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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마저도 ㅣ 코니 윌리스 걸작선 2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아작에서 나온 책 중 제일 재밌게 읽었다. 가장 SF 비중이 높기도 했다. 그래서 리뷰를 쓴다.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대사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대사를 재치있게 쓰는 것을 넘어서, 인물들의 특징과 사회상을 잘 반영하면서 심지어 코미디의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첫 두 단편인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와 '여왕마저도'는 그 장점이 아주 잘 드러난 단편들이다.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에서 코니 윌리스는 전권 [화재감시원]의 첫 번째 단편 '리알토에서'에서와 같은 정신나간 코미디의 현장에 우리를 데려다 둔다. '리알토에서'에서 그 혼란을 양자역학의 상태와 (느슨하게)엮어내며 이야기를 끌어갔던 것처럼, 이 단편에서는 그것을 문득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과의 퍼스트 컨택트 현장에서 풀어낸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유머가 넘치며, 캐릭터들 사이의 소통(과 불통)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도 훌륭하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외계인의 행동과 그것을 추적하며 이유를 탐구하는 과정은 굉장히 SF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여왕마저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걸작이다. 휴고, 네뷸러, 로커스 등 수상 목록만 봐도 절로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인데, 그러면 왠지 무거울 것 같다는 첫인상과 달리 실제로 읽어보면 굉장히 '쉽게'읽힌다. 코니 윌리스는 직접적으로 세계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는다. '사이클리스트'라는 다소 정체불명의(자전거 동호회 같은) 집단을 뜬금없이 던져두고, 여자들 여러 명을 한 장소에 모아 서로 수다를 떨게 함으로써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그다지 설명조도 아닌,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떠는데, 유머도 재밌고 리듬감도 뛰어날 뿐더러 SF와 주제의식 모두 한번에 잡아낸다. 코니 윌리스의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난 단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은 굳이 SF로 읽을 필요는 없는 단편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미스터리한 현상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SF적인 접근법을 띄고 있지만, 굳이 SF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소통과 불통, 그리고 그 사이에서 쌓여가는 오해, 거기서 천천히 무너져 가는 감정들을 차분하게 그려내는 단편이다.
'영혼은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는 코니 윌리스가 시침 뚝 떼고 선보이는 코미디이다. 에밀리 디킨스가 화성 침공에서 세계를 구해내는 과정을 논문 형식으로 쓰는데, 중간중간 보이는 재치있는 주석들과 황당한 이야기들이 웃음을 짓게 한다. 에밀리 디킨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엿보이는 단편이다.
'마지막 위네바고'는 또 하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걸작이다. 코니 윌리스는 이 단편에서 관조적이고, 느릿한, 하지만 분명히 진행되고 있는 종말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평범해 보이는 삶에서 언뜻 드러나는 뒤틀림, 조금씩 드러나는 세계의 종말. 심각하거나 극단적이지 않지만, 어느 종말을 그려낸 이야기들보다도 묵직한 감각을 확실하게 전해준다.
여러모로 단 한편도 버릴 작품이 없는 걸작 단편집이다. 코니 윌리스의 명성이 그렇게 뛰어난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