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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ㅣ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력의 그늘에서 견디고 있을 모든 이제야에게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일기에 ‘끔찍한’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라고 적었다. 그날 제야는 당숙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전과는 다른 시간들이 시작됐다.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이 장면은 어쩌면 소설에서 수없이 반복될 제야의 분투와 싸움의 순간들을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18살인 제야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생 ‘제니’와 사촌 동생 ‘승호’와 함께 놀던 컨테이너로 향한다. 승호가 오길 기다리는 제야 앞에 놀랍게도 당숙이 나타난다. 늘 친절하고 용돈을 두둑하게 챙겨주던 당숙의 등장에 제야는 당황하지만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제야에게 술과 담배를 사주며 자신은 꽉 막힌 어른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당숙. 그런 그가 순식간에 돌변해 제야를 성폭행한다. 당숙이 자신이나 제니에게 같은 일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야는 산부인과와 경찰서를 찾아간다. 하지만 부모와 친척, 동네 사람들의 2차 가해, 친구들의 낯선 태도에 쫓겨나듯 마을을 떠난 제야는 강릉 이모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소설에서 제야가 발화하는 일기 형식과 관찰자 시점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일기 형식을 빌려 제야의 내면을 세심하고 밀도 있게 그려냈으며, 삼인칭 시점으로 제야에게 쏟아지는 가해자의 말들을 조명한다. “네 잘못도 있다”라고 말하는 큰아버지, “손해는 너만 볼 것”이라는 큰어머니, “우리 모두 비슷한 일을 겪고 살았”으며 “너만 대수롭지 않다고 마음먹으면 모두가 편해진다”라는 할머니의 반응을 표현한 부분이 그렇다.
소설 속 제야는 혼자가 아니다. 제니는 당숙의 얼굴에 침을 뱉고 승호는 당숙의 갈비뼈를 부러뜨린다. 강릉 이모는 제야에게 있던 일을 부정하지도,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지도, 괜찮다고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이다. 제야는 마음이 단단한 아이다. 제야에게 위로가 될 사람들이 없어도 제야는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폭력과 고통에서 홀로 애쓰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설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인물은 제야뿐만이 아니다. 제야의 친구 은비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오빠들에게 ‘나쁜 짓’을 당한다. 작가는 은비가 겪은 일도 제야가 당한 일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단어들은 납작하고 단순하게 표현된다. 폭력의 위험성을 보여주기 위해 꼭 그 장면을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누군가는 포르노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충격적인 사건을 강조하려면 사건이 벌어진 순간이 아니라 사건 이후 인물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제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소설은 제야가 혼자 우뚝 서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제야의 삶을 다 보여주지 않지만 27살이 된 제야가 어떻게 일어서는지 서술한다. 제야는 여행을 다닌다.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를 하고 독일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일본에서 커피를 만든다. 중국과 네팔에도 머문다. 18살의 제야가 경찰서를 찾아 당숙을 신고했을 때 경찰관은 말한다. “진짜 그런 일을 겪은 애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미친다”라고 말이다. 그날 이후 제야의 삶은 많은 이의 시선과 편견, 자기혐오와 자기파괴, 고정관념에 붙들려 골방에 갇힌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 앞에서 세상 밖으로 나간 제야의 도전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강해지고 싶은 제야, 자기를 지키고 싶은 제야, 제니를 지키고 싶은 제야, 살고 싶은 제야. 방관과 의심 속에서 홀로 버티고 있을 모든 제야에게 제야의 목소리가 가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