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강의 - 가치투자 아버지의 미공개 글모음
벤저민 그레이엄. 자넷 로위 지음, 박진곤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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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강의> 4주 독파 챌린지, 4주차.





이 챌린지도 마지막 주가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생활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즐거웠다. 비록 3주간 내가 써놓은 감상들이 어디 내놓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지만, 초반에 이야기했듯 이 책은 한 번 읽고 치워둘 책이 아니니까. 지난 시간동안 써 두었던 기록들은 다음에 다시 책을 읽을 때 혹은 연관된 다른 책을 읽을 때 다시 수정하고 보완할 계획이다. 투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매 순간의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읽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기회였구나 싶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무언가를 찾아보고 정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엔 뭐지? 다음엔 뭘 하고 다시 돌아와야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지난 한 달을 되짚어보다가 '투자'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현실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새로운 도전은 생활에 활력을 준다. 그게 아무리 작고 사소한 도전일지라도. 



지난 주에는 5부와 6부를 읽었다. 5부는 기초상품군을 비축하여 준비금과 같은 퉁화기능을 부여하는 제도인 국제 상품비축통화 제도에 대한 설명을, 6부는 노년의 벤저민 그레이엄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루었다. 


국제 상품비축통화 제도는 금의 지위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기초상품들을 비축하여 국제 경제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금융준비금처럼 사용함으로써 세계의 기본 가격 구조를 안정시키고, 경제력이 차이나는 국가간의 형평을 제고하자는 아이디어이다. 그레이엄은 이 제도의 장점으로서 거래안정성, 가격안정성, 비축상품의 활용성, 원재료에 대한 세계적 조화 등을 든다. 제안서의 내용만으로는 그의 생각이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왔으나 분명한 부분은 왜 의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그레이엄의 취지나 제도의 이점과는 상관없이,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안정과 균형, 화합 따위를 찾는다. 이 제도가 주는 국제경제의 안정이라는 궁극적 이익이 정치인에게 주는 이익으로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또 상품단위통화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경제적 강대국의 입장에서 약소국과 어느 정도 형평을 맞춰줄 용의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강대국은 이미 점한 경제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는데 더 주력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제도는 경제적 강대국에게 확실히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 상당히 일차원적이지만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부분을 읽으면서 통화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지금과 비교하여 산업구조가 단순했기에 이런 아이디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제도의 틀을 이 정도로 구상하자면 어떤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당연히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럼에도 정치와 경제의 괴리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떠올린 데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이지 싶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도래할 혼란을 그 시대의 사람들이 걱정했듯이, 지금의 우리도 너무나 두려우니까 말이다. 이 코로나 위기는 끝이 날까. 끝이 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 위기를 혼란이 아니라 기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전염병 사태에서도 정부는 자국 국민을 보호할 것인가, 경제를 지킬 것인가, 혹은 이 틈을 타 일단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결국 '전염병도 정치'라고 했던 칼럼이 기억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80세가 넘은 벤자민 그레이엄이 생각하는 주식투자와 주식시장에 대해 엿볼 수 있다. 그의 50년 이상의 연구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명료하고 간단하게 자신의 연구 결과와 투자 철학에 대해 설명한다. 그럼에도 앞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온전히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주식시장의 지속성이라든가 투기와 투자의 속성, 가치분석의 의미와 이유 등 앞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면서 이해가 깊어지는 부분이었다. 기업가치의 분석과 시장 또는 산업분석을 구분하는 것을 강조한 이유도 납득이 되었다. 그의 투자에서 중요한 개념은 두 가지라고 정리되었다. 시간과 분산투자. 비교적 간단한 가치분석의 기준으로 선택한 종목의 주식을 미리 정한 보유기간의 한도 안에서 팔고,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충분한 수의 주식을 운용한다. 또 주식시장의 과열 상태라면 주식을 줄이고 채권의 비중을 늘린다. 이렇게 투자했을 때 높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 "많은 돈을 빨리 벌겠다는 욕망"에 따르거나 단편적인 "주식시세에 더 끌려서" 즉흥적으로 매수와 매도를 결정한 결과가 왜 참담할 수 밖에 없는지, 왜 주식시장에서 얻은 사람보다 잃은 사람이 더 많은지 이해가 되었다.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지, 있다면 그 원칙을 얼마나 고수하는지가 승패를 결정한다. 이 순간 주식투자에 대한 나의 편견이 드러났다. 주식투자를 떠올리면 일확천금, 비정상적인 수익을 기대하고 부풀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투자를 하는 것은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은 나의 재산을 운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 즉 예금이나 적금, 보험, 채권 투자 등 다양한 방법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투자 방법보다 더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라면 주식투자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한 주식투자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레이엄이 증권분석을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얻는 것은 이런 현실성에 기반하여 일정 기간동안 일정의 확률로 보장된 수익을 얻는 방법을 증명해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이고 통계가 기반된 투자원칙. 그가 투기가 아닌 투자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또 양자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건 그가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함으로 인해 그가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방법이 비교적 장기간 동안 안정적인 자산이 보장되어야 확실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분석이나 추세를 기반으로 한 주식투자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즉흥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투기'적인 주식투자와는 확실히 구분되고 이것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직감이나 예상이 아니라 통계적 확률에 근거한 보장된 수익률에 더 믿음이 간다.)



그의 투자원칙에 대해 요약하자면,


1.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수익을 고려해야 한다. 

2. 투자의 건전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건전한 투자란 순자산 가치에서 출발하여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3. 원래 가치보다 싼 주식을 취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매수원칙과 매도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또 그 방법을 유효하게 만들려면 아주 충분한 수의 주식을 운용해야 한다. 최우량채권의 수익률과 비교하여 낮은 PER 종목을 선정한다. 

4. 이익목표를 설정한다. 원금의 50퍼센트 정도면 좋은 성과이다.이 정도 수준으로 오르면 어떤 주식이라도 팔아야 한다. 

5. 보유기간에 대한 한도를 정하고 이 기간 안에 이익목표를 충족하지 못한 주식은 가격에 상관없이 팔아야 한다. 이익과 손실이 상쇄되고 장기적으로 일정 이상의 평균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6. 최소 5년 이상의 기간에 입증된 방법이며, 이를 위해 투자자는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통계상 확률이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충분히 오랫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7. 투자의 핵심은 올바른 일반원칙과 그것을 고수하는 품성이다. 주식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증권시장의 과거 기록을 연구하고 능력을 키우면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투자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자문하라. 그러한 방법을 찾았다면 자기 방법을 고수하라. 

8. 건전한 투자를 위해서는 올바르게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든지 상관없이 그는 항상 건전하다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이론을 실천함으로써 30년 이상을 현업에서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삶의 존재 자체가 도전이자 증명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경이롭다. 반면 내 삶은 한층 막막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적어도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눈은 마련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다음 번엔 나에게 무엇에 눈 뜨게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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