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저기행 - 책으로 읽는 조선의 지성과 교양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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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름이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저자는 낯선 길에서 귀한 친구를 만나길 바란다는 바람이 담긴 서문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 명저로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하는 작업을 책에 담았다. 책 제목만 들어도 저자가 떠오르고, 저자 이름만 들어도 책 제목이 떠오를 만큼 역사를 배웠다면 누구나 한번은 들었을 조선 시대의 명저들이지만, 정약용의 목민심서나 이순신의 난중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이익의 성호사설 등을 직접 읽어본 이는 드물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조선의 명저 앞에서 시대적 격차와 방대한 분량을 스스로 극복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하는 책

    이에 책은 조선의 명저를 정치, 역사, 기행, 실학, 의학의 다섯 가지 분야로 분류하여 총 16권의 책을 소개한다. 명저에 저술된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역사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정치명저인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은 지방관아의 우두머리인 수령에게 행정 지침을 전한다. “청렴하면서 치밀하지 못하거나 재물을 내어 쓰되 실속이 없으면 만족한 행정이 아니다.” 그가 수령에게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청렴이나, 실은 단순히 청렴하기만 해서는 치열한 이권 다툼에서 얕보여 살아남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수령이었다. 아전과 향관, 문졸, 관노비 등의 관속들은 정해진 봉급이 없어 백성을 수탈해 경제적 기반을 삼지 않을 수 없던 시대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리와 부정부패가 판치는 지방관아에서 수령은 관속들과 손잡거나 놀아나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고려할 수 있어야 현명한 수령이라 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단일토지세에 앞서 여전제라는 토지제도개혁안을 내놓을 만큼 시대를 앞선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 채 유배를 가는 등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명저 난중일기의 이순신과 비슷하다. 난중일기에는 원균을 비롯한 상관들과 이순신 간의 갈등, 위계질서를 중시했던 수군의 폐단이 잘 드러나 있다. “원균이 거짓 내용으로 공문을 돌려 대군을 동요하게 했다.” 이순신은 나라의 안위보다 장수 개인이 공로를 치하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에 치를 떨었다. 이런 현실에선 나라를 지키는 장수의 현명한 판단에도 앙심을 품고, 사사로이 감정을 개입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 전쟁을 그르치기도 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순신의 죽음을 선조실록에서도 애석하게 기록하고 있다. 기행명저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연암체의 등장으로 나라를 술렁이게 한다. 박지원 특유의 재치있고 자유로운 문체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퍼지자 급기야는 정조가 문체를 바르게 되돌려놓는 정책인 문체반정을 지시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두고 있는데 그 중 수레와 벽돌에 대해 찬양하며 조선에도 이를 도입해 백성이 보다 편리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다. “나 역시 이런 고비에 이렇게 재빠를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창대 역시 말 다리에 휘감겨 까딱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열하일기에서 먼 거리의 힘든 여정 속에서 양반의 체면을 지키려 애쓰는 양반 박지원을 볼 수 있다. 양반전은 저술하며 조선 시대 양반의 체면치레와 형식주의를 비판한 박지원조차도 어쩔 수 없는 양반이었던 것이다. 실학명저 성호사설을 남긴 이익도 양반이었지만 너무나도 따뜻한 양반이었다. “우리나라 노비의 법은 천하 고금에 없는 것이다.” 자고로 학자라면 앎을 실천하여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할진대, 조선 시대에는 이익처럼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는 양반이 드물었다. 비웃음을 사면서도 노비에게 제사를 지내주고, 걸인을 보고 눈물짓던 이익은 당 시대의 노비제도를 비판하며, 이런 현실에서는 뛰어난 자도 그 능력을 떨쳐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없을 거라 통탄했다. 한편, 당시로는 쉽게 알 수 없던 우주에 대한 통찰을 지닌 실학자 이익도 실용적인 학문에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유학경전은 절대적으로 신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조선 명저 기행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책을 읽으며 마치 조선 명저들을 저술한 인물들이 살아간 그 시대를 둘러본 기분이었다. 현대와 조선은 어찌 보면 아주 멀리 동떨어진 듯하지만, 각 인물이 처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 속에서 그 시대의 인물을 어떻게 사고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지켜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느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자, 책에서 소개한 명저를 조선 시대에서 전해져 내려온 선물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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