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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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이후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남은 것은, 스토리와 만수와 마지막 장면이었다. 어떤 소설을 읽을 때면 보통은 인상적인 구절 몇 개쯤은 있기 마련인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마음을 훅하고 잡아끄는 구절하나 없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그저 읽고 넘기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또 다시 말하자면, 한 쪽을 읽으면 다음 쪽을 당겨오느라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소설마다 문장이 좋은 작품이 있고, 이야기 자체로 즐거운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확실히 이야기가 탁월한 작품이다. 저자는 스무 명도 넘는 인물을 구성하고 그들 하나하나의 시선을 빌려 만수를 비춘다. 각각의 인물마다 개성이 있고, 그만의 가치관이 또렷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이야기를 듣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작가의 상상력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이런 유연성 넘치는 연결을 만들어가는 작가의 관록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아무래도 요즘 소설들을 보면, 비교적 단시간에 일어난, 혹은 순간의 현상에 집중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내가 그런 작품들에 먼저 손이 가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서사를 갖춘 소설을 읽다보면 그 스케일에 깜짝 놀라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중년을 넘어서는 동안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교체된다. 그가 살아가는 과정은 꾸준히 세상을 비추고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셈하고, 반성하기도 하며, 변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도 한다. 대단위의 시간 흐름 속에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사람의 관계였다. '힘든 시대에 태어나서' 혹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얇팍한 말로 포장된, 이기심에 다름 없는 본능. 또 이해관계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심리와, 그에 대한 합리화의 말들을 나는 먼발치 떨어진 곳에서 완전한 타인의 시선으로 보고 들으며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타인의 배려와 희생은 잊어버리는지, 확인을 거듭할수록 습습한 마음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그건 내 모습은 아니었는지.

 

그런 관계의 한가운데 만수가 있다. 부모에게조차도 맹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가,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그런 류의 사랑을 타인에게 나눠주느라 삶을 끊임없이 소진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만수는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다. 소문만복래라, 일소일소 일노일로라, 했던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런 삶을 살고도 투명인간이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된 만수가 나는, 시대가 변했다는 핑계로 우리가 잃고 있는 가치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래서 사라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게 되는 가치 혹은 관념 혹은 그런 사람들. 그래서 미처 잃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제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 시대에 무슨, 이라고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을 그런 무언가.

 

이야기가 끝나도록 만수는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수많은 인물들이 전하는 일화들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만수를 해석하고 평가하지만, 누구도 만수가 겪었을 일들과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추측할 뿐.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만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낼 수 없는 만수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되었다.

 

나는 그가 우리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비록 보이지는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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