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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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김남준)이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주목!”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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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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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관리의 딸 소냐는 가족을 위해 창녀가 된다. 세 명의 아이가 있는 과부가 새 엄마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1년 정도는 성실히 살아갔지만, 곧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집에 돈만 생기면 몰래 가져가 술을 퍼마시고 들어온다. 그러면 아내는 그런 남편의 머리털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마구 화풀이를 해댄다. 좌절이다. 소냐가 새엄마에게 나더러 진짜 그런 일을 하라는 말씀이세요?"라고 항의했을 때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소중히 지키는 거냐?"라며 되묻는다. 그리고 소냐가 돈을 벌어 왔을 때 그녀는 침대맡에 엎드려 소냐의 발에 키스하다가 결국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 소냐는 새엄마가 순수한 분이지만 슬픔에 젖어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라스콜리니코프(로쟈)의 여동생 두냐는 오빠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가정교사로 있는 집에서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두냐에게 추근대는 남편을 발견하고 열 받은 안주인이 소냐를 모욕하고 온 동네 소문을 내고 난리를 피는데, 결국 소냐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태도가 180도 변해 잘못을 빌며 자신의 친척을 신랑감으로 소개까지 시킨다. 그는 아내를 존중하거나 하는 따위의 감정은 없는 사람으로 가난한 아내가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고 결혼을 고마워하기를 바라는 속물이다. 두냐는 그와 결혼을 결심하는데, 로쟈는 두냐의 결혼이 자신과 어머니를 위한 희생이라는 걸 간파하고는 분개하고, 결국 두냐가 그 여주인이 남긴 돈을 일부 받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은 꼬여만 간다. 

 

로쟈는 이 두 여인을 같은 선상에 놓고 사고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버리고 그렇게 희생한다고 해서 무엇이 개선된다는 말인가? 로쟈는 수전노 전당포 노파,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는 존재를 죽여서 이런 가련한 자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뽀르비리, 라주미힌이 로쟈의 범죄론 논문에 암시된 사상을 언급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범죄는 항상 병을 수반한다는 주장을 하셨더군요. 아주 독창적인 주장이었습니다만. …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어떤 부류들이 있는데, 그들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기보다는, 그런 짓을 행할 완전한 권리를 지니고 있고, 또 그들에게는 어떤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런 암시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눠지고 있는 것 같다는 거야. 평범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아야만 하고, 법률을 어길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아, 왜냐하면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구너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비범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만일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논문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당신은 그 논문을 거의 올바르게 이해하셨군요. … 다만 유일하게 창이가 나는 점은 저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범한 사람들이 반드시 모든 종류의 폭력을 써야만 하고, 그래야만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논문이라면 게재가 허용되지 않아을 것 같군요. 저는 다만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것도 만일 그의 신념(때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적인 신념일 수도 있지요.)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 제 생각으로는 만일 케플러와 뉴턴의 발견이, 그 발견을 방해할지도 모르고 혹은 그 발견의 길에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는 몇몇의 혹은 수집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뉴턴은 자기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런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제거해야 할 권리가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일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뉴턴이 아무나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매일 시장에서 도둑질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면서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반드시 복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굴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부류는 항상 현재의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미래의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세계를 보존하고 그 수를 늘립니다. 후자는 세계를 움직여서 그 목적으로 인도하지요.”

라주미힌에게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네가 한 모든 말 중에서 정말로 ‘독창적인 것’은, 그러니까 너 자신만의 의견은, 내 생각에는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네가 ‘양심상’ 유혈을 허용한다는 점이야. … 그것은 내 생각에 유혈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야.”

 

세계명작은... 아 이런 장면이 있었구나,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구나, 역시 제대로 읽어야 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예전에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다, 한 10년 전쯤... 언젠간 다시 시도해 보리라, 아직은 엄두가 안 난다. 고전의 경우에는 작품에 대한 해설, 만약 그게 좋은 글이라면, 설명의 글을 먼저 읽고 원문을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현대성을 담고 있다고 해도 시대 배경과 작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온전히 그 작품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좋은 가이드 책이 참 반갑다. 일단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고민에 팁을 주니까~ 

<죄와 벌>도 예전에 읽었는데 가난한 지식인이 자신의 신념대로 전당포 노파를 살인하지만 창녀 소냐의 고귀한 정신에 감화되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수한다.... 이렇게 한 줄로만 기억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참으로 여러 곳에서 의미심장한 글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정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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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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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가 있다면 일단 책으로서 하나의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학자들 눈에 고미숙 선생님의 글은 탐탁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하수라는 식으로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다들 제 역할이 있지 않은가! 가방끈 길지 않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길고 긴 고전을 일허게 재미있게 소개한다면, 게다가 그 긴 소설을 읽도록 독촉하는 글이라면, 그보다 더 이 독서 시장에 기여한 게 또 있을까? 여하튼, 노는 남자... 복수는 나의 힘... 싸우면서 정분 난다... 등등 책을 읽으면서 다시 차례를 살펴보는데, 그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서 깔깔댔다.

 

일러스트가 본문과 어쩜 이렇게 맞을까 싶었다. 이름을 들여다보니 '이강훈'이 보인다. 이제 책을 살 때마다 디자이너와 일러스트 이름도 꼼꼼히 챙겨봐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일러스트를 보면 또 두 배로 재미있다, 어쩜 이토록 능청맞게도 그려 놓았는지... 디자이너의 상상력이란.... 책을 다 읽고 그리셨나??? 완전 굿이다...

 

그런데 <인트로>를 읽을 때 강력하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엄청엄청엄청 고고하신 분의 인상이랄까, 자존심이 강철 같으신 분이랄까 하는 인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을 것 같은, 마치 그렇게 두꺼운 자존심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왜 글을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강의를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선생님이 좀 무서우실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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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범우문고 87
F.사강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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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를 읽고 깜짝 놀랐다. 어쩜 이렇게 심리 묘사가 뛰어날까? 열아홉 살 때 처음 쓴 장편소설로 단번에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샛별이 되었다고 한다. <슬픔이여 안녕>이 바로 그 소설이다. 작품 두 개를 읽고 나니, 우연히 하나 잘 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왠지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르주아의 권태를 느끼며 예븐 얼굴을 프리미엄으로 맘껏 지적 허영에 빠져 살았을 것 같은 사강 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오랫동안 이 유명한 작가를 들춰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사강을 좋아하게 되었다...ㅠㅠ

슬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역시 소설가는 다르다...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역경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마치 사강 자신과도 같았을 열입곱 살 예민한 소녀 주인공 세실, 그리고 바람둥이지만 딸이 진짜 좋아하는 아빠, 그리고 아빠의 언제 바뀔지 모르는 애인, 이렇게 세 식구가 별 생각 없이 풍족함 속에서 느긋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아빠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웬 청천병력이람? 아빠에게 그녀가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똑똑한 딸이지만, 그녀에게 빠져 자신에게서 처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빠의 모습에 세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부터 잔인함이 올라온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세실에게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거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으리라.

세실은 아빠의 어린 옛 애인을 자신의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것처럼 연극을 시켜서 아빠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그는 약혼자를 사랑하지만, 내 것이었던 애인이 다른 '젊은' 남자 품에 있는 것은 자신의 '늙음'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비참함을 느끼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다. 단지 어린 애인을 다시 빼앗아서 비록 자신이 버린 여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잠시만. 결코 약혼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데 어린 세실이 이런 자신의 아빠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잔인한 계획이 간단하게 먹힐 걸 알았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비극으로 끝날 줄은 몰랐다는 것...

세실은 그녀의 빈 자리를 느낄 때마다 밀려 오는 야릇한 감정, 즉 슬픔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기꺼이 슬픔에게 안녕, 너구나, 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여기서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인사는 헤어질 때가 아니라 만났을 때의 인사다.

길지 않은 분량 안에 강렬한 플롯과 심리 묘사가 잘 함축되어 있다. 사강 소설의 특징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천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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