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룸메가 읽고 싶어하던 책 중 하나.

학기 시작하고 오픽, 삼전 인턴, 엘지 산학장학, 케이엘에이, 국도화학 인턴, 또 오픽, 영어 학원, 중간고사... 너무나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이번학기 첫 책을 읽는 것 같다. 이번학기는 꽤 자투리 시간도 열심히 보내고
봉사도 그렇구 정말로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핑계인가? 조금 더 지나면 내 시간들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지?

책이 얇고 쉬워 보여서 편하게 읽으려고 빌렸다. 마침 도서관에도 있었고.

일본의 편의점 문화가 조금 신기했다. 오잉 따뜻한 식품과 차가운 식품을 따로 담아준다니, 나도 늘 바라던 거였는데. 매일 6대 접객용어와 맹세의 말을 제창한다니...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일본의 은행기업중 아침 조례시간이 있고 다들 인사연습 등을 하는걸 봤는데,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인사하는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편의점 하나 운영하는데에도 그날의 기온, 시간대, 목표치, 주변 상가의 변화, 진열하는 음식의 위치, 샌드위치나 주먹밥 등의 변화, 신상품, 인기상품, 할인상품 등 정말 너무나도 많은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구나. 어디든 괜히 경력직을 선호하는게 아니구나.


‘어린 시절 내가 삽으로 남학생을 때렸을 때도, 어른들은 모두 ˝분명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거 근거도 없는 억측으로 우리 가족을 비난하고 괴롭혔다. 내가 학대당한 아이라면 그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 그런게 틀림없다, 순순히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_ 고정관념 stereo type! 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보는 관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도 종종 저 친구는 왜 저럴까? 아, 집안이 그랬구나 하곤 했는데 그게 틀린거였을까? 그렇지만 난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친구를 그렇게 만든 원인. 그런데 이 주인공 말대로라면, 태어날 때부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럴까? 배우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이 주인공 같은데 속이고 있는걸까. 주인공의 어릴 적 행동들이 이해가 안되지 않는다. 새가 죽었고, 아빠는 새고기를 좋아하니 새를 구워먹자. 나도 잘못된걸까? 사실 나는 주인공 같은 사람인데, 어릴적부터 학습되어온 것을 누구보다 잘 이행하고 있는건 아닐까?

다 읽고 나니 ‘헐‘ 싶은 마무리다. 결국 아무 것도 완결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고쳐지지도 않았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정형화된 결말이 아니라서 좋았다.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건 정말 이상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아서이다. 그런 사람을 세상은 바꾸려고 하는데, 아직 이 사람이 변화하지 않았다. 중간 중간 변화하려는 요소들은 있었지만, 본질이 변한 느낌은 아니다. 뭐랄까, 뭔가 위안이 된 기분이다. 작가로부터 사회의 기준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들은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에서 마음껏 부딪히며 살아가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엔 우울한 감성의 책 보다는 조금 생기넘치고, 기쁜 책을 읽고 싶어서 집어든 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저릿저릿 기분이 이상하다.

다 읽는데 한참이 걸렸다. 성록이 면회갈 때 배에서 다 읽으려 산 책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아니면 멀미가 나서 다 읽지 못하고 틈틈히 읽으려다가 이제서야 책장을 덮었다. 계속 읽고 싶고 내용도 계속 생각나곤 했는데, 내가 게으른 탓이겠지.

사랑이라는게 정말 뭘까.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 안도감, 단순한 그런 감정들로 생각해왔는데 줄리에트 대신 죽음을 생각하는 샘을 보면서, 온갖 사고들에 몸이 다 닳아가는 와중에 줄리에트를 살리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대신 죽음의 케이블카에 오르려한다. 또,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후 자신의 삶이 완전 망가져버린 마크. 그리고 그 여자가 나타나자 함께 죽음을 자처하는 모습은... 이 사람들이 무모한걸까, 내가 덜 열정적인걸까, 뭘까. 나도 성록이한테 이런 상황이라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성록이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을까?

자라온 환경이라는게 이렇게나 절대적인 것일까. 생각하게됐다. 마약소굴에서 자란 아이들은 범죄자의 길을, 그나마 노력해서 가정을 이뤘음에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족의 감정들...머지않은 미래에는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한다. 아마 온전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sns등으로 그런 가정을 많이 보고 배우며 자랄테니까, 분명 더 괜찮아지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 맞는 말이야. 다만 중요한 건 이거란다. 네 살 때에는 일 냔이 네 평생의 4분의 1이았다는 점이지. 그런데 이제는...˝
˝39분의 1이죠.˝
˝나에게는 72분의 1이지.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축소되는 거란다. 아니, 적어도 축소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느낌이란 언제나 주관적이니까. 시간은 늘거나 줄어들지 않아. 언제나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고, 일주일은 7일이며, 1년은 365일이지.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한 만큼 더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지는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글라스 케네디만의 느낌이 있다. 여행? 사랑? 직업? 다방면에 지식이 많고 그 내용들을 일반인도 전혀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는 능력.

빅 픽처의 주인공은 사진기사가 되고싶던 변호사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살인을 저지른 사진기사의 이야기로 끝이난다. 변호사와 사진기사는 동일인물이고, 신분을 세탁하여 새로운 인생을 산다. ‘내가 저 사람의 인생을 산다면...‘ 하고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내용이지만, 주인공처럼 살인을 저지르고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읽는 내내 주인공의 감정에 푹 빠져들어 주인공이 끔찍한 살인범이라고, 혐오의 대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1인칭 주인공시점이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아마 모든 사람들의 주인공 시점에서는 이런 사연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행동들로 이루어져있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것, 마음 맞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일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첫번째 부인과 두번째부인 모두 사랑해서 시작했으나 첫번째 부인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왜였을까. 만약 부인이 미술가로서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남편 역시 일을 때려치우고 사진가 일을 시작했다면 사랑이 계속됐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 둘은 맞지 않았던걸까...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거지민, 다방면에 재능이 많으신분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연구하신 걸까?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것도 탁월하고..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입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소설들도 다 읽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이서 폼나지 않는 일을 해줘야만 비행기가 논두렁이나 하수구에 처박히지 않고 하늘을 제대로 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다. 대표성의 잣대에 기대지 말고 개별성의 잣대로 사람을 대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성숙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토포에 빠지려면 왕창 망가져서 모든 게 폐허가 되거나, 아니면 나는 모르겠으니 배 째라 이렇게 배짱 좋게 무책임해지거나, 둘 중에 하나는 돼야 하죠. 이것저것 걱정하고 그러면 절대 안 돼요.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폐허를 가질 용기도, 무책임을 가질 용기도 없어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메머드 도시가 등장한 아후로 현대위 밤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져 있죠.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누군가 다른 곳에서 내 몫의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러니 나는 여기서 다른 삶의 몫을 잘 살아줘야 할 텐데, 뭐 이런 생각. 내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 존재감이 아주 작아졌다는 생각과 그 존재감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우리 둘 중에 하나가 가짜였다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둘 중에 누구 하나가 허상이라면, 그 허상은 바로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에요.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괸손잡이는 바로 저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