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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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장소들은 이제 내 곁에 없는 누군가와의 추억을 품은 채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 우리에게 그리운 장소가 된다.
지나간 시간과 떠난 사람은 돌아올 순 없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소와 자연을 통해 나 또한 지나가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책은 서술과 묘사 없이 엄마와 소년의 간결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페이지마다 단 몇 줄의 대화는 짧지만 시처럼 음미하며,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간결한 펜화와 수채화로 여백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여백은 나를 느리게 책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게 했다.
표지부터 내지까지 종이의 질감을 살려서, 손에 닿는 종이의 결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잔잔한 안식을 준다.

엄마는 아버지와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아이와 여름을 보낸다.
엄마는 아이를 통해 소년 시절의 아버지를 상상하고, 아이는 산과 들로 다락과 서랍의 곳곳을 탐험하며
그곳에 깃든 엄마의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자꾸만 잃어버리는 모자는 항상 놓아두었던 자리에 있었고,
오른쪽 장갑은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접착테이프를 찾는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나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지만 존재했던 자신의 일부를 경험하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이는 말한다.
" 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어요."

나에게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이 책을 덮으며 그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여름 #창비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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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창비청소년문학 119
정은숙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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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주인공 선빈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들이 안고 살아가는 문제와 그 속에서 꿋꿋하게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청소년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선빈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해 개천에서 용난 사람이다. 가정을 이끄는 경제적 책임을 혼자 떠안고 위기가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가족에게 진실을 알리지 못한다. 그러다 선빈에게 33초의 짧은 전화 통보만을 남기고 도주했다가 사기횡령죄로 징역형을 받게 된다.

건빈의 어머니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자가인지 월세인지도 모르고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새벽이면 실크 로브를 걸치고 와인을 마시고 가사도우미에게 살림을 맡기고 명품 쇼핑으로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집에서 쫓겨나 살 집을 구하려다 전세사기를 당하는 경제적으로 무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남편의 파산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사도우미가 된다.

선빈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자신의 환경이 모두 아버지가 꾸민 허상으로 누린 것이라는 충격에 더해 엄마의 전세사기까지 겪는다. 부모의 무모함과 무지로 인해 이제 인생에서 막다른 길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지하 생활과 라떼 여사와 엄마의 비밀 등으로 또 다른 충격과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선빈은 친인척도 손절한 자신과 엄마를 품어준 라떼 여사의 온정과 자신을 위해 가사도우미까지 하게 된 어머니의 눈물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친구 민하와 승진과 함께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의지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선빈의 친구 민하는 아버지가 큰집과 동업으로 회사를 운영했는데 큰아버지가 돈을 빼돌렸다고 담담히 얘기한다. 믿고 사랑했던 가족인 큰아버지에게 속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폐기되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자신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씩씩한 내면을 가진 아이다.

승진은 라떼 여사와 선빈과 묘하게 얽힌 인물이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동생으로 형의 병 때문에 어린 시절 보호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 독자들은 승진의 이야기를 통해 대기업의 양심을 버린 행위가 피해자의 고통에서 가족의 불행으로 나아가 사회의 불행으로 확대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라떼여사는 아들의 죽음으로 독거노인이 되었는데, 타인 보다 어색한 인연인 승진과 선빈 모녀를 가족으로 품어 모진 세상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돕는다.

결국 완벽한 가족이란 '어떻게 만나 이루어졌는가'가 아니고, 서로 이해하고 책임지고 고통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닐까?

작품 초반 선빈 모녀가 전세 사기를 당하고 라떼 여사의 반지하로 들어가는 과정의 해학적인 표현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주인공이 이 험한 시기를 잘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 드러나는 위트와 유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등장인물들의 태도와 작품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 삽입된 인용 형식의 신탁등기와 전세 사기에 관한 경제 기사,경단녀 카페 댓글, 반지하 한 달 살아보기 취재, 승진 엄마의 기고문은 청소년 독자의 배경지식을 넓히고 소설의 소재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보여주며 이야기에 공감하는 효과를 준다

소설 마지막 부분 세 아이는 비가 오지 않을 거란 예상과 달리 소나기를 맞게 된다.
우리도 인생에서 언제 비를 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그리고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
비가 그칠 때까지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므로 추천대상은 당연히 청소년이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읽고 운명 공동체이자 경제 공동체인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추천한다.
선빈의 아버지가 가족에게 일찍 진실을 알렸다면 함께 넘을 불행의 파도가 작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왜 필요한지 청소년들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추천한다. 많은 가족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그것이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창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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