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태도 - 15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의미
박지현 지음 / 메이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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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담백하게 썼는데,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다큐멘터리 3일', '유 키즈 온 더 블럭' 둘 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카메라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따뜻한 시각이 느껴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저자는 15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서 수많은 현자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얼핏 아는 것 같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곳들이 존재한다. 교도소, 소록도, 조선소, 해병대, 알래스카, 국과수 부검실, 청와대, 인천공항 관제탑 등 접근이 어려운 곳에서부터 험지까지 취재했고, 덕분에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했다. 거리의 철학자들에게 배운 삶의 태도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5년 넘게 원고를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손이 떨릴 정도로 두려워서 울먹거리고 있는데, 간호사나 의사들은 전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의료진들은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일을 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일상을 함께해 보니 환자로 왔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안한 마음에 거듭 질문을 하는 환자의 말을 끊는 의사가 냉정하게만 보였는데, 의사의 입장이 되어 보니 때론 냉정함이 다수를 위한 현명한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할머니가 앉으시는 낮은 의자에 앉아보니, 어떻게든 생선 하나 팔겠다고 손님은 붙잡고 안 놔주는 시장 할머니들의 억척스러움이 이해되고, 할머니한테 붙들려 생선을 강매당해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고 웃어넘길 여유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운함이 오해나 착각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속내를 알게 되자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억울한 일들이 훨씬 줄어들었다." 나도 가끔,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봐야겠다.


한참 더운 여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창밖을 보았다. 보도블럭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더운데 일하시느라 힘드시겠다'라는 섣부른 생각과 '땡볕에서 일하지 않고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 앉아 있다니 나는 참 감사하구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작가는 "상대방의 삶을 살아 보지 않고서 함부로 그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잘못된 편견일 수 있다. 상대가 원하는 건 섣부른 동정의 눈길이 아니라 그 어떤 편견도 없는 시선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온몸을 덮는 작업복과 용접의 불꽃까지 더해져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용접 기술자에게 "힘드시죠?" 라는 말 대신 "멋있으세요"라는 말을 건네야 했다고 말한다.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후 마시는 물맛을 못 느껴 본 내가 어떻게 감히 저 고생을 동정할 수 있을까"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만난 사람. 그는 '실패의 두려움이나 사업에 인생을 건 후회는 없냐'는 질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대답한다. "저희 어머니 치료비로 3,500만 원이 들었어요. 그때가 마침 IMF가 터졌을 때였고 그 돈이 저희 가족의 전 재산이었죠. 하지만 전부를 걸었는데도 살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때 전부를 걸었다는 것, 최선을 다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고요. 결과가 어떤든." 나 또한 성공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도전을 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도전을 꺼리는 스타일이다. 작가님처럼 '불확실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기분 좋은 간결함'을 느끼며,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의 선택을 믿고, 지금의 삶에 집중하는 간결함'을 갖고 싶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평생 일만 했다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 태어나 복이 많구나, 고생했어도 복이 많구나, 건강하게 일했으니까" 작가는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온전히 자신을 몫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온 사람만이 가지는 저 깊이'를 어떻게 헤어릴 수 있겠냐면서, 마치 할머니가 '70년 넘게 험난한 고통의 바다를 헤처 오며 삶을 꿰뚫는 지혜를 터득한 거리의 현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결론은 그냥 한번 사람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는 것. 세상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나눠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기를..."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멋지다면 쉽지 않고, 쉽다면 멋지지 않을 것이다." - 밥 말리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최후의 최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려 발버둥 치는 자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자'라고 말했다. 한없이 나약하고 일평생 엄살만 부리다가 죽는 사람을 '사이비 산 자'라고 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쏟아 내고, 부드러운 말만 듣고 싶어 하고, 사실은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핑곗거리부터 생각하는 사람은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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