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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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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라는 단어가 익숙한 세상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원한에 의한 살인, 우발적인 다툼으로 인한 살인 정도가 잘 알려진 살인의 동기였다면 최근에는 살인 자체가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다변화하고 있어 이런 복잡한 심리적 양상을 띠는 살인자들이 점차 늘어나고있는 추세입니다.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포스러운 부분이고, 잡히지 않았을 경우에 살인이 계속 일어난다는 점에서 더더욱 두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런 연쇄살인마를 잡아낼 방법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연쇄살인마의 상당수는 계획형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살해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물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그들의 살해 방법이나 양상이 일반적인 살인과 다르고, "연쇄적"이라고 표현될 만큼 반복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살인자를 유추하게 됩니다. 이런 방법은 예전엔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지만 FBI의 행동과학부서에서 시작된 프로파일링 기법이 체계화되면서 점차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 초창기부터 FBI와 깊은 관계를 맺고 참여한 앤 울버트 버지스의 이야기입니다.

앤 울버트 버지스는 보스턴 칼리지 간호대학원의 교수로 법과학 및 정신의학 전문 간호사로 활동해왔습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그 회복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수행한 전문가였고 FBI로부터 컨설턴트 위촉을 받아 폭력적 성범죄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FBI 행동연구부서의 프로파일링 설계에도 참여하게 되어 1세대 프로파일러들과 함께 프로파일링 기법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앤 버지스는 자신이 작성한 논문에서 "성범죄가 성적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 보다는 권력을 쥐고 주변을 통제하는 행위에 핵심이 있다"고 언급하여 그동안의 성범죄에 대한 시선을 바로잡았습니다. 단순히 성행위에 대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 자신이 범행현장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자기 마음대로 주변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것에서 강렬한 쾌감을 얻게 된다는 새로운 시선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이뤄졌던 수많은 연쇄살인들이 사실은 성적인 충동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살인들에 성행위가 있고 없고에 관계 없이 쾌락을 얻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강력범죄에 골머리를 썩고있던 FBI에서 이 논문에 관심을 갖게 되어 강연과 컨설턴트를 부탁하게 되고 이로부터 "살인자와 프로파일러"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책은 FBI 행동연구부서가 실제로 담당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에 영향을 미친 부분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건들은 꽤나 적나라하게 묘사가 되어 있어 책의 서두에서도 심약자의 독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글의 묘사가 상세한 반면 사진은 거의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시각적인 충격이 덜하다는 점은 독자를 위한 배려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실 책에서 언급되는 연쇄살인들은 미국에서도 꽤나 널리 알려진 사건들이라서 필요한 경우 인터넷에 검색하면 더 상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사건은 최근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인 "세계 다크 투어"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에서 방영한 적도 있습니다. 익숙하고 유명한 사건들의 뒤에서 범인을 잡는데 일조한 프로파일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미 일어난 범죄를 바탕으로 범죄자의 성향과 특징을 파악하고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범죄를 예측하는 것 등이 프로파일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언급된 에피소드에 의하면 "범인은 단추 두 줄짜리 옷을 목 끝까지 채우고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프로파일러가 있다고 하고 실제로 체포 당시의 모습이 그랬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거의 점쟁이 수준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체계적인 분석에 입각한 결론입니다. 결과가 마법같다고 하여 과정이 판타지스럽지는 않습니다. 그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시작점부터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것입니다. 학술적인 부분에 더해 소설같은 구성이 읽는 맛도 충족시켜줍니다. 범죄자의 심리, 악의 본성에 대해 궁금하신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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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
산다 치에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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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아무런 정보 없이 바로 읽으시는게 가장 좋습니다. (이 리뷰도 패스하세욥!)






심장에 종양이 생기고 그것이 결정화되어 보석이 된다면? 종양을 그대로 두면 보석이 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제거 수술을 한다면 살 수는 있지만 보석을 얻을 수는 없다면? 보석이 엄청난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면? 보석이 죽은 사람의 삶의 형태와 컬러를 닮는다면?








이른바 "보석 병"이라고 불리는 병을 지닌 소녀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가정 형편 속에 소녀는 고민합니다. 보석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며 고군분투 중입니다. 동생들도 불평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지금도 부족한 것투성인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것이 소녀는 싫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 자신과 동생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 잘 참아주는 착한 동생들의 희생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소녀는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그들을 사랑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완성된 보석을 가족에게 남겨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보석의 가치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이 찬란하게 빛나야 합니다. 이제 막 전학을 온 소녀는 자신의 삶이 반짝반짝 빛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멋진 우정을 나눌 친구를 사귀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애인을 만든다. 그렇게 앞만 보고 전진하는 소녀의 발칙한 고3 생활이 시작됩니다.








내용을 더 깊이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정말 아쉽습니다. 어떤 내용을 더 이야기하더라도 이 책의 숨겨진 비밀을 말하게 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반드시 두 번 읽고, 두 번 울게 되는 연애 소설"이라는 홍보문구가 있습니다. 울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두 번 읽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서술 덕분에 이 책은 독자를 시작점으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두 번째 읽으면서 비로소 이 책은 완성되는 셈입니다.

가볍게 시작해서 쉽게 읽혔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바로 읽으시는게 가장 재미나게 읽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2023년의 첫 달부터 좋은 책을 읽었다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로 추운 겨울 심장을 말랑하게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P.S 이 책의 원제는 "태양의 물방울"입니다. 왜 제목이 태양의 물방울이 되었고, 한국어 번역판이 왜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시는 것도 재미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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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 - 아이디어를 소설로 빚어내기 위한 15가지 법칙
제시카 브로디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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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양이를 구해라. 아주 유명한 시나리오 작법서의 제목이다. 그리고 이번에 서평 할 책의 제목에도 들어있다.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는데 뜬금없이 왜 고양이를 구하라고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를 구하는 것이 내가 쓰는 소설을 구하는 일이라면 믿어지시겠는가? 이 책은 고양이가 아닌 작가를 구해주는 책이다. Save the Writer.

영화를 보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한 감상. 그러다가 점차 내공이 쌓이면서 영화를 비평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간다고 한다. 영화는 3단계에 이르기가 꽤나 버거운 일이겠으나 소설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자본을 끌어오거나 배우를 섭외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이 자신의 머리와 손과 묵직한 엉덩이(!)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엔 감독 지망생보다는 소설가 지망생이 더욱 많을 것이다. 나도 그 흔한 지망생 중 한 명이고 말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1년에도 수 편의 작품을 뽑아낼 정도인데 왜 나는 한 권의 작품도 완성하기가 힘든 것일까.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 중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은 왜 또 소수인 것일까.



블레이크 스나이더라는 유명한 시나리오 작법가이자 강사가 있었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15개의 요소가 있다고.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만든 것이 Save the Cat이다. 이 책을 읽은 제시카 브로디는 생각했다. 영화가 그렇다면 소설도 별 차이가 없겠다고. Save the Cat의 소설 쓰기 버전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책, '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이다.



내가 만든 주인공은 왠지 매력이 없다. 매력이 없는 주인공은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그럴 때 이 사람의 배경에 생명존중이 있음을 넌지시 보여주면 사람들은 주인공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매력 없는 주인공에게 나무에 매달린 고양이를 구해보도록 한다. 이것이 Save the Cat의 의미이다. 이 책에선 15개의 비트를 통해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소설 쓰기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소설이 작가마다 다르고 문체가 다르고 스토리를 끌어가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15가지의 재료가 있다. 마치 빵을 굽는 사람이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밀가루와 설탕, 계란, 이스트가 없이는 불가능하듯이, 신박한 소설을 지어내는 사람이라도 원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을 따른다는 것이 창의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요소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체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15가지의 요소는 다음과 같다. 소설을 3막 구성이라 했을 때 1막에선 오프닝 이미지, 주제 명시, 설정, 기폭제, 토론이 이뤄져야 하고 2막에선 2막 진입, B 스토리, 재미와 놀이, 중간점, 다가오는 악당, 절망의 순간, 영혼의 어두운 밤이 나타난다. 마지막 3막에선 3막 진입, 피날레, 마지막 이미지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바깥으로 표출하는 욕구는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1막의 오프닝은 주인공의 삶이 흔들리기 전, 즉 변화하기 전의 일상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1막의 주제 명시 파트에서는 주인공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려는 이야기가 제3자를 통해 넌지시 전달되지만 주인공에 의해 묵살된다. 1막의 '설정'파트에서는 주인공이 외적으로 원하는 목표나, 변화 전의 세계에 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결함도 나타난다. 1막의 '기폭제'파트에서는 주인공의 세계를 한 번에 무너뜨린다.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고, 집단을 떠나야만 하게 되거나, 통과의례를 치러야 할 때가 오는 등의 사건이다. 기폭제를 통해 주인공은 기존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막의 마지막 '토론'파트에서는 주인공이 변화와 마주하기 전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면의 고민을 표현해야 하는 파트이다.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이 토론 파트에서 주인공이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주인공이 겪는 혼돈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2막의' 진입장면'에선 주인공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만들고 이뤄나가야 한다. 아직은 진정한 변화가 아닌 외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두고 있다. 2막의 'B 스토리' 파트에서는 2막 이후를 주인공과 함께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할 준비를 한다. 이들은 보통 조력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2막의 '재미와 놀이' 파트에서는 독자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책의 뒤편에 소개되는 부분이다. 쥬라기공원 영화라고 치면 '공룡이 살아있는 공원에 사람들이 갇혀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도의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 파트는 거듭된 실패로 하향곡선을 그릴 수도 있고 거듭된 성공으로 상향곡선을 그릴 수도 있으며 오르락내리락할 수도 있다. 역시 쥬라기공원으로 치면 '티라노가 탈출해서 자동차를 덮치는데 간신히 살아남(하향), 나무 위에서 목 긴 공룡 브론토사우르스와 교감하며 힐링(상향), 중앙관제센터에 도착해서 안도(상향), 전기를 올리기 위해 벨로시랩터가 노니는 곳을 뚫고 지나감(하향), 식당에서 벨로시랩터에게 쫓김(하향)'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2막의 '중간점' 파트의 핵심 키워드는 '거짓 승리', 혹은 '거짓 패배'이다. 주인공은 잠시 스토리상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패배의 수렁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다. 잠시의 승리 속에 의기양양한 주인공이나, 잠시의 패배 속에 좌절감에 사로잡힌 주인공을 보며 독자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2막의 '다가오는 악당' 파트에서는 앞선 중간점 파트에서 일군 승리가 거짓됨이 밝혀지고, 패배는 곧 지나가는 것임이 밝혀진다. 다가오는 악당이란 주인공 내면의 결함이다. 주인공은 아직은 이 진짜 목표를 찾지 못한 상태다. 2막의 '절망의 순간' 파트는 주인공의 최저점이다. 외적인 목표를 이루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았던 주인공이 아주 크게 좌절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낼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다. 보통 죽음이라는 양념으로 이 최저점을 극대화한다. 2막에서 내내 조력자로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이곳에서 많이 사망한다. 2막의 마지막은 '영혼의 어두운 밤' 파트로 주인공은 최저점에 이르러 진정한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한다. 이를 통해 결단에 이르게 된다.

3막의 '진입'파트에서는 진정한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은 주인공을 보여준다. 올바른 해결책을 알아낸 주인공에겐 깨달음이 있다. 3막의 '피날레'파트에서는 앞선 깨달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2막에서 생긴 문제를 전부 해결하고 변화했음을 보여주며 작가의 주제의식이 표출된다. 3막의 '마지막 이야기'파트에선 주인공이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얼마나 성장한 인간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위와 같은 15가지의 장치를 잘 활용하면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서사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어떤 내용을 쓰고 싶은지에 따라 조금씩의 변주가 가능하다. '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의 작가 제시카 브로디는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책들을 이 15가지 장치에 맞게 분석하여 보여준다. 몇 가지 이야기의 장르(라고 표현되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큰 개념으로)별로 그에 해당하는 소설을 고르고 그 소설들을 분석하여 15가지 장치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15가지 장치를 이해시킴과 동시에 체화가 가능하도록 하여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2021년인 지금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영화를 보면 호흡이 상당히 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도 소설은 영화보다 호흡이 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인들은 이제 긴 호흡의 영상이 불편해진 것 같다. 소설도 이제는 호흡이 길면 읽히지 않는다. 웹 소설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의 작가들은 영화 시나리오의 작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존 소설보다 짧은 호흡으로 몰입감 있게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 작법서를 모티브로 한 소설 작법서인 '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가 이런 고민을 가진 작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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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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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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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꿈꾸는 하나의 상황이 있다고 하면 무엇일까? 훌륭한 성과를 내서 칭찬을 받는 것? 성과가 쌓이고 쌓여 빠른 승진을 하는 것? 높은 월급을 받는 것? 물론 이런 것들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감히 다음의 것이야말로 직장인들의 최고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을 가로채고 부하직원에게 실수를 덮어 씌우는 상사의 뒤통수를 멋지게 후려갈기고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 (여기에 무릎을 꿇고 하는 굴욕적인 사과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세상엔 의외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것처럼 꾸며낸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타인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둔갑시키고 자신의 실책을 타인의 것으로 보이게 하는 위장의 귀재다. 그리고 이 카모플라주의 화신들은 세계 곳곳에, 특히 우리 주변 곳곳에 퍼져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이런 자들의 활약 속에 진짜 일 잘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고 회사를 떠나간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 모두 주변에서 봐온 일이기도 하다.


 


이케이도 준(池井戸 潤) 작가의 '한자와나오키(半沢直樹)'가 인플루엔셜 출판사를 통해 드디어 정식으로 한글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로 유명한 2013년작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의 이름이 '한자와 나오키'인 데서 따온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漢字와 나오키'로 이해했다고 한다. 물론 본인도 '나오키라는 사람이 한자로 무언가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원작 소설이 '우리들의 버블 입행조', '우리들의 꽃의 버블조'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이라 그랬는지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와 나오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아무래도 책을 소개하기 전에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드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드라마 시청률 역대 3위이고 2000년 이후 드라마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종회 시청률이 42%, 순간 시청률은 46%가 나왔다고 한다.) 주연배우인 '사카이 마사토(堺 雅人)'의 열연까지 더해져 대히트작이 나온 셈이다. 드라마화되지 않은 원작 소설 후속작이 2권이나 더 남아있었던 만큼 시즌2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망이 컸는데 캐릭터 고착을 우려했던 사카이 마사토의 출연 고사로 전망이 불투명해졌었다. 그러다 최근에 주연 출연을 확정 지으며 7년 만에 시즌2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4월 방영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한 은행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대출 관련 업무를 보는 융자과의 과장인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 지점장 아사노의 부당한 지시로 인해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게 되고, 기업이 부도가 난 뒤에는 상사의 책임회피로 인해 대단히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 힘 한번 못써보고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데 다행히 우리의 주인공 한자와는 반골기질이 다분한 열혈 청년이다. 잘못된 것들을 조목조목 따져나가고 자금 유출을 위해 계획 도산한 회사 사장의 음모를 파헤쳐가며 처절한 복수를 이뤄낸다. 수많은 고구마 끝에 놓인 카타르시스라는 사이다 한 병이 이 책의 진가를 보여준다. (사이다가 생수통만 해서 시원 통쾌함은 보장할 수 있다.)


 


"저는 당신이 쓴 보고서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요. 약속을 지켜줘야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한다고 하셨죠?"


"무릎은 안 꿇으실 건가요?"

 


저자 이케이도 준은 미쯔비시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은행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을 소설에 녹여낸 듯하다. 지금은 여러 가지 작품들로 경제소설의 대가라고 불릴 정도이다.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한자와 나오키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경제용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극의 사실성을 높이면서도 읽는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게 풀어내는 완급조절이 탁월하다는 점이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의 물 흐르는 듯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은행이라는 정갈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을 맛보게 하는 구성도 대단했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이 곳곳에서 던지는 대사들이 하나하나 살아있어 복수의 쾌감을 가증시킨다. (책에 따라온 스티커에 쓰인 대사들이 아주 만족스럽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왜 사람들이 한자와 나오키에 열광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겪었던 불합리한 답답함들, 특히 수직구조적인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당한 압력들에 굴복해야만 하는 매일매일 속에서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의 고군분투와 강렬한 외침이 주는 대리만족은 아니었을까. 상사를 한번 들이받아버리고 싶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결국은 잘못 없이도 죄송하다 말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판타지를 한자와가 이루어줬기 때문은 아닐까. 도무지 정의가 이기는 것 같지 않은 세상이지만, '가끔은 정의도 이긴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을 실현시켜주는 대상은 아니었을까. 


 


한자와 나오키 소설을 찾는 첫 번째 독자들은 일드 한자와 나오키를 재미나게 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원작을 읽고 싶어도 원서밖에는 없어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았는데 뭐 원작까지 읽겠나 싶겠지만 원작과 드라마는 설정상에도 차이가 있고 내용의 깊이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이 있어 소설의 모든 부분을 다루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생생함과 통쾌함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 시청자뿐만 아니라 새로이 유입되는 독자들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권에서 한자와는 오사카에서의 전투(?!)를 성공리에 끝마치고 도쿄의 영업 2부로 가게 된다. 2권에서는 어떤 부조리와 싸워 우리에게 기쁨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명쾌한 세상을 보여주는 한자와 나오키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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