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힘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가마타 미노루 지음, 전형배 옮김 / 창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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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선 1% -> 1%씩 -> 1% 더’ 누군가를 위해 산다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더불어 의료봉사와 여행을 다니며 1% 바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작은 기적들을 담담히 적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고 글은 간결하다. 『각 꼭지 머리말에 간략한 개요를 싣고, 본문에서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사례들을 전달한다. 간결한 문장 사이에 삶과 죽음과 인생의 의미가 담겨있어 성찰로 이끌어 준다.』 또 각자 태어난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또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이지를 되돌아보게 하는』그런 책이다.

이 책은 작지만 메시지가 뚜렷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 감당치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평소의 마음가짐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곳곳에 실린 삽화도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깊은 울림을 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인상적인 구절에 대한 생각들

 

 

○ p.66

어디 그뿐인가?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인생이란 짐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부조리하다.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우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어떤 생각 : 심판관이 있다면 삶을 고발하고 싶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음 날이면 눈이 떠지고 살아지는 게 삶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에 빠지지 않는다면 삶에는 늘 기회는 있다. ‘본시 삶은 모순투성이고 부조리하다.’는 말은 위로이자 사실이다.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니 말이다. 맞다. 깜깜한 밤이라고 눈앞의 땅만 볼 것이 아니라 가슴 쭉 펴고 고개 들어 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 p.73 / p.82

물건 정리의 요체를 알려주는 ‘단사리捨離離(끊고 버리고 떠나라는 뜻)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마음의 집착을 버리는 것도 단사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집착을 일으키는 대상은 주로 사회적 지위와 인간관계이다. 그렇다면 물건의 정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인간관계의 단사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를 옭아매는 온갖 속박을 잘라 내자.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어떤 생각 :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이를 일컫는 ‘단사리’라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다. 집착이나 체면 때문에 유지하는 인간관계를 단사리하여 최소화한다면 우리 삶은 훨씬 가벼울 것이다. 단사리가 삶의 기술이다.

 

 

○ p.142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에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사회, 지역을 바꾸는 힘이 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필요한 것은 사랑과 배려이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 되어야한다.

>>> 어떤 생각 : 성공과 실패의 작은 차이는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랑, 배려, 친절, 봉사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좋은 재료들이다. 작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모두 함께 잘사는 길이 나도 잘 사는 길이다.

 

○ p.176

모든 생명이 귀하고 소중하므로 슬픔이나 잔혹함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으로 우주의 균형이 유지된다. 우리의 생명을 만드는 원자나 소립자는 만들어진 우주 속에서 일정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나를 지탱해주던 원자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우주에서 이용된다. 죽음으로써 새로워지는 것이다. 생명을 이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 어떤 죽음이든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죽음이 무언가에 도움을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 어떤 생각 :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허투루 낭비되는 죽음이 없다는 통찰에 관한 저자의 경험은 큰 위로가 된다.

나, 나, 나, 그리고 또 나. 그야말로 오로지 나뿐이다. 이럴 때 1%라도 좋으니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하다 보면 틀림없이 ‘1%씩’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1%가 사회를 바꾼다. 1%에는 세계를 바꾸는 힘이 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 p.6 / 글을 시작하며

살다보면 슬픔이나 괴로움이 마치 파도처럼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그럴 대 우리는 내면의 ‘강인한 자신’을 하루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애초 강인한 사람과 허약한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내면에 강인함과 허약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강인해지기도, 허약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내면에 자리 잡은 강인한 부분에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다. 1%에 불과할일지라도, 그것을 계기로 어떤 일이 좋은 쪽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1%는 결코 적은 가능성이 아니다. 1%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일 수 있다. 그처럼 소중한 1%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 p.35~6 / 1장 ‘1% 더’의 신비한 힘

자신 존재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은 사업에 실패해도, 인생에 실패해도, 심각한 병에 걸려도, 죽음의 심연 가까이 다가가도 결코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되므로 인간은 좀 더 강해진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라도 자신을 잊고 누군가를 위해 1%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 두 소녀는 남을 내 편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의 편이 되어주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상태가 계속되는 나라에서 나는 뜻밖에도 소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살거나, 선뜻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 p.84 p.89~90 발췌정리 / 2장 ‘단 1%’로 구원받는 순간

1%가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게 여겼지만, 우리가 실제로 큰일을 한 건 결코 아니었다. 살면서 굳어진 생각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1%라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 느낌이 중요하다.
·····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새삼 배울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람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절망을 끌어안아야 할 때도 있다. 살고, 살고, 또 살아가다 보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고토 궁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걱정해주는 존재가 있게 마련이다. 축복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p.125 p.131 / 3장 1%의 메커니즘

한평생 살다보면 한두 번은 건강이나 생명보다 소중한 것과 직면하게 된다.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는 인생은 빛나기 어렵다.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안정만 쫓는 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성공 확률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아마도 낮은 쪽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자신감은 훨씬 커질 것이다. 만에 하나 실패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진다. 그러한 실패를 발판 삼아 재기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 속에서 안전한 길이 아닌, 리스크가 많은 길을 선택하며 인생을 살아왔다.
○ p.139~140 / 4장 ‘우선 1%’ 관점을 바꿔본다

사람들이 1%씩 누군가를 위해 살기 시작한다면, 그 1%가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또한 모두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질 것이다. 나는 이를 ‘1%의 메카니즘’이라고 표현한다. 바로 ‘1%의 전략’이다. 1%이기 때문에 확산되기 쉽다. 게다가 누군가를 위한 1%는 돌고 돌아 자기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숲속에서의 생활을 사랑했던 소로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진심으로 살지 못했음을 자각한다.’고 썼다. 따라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늘 진심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은 형식적으로라도 누군가를 위해 1% 살아보자.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일을 위해, 지역을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 p.180~1 / 5장 ‘누군가를 위한 1%’가 인생을 바꾼다

‘1% 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100%를 넘어서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기적을 불러오는 1%의’를 새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나라는 사람 속에 없었던 새로운 1%의 철학.
1%만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보자. 그것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행복해진다. 그리고 결코 지지 않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재미있어진다. 사는 것이 즐거워진다. 그저 삶의 1%를 바꿨을 뿐인데, 사람도 사회도 행복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 p.217 /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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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힘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가마타 미노루 지음, 전형배 옮김 / 창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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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있는 1%는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뿐이다.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 나쁘지 않다. 크게 풍요롭지는 않을지라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삶의 지혜를 알려준 ≪1%의 힘≫ 이 책을 읽은 것이 요즘 느낀 최고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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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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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역사문화 기행을 다룬 책이다. 보통의 역사기행문이라면 성곽을 따라 그 행로와 감상 위주로 적을 텐데, 이 책은 한양도성의 역사를 다루는 한편 다시 더 들어가 성곽 주변 내, 외곽을 누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역사교과서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성곽과 마을 사람들이 당한 아픈 상처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젖힌다.

특히 평소 관심이 있었던 길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진한 사랑의 느낌이 있어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영광을 누렸지만 상실의 허함을 달래기 위해 문화예술과 종교에 귀의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영한은 “천억 재산이 어찌 백석의 시 한 줄에 비할 수 있으랴”는 말로 백석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전했다.』움켜 잡으려만 하는 요즘 세상에서 당대에 가진 것 모두 놓아버리는 해탈의 순간을 본 것만으로 이 책은 나에게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감명 깊은 구절]

 

○ p.7 머리말

내가 맨 처음 서울성곽 길을 따라 걸을 때는 ‘인구 1천만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 인왕산을 넘고 백악을 넘을 때는 북한산 등반이 부럽지 않을 만큼 확 트인 서울 전경에 감탄하며 땀 흘린 보람까지 느꼈다. 내 나라 수도 서울이 세계 대도시 그 어느 곳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곳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어릴 적 수없이 들어왔던 ‘내나라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나이를 더할수록 깊이 와 닿는다.

 

○ p.21~2 프롤로그 발췌 정리

한양도성에는 사대문과 사소문이 설치되어 있다. 유교를 중시하는 조선시대는 그 이름 하나하나에도 모두 그에 맞는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며 지었다. ~~ 한나라 동중서는 오행설에 기초하여 맹자의 사덕에 신信을 추가하였다. 이리하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은 오상五常이라 불렸고 유가에서는 이 다섯 가지를 두고 ‘인간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성품’이라 하였다. 즉 이 오상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경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 우리 선조들은 도성을 지으면서도 이 오상을 염두에 두고 건설하였다. 따라서 도성 사대문에 ‘인의예지’를 넣고 나머지 ‘신’은 도성의 중심인 보신각에 넣어 한양도성이야말로 짐승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곳, 즉 인의예지신을 모두 갖춘 곳으로 규정하였다.

 

○ p.69

조선시대에는 감옥을 전옥서典獄署라 불렀는데, 이곳은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에 있는 영풍문고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건너 편 1번 출구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일대는 의금부가 있던 자리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상들은 재판이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해서 이곳의 동명을 ‘공평동’이라 지었다. 게다가 이것으로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바로 그 윗동네는 재판과정에서 그러한 공정성을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견지동’이라 지었다.

 

○ p.78

조선의 궁궐은 맹목적으로 ≪주례≫의 <고공기>에 따라 건설된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우리의 현실에 맞게 변화시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성곽의 모양에서도 나타난다. ≪주례≫에서 성곽은 원칙적으로 네모나 원을 지향하지만 조선의 성곽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조선의 성곽은 산을 기준으로 분지에 만드는 것이 원칙인데, 중국은 평지에 성곽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 조선과 크게 다르다. 그 유명한 중국의 자금성을 보면 평지에 네모반듯하게 성을 쌓고, 그 뒤에 작은 인공산을 건설해 놓았다. 이처럼 같은 유교문화권 속에 있으면서도 조선은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 맞는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성곽축조의 관념을 갖고 있었다.

 

○ p.119

안평대군이 살아있는 때는 현진건의 집터도 역시 무계정사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500년 전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에 현진건이 찾아온 꼴이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떠난 현진건, 그리고 자기 형에게 목숨을 빼앗긴 안평대군이 저승에서 만나 함께 조선의 문학을 논하며 살고 있으리라는 즐거운 사상을 해본다.

 

○ p.164~5

해방이 되자 백석은 북으로 돌아왔고, 그 새 영한은 서울에 터를 잡고 요정을 열어서 큰돈을 벌었다. 이후 영한은 대원각을 열어 요정정치 시대를 대표하는 장소의 주인이 되었다.

~~ 영한은 살아생전 백석의 생일이 돌아오면 그날만큼은 곡기를 끊고 방에서 불경을 외며 그를 기렸다고 한다. 또한 1997년 2억 원을 쾌척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하여 문학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맺힌 사랑을 저승에서라고 잇고자 영한은 법정스님을 찾아간다. 자신이 힘겹게 이어간 대원각을 부처님 앞에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무소유의 삶을 살아오신 법정스님은 이를 받지 않았고, 결국 법정스님이 머무는 암자의 본사인 송광사에 기증 되었다. 당시 시가로 1천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한은 “천억 재산이 어찌 백석의 시 한 줄에 비할 수 있으랴”는 말로 백석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전했다. 참고로 길상사라는 명칭은 법정스님이 영한에게 선물한 ‘길상화 보상’이라는 법명에서 따온 것이다.

 

○ p.173~4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 문화재 4점을 비롯한 중요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실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민족문화의 보고다. 이런 대단한 장소에 간다는 설렘을 안고 발걸음을 내딛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실망하고 만다. 그러나 시설이나 장비 등 외형이 아닌 간송 전형필의 숭고한 민족애가 흐르는 공간임을 상기한다면 간송미술관이 국내 최고의 미술관임에 틀림없다.

○ p.43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돈의문을 서대문이라 칭하며 새로운 시설이나 지배기관이 들어서거나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족족 그들의 편의대로 서대문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면서 이러한 용법은 더욱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서대문구, 서대문역, 서대문경찰서, 서대문형무소 등 아직도 모든 것이 ‘서대문’이다. 심지어 경인선의 출발지였던 정거장까지 모두가 다 서대문으로 표기되고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일제의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 p.44
1943년 일제는 행정효율화를 위해 구제區制를 실시하며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남촌이 조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중구中區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중구의 핵심이었던 혼마치本町는 충무로로 바뀌었는데 지역구의 명칭은 여전히 중구이다. 지금이라도 남대문구나 남산구 정도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 p.46~7 발췌 정리
최고의 친일파 가운데 또 한명이 김구를 찾아 이곳 경교장에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바로 조선의 천재로 불리던 소설가 이광수이다. 그는 김구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정리해둔 일지를 자신이 편집하여 책으로 내보고 싶으니 이를 허락해달라고 김구에게 부탁하였다. ~~ ≪백범일지≫는 ‘저자의 말’ ‘상권-중국편’ ‘하권-조선편’ ‘나의 소원’ 등 총 4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중 `저자의 말‘과 ’나의 소원‘ 부분이 이광수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 그리고 김구는 이렇게 이광수에 의해 윤색된 자신의 글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대로 출판하도록 했을까? 우리를 무척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 p.64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신문>도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독립의 대상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에 국한된 것이다. 그랬기에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독립문은 일제의 식민지배하에서도 ‘독립’이란 문패를 당당히 걸고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은 <독립신문> 논설을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그곳에 실린 논설 중에는 친일 논조를 담은 사설이 부지기수다.

○ p.82~3
무학대사가 입적한 후에 는 지금의 남산(목멱산)에 무학대사를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이를 국사당이라 불렀다. 이렇듯 국사당은 본래 남산 정상에 있었는데 ~~ 어찌하여 ~~ 인왕산 쪽 성 밖으로 옮긴 것일까? ~~ 국사당의 자리이동 또한 일본의 식민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1925년 남산의 조선신궁을 건립하며 그 위에 있던 국사당을 이곳 인왕산 기슭으로 이전시킨 것이다. 일본 귀신 위에 조선 귀신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야말로 나라를 잃으니 우리 민족의 귀한 조상까지 천대받는 형국이 되었다.

○ p.149~150
조선의 한양도성 내 축선은 나름대로 상당히 치밀하게 기획된 설계로 정丁자형 길이다. 화마가 길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축선을 꺾어서 설계한 것이다. 그러난 이러한 한양의 축선은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파괴 및 변형되고 말았다. 특히 일제는 축선을 변경시키고 지맥을 끊는 일에 열중했다. 일제는 먼저 조선이 만들어 놓은 정丁자형 축선을 일一자형 축선으로 바꿔버렸다. 광화문 사거리의 황토마루도 깎아 없애고, 그 동안 관악의 화마를 막기 위해 틀어놓았던 주작대로를 일직선으로 변경시켰다. 이로써 경복궁에서 서울역까지 쭉 뻗은 현재의 세종대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 길을 열면서 경운궁의 대한문 쪽이 잘려났고 이름조차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길을 태평로라 칭했다.

○ p.228
오간수문 바로 옆에 있었던 이 일대는 본래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원(현 국립중앙의료원)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1925년 일제는 내선일체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의 동궁, 즉 훗날 일본의 왕이 되는 히로히토의 결혼(1924) 기념사업의 경성운동장을 건설하였다. 당시로서는 2만 5,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운동장이었다. 그런 이곳에서 각종 근대스포츠가 시작되었다.

○ p.252
이 현재 신라호텔은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호텔이며, 2004년 일본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2011년 어느 한 여성이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미리 예약한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출입이 거부되어 논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황당한 사건도 신라호텔 건설의 역사를 보면 일면 수긍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274
이곳 조선통감 관저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현재 이것 표석에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로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라고 쓰여 있다.
더욱이 이 때 이완용이 들고 간 황제 칙유에는 순종의 서명도 없었고 제한제국 국세 날인도 없는 등 최소한의 인준 조건조차 갖추지 않았다. 불법적인 식민조약이 맺어졌다는 증거이다. 그야말로 5천년 우리 조국이 한순간에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이 바로 이곳에서 자행된 것이다.

○ p.282~3
남산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정원과 전각들로 꾸며져 있으며,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보여 주기 위하여 서울에 산재해 있던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그런데 옮겨진 다섯 채의 가옥 가운데 세 채는 친일파의 가옥이라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못 벗어난 느낌이다. 예로부터 ‘나라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친일파들이 이렇게 좋은 가옥에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산 것을 보면 조선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 p.291
1907년 일본 왕세자가 방한하자 일제는 "대일본의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헐어버리고 숭례문 옆으로 입성하였다. 이렇게 성곽을 헌 자리에는 도로와 전차도로를 만들어 숭례문과 성곽의 연결을 영구히 끊어버렸다.

○ p.299
1895년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육의전의 금난전권조차 폐지하여 자본주의 물결에 호응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자본주의 이행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사대주의자들과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왜곡, 파탄되고 말았다.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남산 일대에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 거주하였는데, 그들에 의해 칠패는 남대문시장으로 크게 성장하지만 대신 일본인을 위한 시장으로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종로 일대의 상권은 일제의 편향적 개발정책에 따라 점차 기울어져 갔다.
일제의 시장편성에 대항하여 이현시장은 조선상인들이 새롭게 광산시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국주의 자본의 거대한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조선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남촌과 조선인들이 주로 사는 북촌은 확연히 차별되고 말았다.

○ p.302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에 이르면 태평양전쟁과 함께 서울은 대동아공영권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신용산 일대(현 미군기지)는 조선군사령부 등 일본군 병영이 차지하였고, 용산역 일대는 철도국을 필두로 여러 철도기관들이 들어섰다. 또한 영등포는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경성 인근의 최대공업단지로 부상하였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서울의 공간적 확장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와 발을 맞추며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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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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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함께 몇 번 둘러본 한양도성과 주변 마을, 그리고 그 안에 녹아진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큰마음 먹고 다시 가보고 싶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한 번, 총 14차례에 걸쳐 100일 안에 도성과 도성주변의 동네를 샅샅이 훑는’ 방법을 권한다는 저자의 추천이 솔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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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 성경 해석의 오류와 신앙의 일탈
강만원 지음 / 창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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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요 내용 정리

 

 

프롤로그 / 한국 교회는 왜 외면당하는가?

○ p.14

지금처럼 목사가 교회 운영의 전권을 장악하는 한,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외면하는 주된 원인, 이를테면 ‘재정비리’나 교회성장주의‘, '교회지도자의 부정‘은 목사의 책임일 수 밖에 없다. 담임목사는 마치 사기업의 주인인양 교회의 재정을 좌지우지하고, 인사와 행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한을 독점하며 사실상 교회운영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잃게 된 요인은 일차적으로 목사들의 책임이라는 날선 비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19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말이나 생각으로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교인들 앞에서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교인들에게 죄를 용서받는 것이 회개의 성경적 기준이다. 비리목사들의 치명적 문제는 죄에서 돌이켜 온전히 회개치 않는 것이며, 이는 신학의 빈곤이 아니라 영적 무지에 따른 말씀의 부재이자 왜곡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1장 목사에 대하여

○ p.57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다윗시대처럼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시기 때문에 비리목사들의 타락과 불의에 침묵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목사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종이 아니라 종교절차에 따라 사람들이 세운 ‘사역자’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역을 맡기기 위해 세운 직분이 목사라면, 사역자를 세운 사람들이 목사의 비리를 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신들이 선택한 사역자의 불의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침묵하는 것은 기껏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비겁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 p.67~8

예수가 베드로에게 “내가 네 발을 씻어 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는 비천한 종으로 살기를 거부한다면 너는 결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가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그리고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예수를 따르는 자는 기꺼이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매야 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장 교회에 대하여

○ p.93~4

신약시대의 예배일은 율법주의의 종교적 숭배가 아니라, 주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계명을 마음에 새기는 결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새 계명’을 통해 밝힌 것처럼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오직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주일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기도와 찬송, 예배의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것 또한 아니다. 주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의 다양한 물질적 요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일주일에 하루, 온전히 구별되는 하루는 영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3장 헌금에 대하여

○ p.102

신약시대에 ‘십일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핵심적인 율법으로 존재하던 십일조가 빈민구제를 위한 법과 제도로서 분명한 가치를 지니므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십일조의 정신까지 전면폐지를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춰 내용과 형식을 정비하되, 그 정신을 바르게 계승해 본래의 가치를 지니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맞춰 ‘연보’나 ‘구제헌금’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115

교회는 가난한 과부에게 ‘생활비의 전부’인 두 렙돈을 바치라고 말하기 전에, 곳간을 열어 가난한 형제들에게 나눔을 베풀어야 한다. 헌금은 목사를 비롯한 소수의 교회지도자들이 멋대로 사용할 수 있는 ‘눈먼 돈’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 복음의 ‘밀알’이 되고 ‘겨자씨’가 되어야 한다.

 

4장 방언과 은사에 대하여

○ p.134~5

방언에 제한해서 말한다면, 원래 초대교회의 방언은 요즘처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외국어로서, 말하는 사람들이 ‘다른 언어들(글로사)’로 말하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언어(디알렉토)’로 알아듣는다. 따라서 방언은 소통이 가능하며, ‘알아들을 수 있는 신비한 언어능력’을 의미한다.

○ p.137~

방언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알맞은 다른 은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적 둔감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은사를 깨닫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만인제사장’시대에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영적 권위를 지니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지체로서 각각의 지체에 합당한 기능, 즉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신앙이 부족해서 방언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귀중한 은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의 갈등을 느끼는 것이다. 방언은 자신이나 남에게 ‘자기 의’를 과시하기 위한 은사가 아니다. 심리적 효과가 있다는 구실로 방언의 은사를 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알아차려 아름답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5장 기복신앙에 대하여

○ p.155

육신의 눈으로는 고난의 때가 암흑기이지만, 영의 눈으로는 찬란한 승리를 위대한 태동의 시기일 수 있다. 성경에서 일컫어지는 형통은 이처럼 세상의 주술적 성공이 아니라 자신을 도구 삼아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 고난은 진정한 형통을 위한 시험의 때이며, 연단의 때이며, 준비의 때이다. 지금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주의 손을 꼭 붙들길 바란다. 주의 손을 꼭 잡고 동행하는 순간,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형통의 아름다운 전주일 수 있다.

 

6장 비판에 대하여

○ p.169

교회는 교권을 장악한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교회를 사랑하는 것 또한 그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며, 원형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무리로 이른바 ‘성도’이다.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과 부흥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 주의 가르침을 오롯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가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지키고 행하기 위해, 교회의 타락과 불의를 당당히 비판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 p.174

종교생활을 성실히 수행하거나 목사나 중직들의 지시에 다소곳이 복종하는 사람들을 ‘온순한 교인’이라 말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온순한 교인들을 온유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교회의 요구에 잘 따르고, 질서에 순응하며, 정해진 규범에 복종하는 ‘순둥이’ 교인들이 주께 순종하는 온유한 신앙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온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비판하지 말라’는 구절의 왜곡된 해석과 더불어, 교인들을 ‘순한 양’처럼 길들이는 유용한 빌미가 되었다.

 

7장 회개와 용서에 대하여

○ p.182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아주 간단하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상처를 입은 형제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화목해진 다음 하나님께 속죄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자비를’, 그리고 화목을 원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는가?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상대방의 아픔을 외면한 채 ‘나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종교의식을 빙자한 책임회피일 뿐, 진정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뚜렷한 증거를 먼저 보이라고 질책했다.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회개를 빙자한 겉치레 행동에는 회개의 진정한 증거가 아니라 음험한 거짓이 있을 뿐이다.

○ p.191~2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며, 죄의 유혹을 물리쳐 마침내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는 마음먹기에 달린 듯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처절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죄의 두터운 타성에 갇힌 ‘자아’를 깨뜨리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내면의 변화’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이라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거룩한 고통, 그것은 회개로 말미암아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이며 구원의 영원한 축복을 위한 순간의 고통이다. 탕자를 맞이하며 뛸 듯이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회개한 죄인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 벌이어 반기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 p.202~3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죄도 용서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다만, 성령을 훼방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죄로 말미암아 마음의 고통을 겪는 자가 그 사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믿음으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회개이다. 죄책감이나 죄의식으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도덕적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무지이며, 사탄의 술수에 넘어가는 영적 패배라고 할 수 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죄 없는 의인’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반드시 기억하자.

 

8장 사랑에 대하여

○ p.212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종교적 의식에 몰입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방의 ‘우상 숭배’ 같은 종교의식이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천은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오롯이 전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의 본뜻은 종교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존귀하게 지으신 인간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면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라는 조언이다.

○ p.232

잔뜩 웅크린 자신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뿌리 깊은 열등감을 고이

쓰다듬고, 처절한 슬픔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애써 상처를 치유하고, 담대히 죄를 용서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갇혀 남 몰래 눈물 흘리는 ‘나’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외면하고픈 자신의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가 말씀하신 세상의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세상이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예수의 제자로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사랑이며 순종이다.

 

9장 시험에 대하여

○ p.257

예수는 우리에게 주기도문과 겟세마네의 기도라는 두 가지의 기도의 원형을 가르치고,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기도가 없는 신앙은 영혼이 죽은 신앙이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되,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탐욕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맡기는 순종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10장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 p.277~8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왜 “돈주머니를 차지 말고, 옷도 부 벌 가지지 말고, 지팡이나 달랑 하나 들고 가라.”고 매몰차게 말씀하셨을까? 가난한 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마땅히 가난해야 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또한 ‘본’을 보이기 위해 인간의 비천한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가난하게 사신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어찌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말할 수 있으며,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이 바로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겠는가?

 

에필로그

○ p.288

아르케 처치의 형제들은 ‘말씀’을 올곧게 배우고 바르게 전해야 한다. 말씀이 왜곡이 신앙의 왜곡과 신앙의 타락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종교개혁의 외침은 신앙의 근본인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말 아니던가? 그리스도인은 영적 군사이며, 영적 전쟁에서는 오직 말씀이 ‘승리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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