보다 책이 잘 안넘어갔다. 



퍼즐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SOS를 청했다. 의외로 책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는 투박한 그림을 곁들이며 설명을 해주었다. 듣고 다시 읽어보니 이제야 글자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볍게 휘리릭 읽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보려 했던 성급한 마음이 내 눈을 가렸나보다. 마구 재밌는건 아니었지만 이해가 되면서 약간의 즐거움이 더해졌다.



책 속에는 일상의 다양한 풍경을 가진 수많은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문제의 난이도가 각각 천차만별이다. 이어령 선생님 말씀처럼 소 풀 뜯어먹듯 여기저기 옮겨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제 위주로 풀면서 읽었다. 지금은 난이도 하 문제 위주로 눈이 가지만, 반복하다보면 난이도 상 문제로도 시선이 옮겨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들어가며 : 공주가 내민 손


여기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구애를 받는 한 공주가 있다. 그녀는 그 어떤 대단한 청혼에도 무감했다. 공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 만 같았다. 이야기의 끝에 반전이 있다. 안경을 건넨 마지막 청혼자가 공주의 마음을 얻게 되는데, 알고보니 공주는 근시였다. 마지막 청혼자가 한 일은 문제를 보는 초점을 바꾼 것이다.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 것이다.


"뉴턴의 이항 정리는 밀로의 비너스 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가 가장 흥미로운 이유는 나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상은 허준이 교수가 받은 '필즈상' 밖에 몰랐는데, 수학 대중화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되는 '릴라바티상'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2014년 '릴라바티상'을 수상했고, 세계적인 수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자유로운 생각과 대담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수학 문제를 보여주고 싶은 저자는 마치 공주의 마지막 청혼자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1장. 흥미로운 수


[호텔]


힐베르트 호텔문제는 무한한 수의 사람이 방이 무한개 있는 호텔에 투숙할 수 있는 해결책을 묻는다. 직관을 거스르는 무한집합의 매력이 드러나는 문제이다. 아이가 한참 '무한소'나 '무한대'에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는데, 속으로 '그냥 외우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군'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아이에게는 이런 스토리가 필요했다. 스토리가 가진 힘이 대단하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


"모든 상품의 가격이 1000달러인 상점에 들어간다 -> 가격이 내려갈수록 더 많은 수량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 그런데 물건 값이 0원이라면?"


분모에 0이 올 수 없다는 것은 고등수학을 풀면서까지 두고두고 중요하다. '그냥 외워! 약속이야!' 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며 체득할 수 있다.



[1=2의 모순]


예전에 아이가 유튜브 채널 'Logical 로지컬'을 보고 와서는 나에게 '2=1'이라는 말도 안되는 증명을 그럴듯하게 해보인 적이 있다. 눈뜨고 코베이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 등장한 추론과 과정은 달랐지만 원리는 비슷한 것 같다. 역시 입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군' 했는데, 왜 잘못된 증명인지 오류 찾기도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 뒤에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배치한 것 같은데, 이런 흐름이 좋다. 



[종이는 몇 번이나 접을 수 있을까]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자주 해주던 말인데, 실제로 종이접기를 해보면 8번 이상 접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성경책 종이처럼 얇디얇은 종이(0.001cm)라도 27번만 접으면 두께가 1km 반에 달하게 된다고 한다. 2의 27승을 직접 계산해보지 못했지만, 계산기를 이용해 두들겨 계산해보니 진짜로 약1,342m가 나왔다. 지수함수적 증가의 놀라움을 확인할 수 있는 유명한 문제인 것 같다.



[자연상수 e = 2.718281828 ...]


문과에서는 배우지 않고 이과에서는 배우는 자연상수 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는 '오일러 항등식'​에 파이와 함께 어우러지는 e는 일상에서 자주 발견되는 매우 중요한 수라고 한다. e가 흥미로운 것은 지수가 증가함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만 같지만, 증가하더라도 무분별하게 계속 증가하지 않고 한계, 상한선이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이치와 닮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은행의 복리 이자의 개념으로 풀어보니 e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e의 중요성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면서도 "현재로서는 e가 연 100%의 이자율이 적용되며 기간이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1달러 자본 성장의 상한성을 의미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자."며 이야기를 급하게 마친다. e에 대해 지면을 좀 더 할애하여 자연 속 일상생활 속 e의 발견을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줬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2장. 수학자의 고민



2장은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며 읽었다.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의 대화]


다음은 수학을 공부하다 물리학에 전념한 '아인슈타인'과 원래 물리학을 전공하다가 수학으로 바꿨던 '푸앵카레'의 대화이다.


아인슈타인: 수학으로는 어떤 말이 참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는 알아낼 수 있지만, 어떤 말이 중요한지는 결정할 수 없더군요.


푸앵카레: 중요한 말과 사소한 말은 구분할 수 있어서 어떤 말이 중요한지 결정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몰랐기 때문이죠.


[우리 수학자들은 추론을 하지, 숫자를 세는 게 아니라고!]


위스키와 얼음조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것은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다시 진입할 때의 충격이나 폭발적 인구 증가 및 기후 예측과 관련이 있다. 


연구자는 시스템의 수학 모델을 구축하고, 그것이 실재를 반영한다고 가정하며,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시험하여 계산이 옳은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미래에는 과학이 한층 더 수학적으로 변할 것이다. 수학은 이질적인 것들을 종합하려 노력한다. 즉,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며 같은 공식의 한 변형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려 한다.


​3장. 확률과 추정


[연못 안 물고기 수는 어떻게 추정할까]


연못의 물고기 수를 모두 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추측할 수 있다. 추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달랐지만 유튜브 채널 '깨봉수학'에서 확률을 공부할 때 연못의 면적대비 그물이 차지하는 면적을 통해 확률을 계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 원리가 쉽게 이해되었다.



[동전 던지기]


아이가 '동전 던지기는 과연 공정한가?'라는 주제로 나름 혼자만의 연구를 한 적이 있기에 관심이 가는 주제이다. 이 또한 티내지 않았지만, 사소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주제를 잘못잡았다고 생각했었는데, 확률과 추정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주제였던 것 같다. 책에서는 앞면과 뒷면이 나오는 확률이 1/2로 같다고 가정하고 공정한 내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다룬다. 



4장. 수수께기 같은 문제



[몬티 홀 문제]


몬티 홀 문제는 아이가 유튜브나 책에서 보고서 가족들에게 문제를 내서 가족오락관처럼 함께 풀어봤었던 문제이다. '깨봉수학'에서는 '염소냐 스포츠카냐, 그것이 문제로다! 몬티홀 딜레마' 제목으로 영상이 있고, '창의수학퍼즐'이라는 책에서도 '게임 쇼' 문제로 소개되어 있다.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니 유명한 문제인가보다. 이전에 선택한 문을 유지해야 할까, 다른 문으로 바꿔야 할까? 확률을 계산하면 승리할 확률이 올라간다.​




 



[맨홀 뚜껑 상식]


'맨홀 뚜껑'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니라 둥근 이유는 무엇일까?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맨홀뚜껑이지만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맨홀뚜껑이 '도형'으로 혹은 '안전성'으로 새롭게 보인다. 





5장. 궁리와 호기심​



[4색 문제]


색칠만 하면 직접 해볼 수 있으니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단순한 문제이지만 수학의 오랜 난제 중 하나였다. 4가지 색만 있으면 어떤 지도든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모양이 단순해질수록 필요한 색의 가지수도 줄어든다고 한다. 색칠공부 하듯이 놀면서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인 것 같다. 영재원 시험에에서도 등장하는 문제이다.




[직각을 만드는 방법]


12cm의 줄만 있으면 직각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 줄이 3cm, 4cm, 5cm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지막 줄의 끝이 첫 번째 끝과 맞닿도록 줄을 잇기만 하면 된다. 직각이니까 (3, 4, 5)다는 알았는데 그 역도 성립한다는 점이 놀랍다. 필요한 건 줄 뿐이다. 직접 해보면서 피타고라스의 수들 (3,4,5) (5,12,13) (6,8,10) ... 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와 나누기 좋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수에 대한 연구'처럼 단순하게 대답하는 것은 정보의 심각한 결핍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17세기 비슷한 시기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명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은 여전히 '한줄이면 끝나. 이게 바로 라이프니츠의 위엄이죠!'라는 수학 일타강사 현우진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있다. ​


미적분은 운동과 변화에 관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극한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수학은 미적분의 출현과 함께 그 사슬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수학으로 과학자들은 행성의 움직임, 기체의 팽창, 액체의 흐름, 물체의 낙하, 전자기력, 동물과 식물의 성정, 전염병의 확산 등을 훨씬 수월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


수학의 새로운 정의가 제안되었다. 수학은 패턴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수학자가 하는 일은 추상적인 패턴을 조사하는 것이다. 즉, 특이성, 반복되는 것, 숫자패턴, 형태 패턴, 움직임 패턴, 행동 패턴 등을 찾는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그동안 빠져있던 '행렬'이 11년만에 부활한다고 한다. 고로 2025년부터 행렬이 고등수학에 추가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필수인 행렬도 일종의 배열이니 수학이 패턴의 과학이라는 새로운 정의에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교과과정을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내신이나 입시를 위한 중고등 수학문제집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낮은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창의적 문제해결, 창의 융합과 오히려 그 맥락이 일치한다. 영재교육원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수학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문제를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군데군데 컬러풀한 삽화를 그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어려운 문제의 경우 혼자서 복잡한 미로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는데, 독자만의 창의적인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된 불친절일지도 모르겠다.



정답은 책의 말미 해법에 있다. 아이에게는 충분히 생각해보고 정답은 시차를 두고 보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문제를 읽고 쪼로록 해답으로 달려가고 있다.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흥미를 느끼는 무언가에 도달하면 그 순간을 멈추는 것. 읽고 멈추고 산책하며 되새김질 해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책인 것 같다. 처음에는 어지럽게 보이던 활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보이는 몇 번의 경험은 꽤 근사했다. 투박하지만 뒤돌아서면 더 생각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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