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에르 드 부아르 5호 Maniere de voir 2021 - 도시의 욕망 마니에르 드 부아르 Maniere de voir 5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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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르 드 부아르 5호 '도시의 욕망'을 펴는 서문은 아주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은 '다음세상'으로 나아가는 물꼬를 트기는커녕 기존의 패러다임만 확대 재생산했다. 전자 상거래 이용이 증가해 디지털 거대 기업이 덩치를 더 키웠고, 공공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사이에 제약 산업이 보건 의료계를 장악했다. 하지만 전염병의 대유행이 판도를 바꿔놓은 영역이 있다. 바로 대도시다. 대도시가 다른 지역보다 우세하다는 인식이나 대도시 만능주의는 예전 같지 않다."


이번 '도시의 욕망'편을 보고 싶었던 것은 우연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스타그램에서 짧게 소개 된 브누아 브레빌의 '줌과 아마존에 의한 '도시탈출''이라는 글이 궁금해서였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해 지하철-회사-집의 루틴에 갇힌 채 대도시의 어떠한 이점도 누리지 못하게 된 프랑스의 도시민들이 도시를 탈출하여 시골로 향했다는 현상을 다룬 글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도시확대인가, 자연으로의 회귀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현상의 모순을 지적한다. "하지만 화이트카라가 대거 대도시를 떠나 페르슈나 벡생에서 재택근무를 한다는 이 '사회 모델'은 특히 자동차와 줌(Zoom), 아마존(Amazon) 같은 거대 온라인 기업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 심각한 도시확대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진정 '자연으로의 회귀'라 할 수 있을까?" 라는 마지막 문장이 보여주듯 말이다.


도시는 분명히 이점을 갖고 있다. 밀집된 편의시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도록 잘 짜여진 대중교통, 미술관, 공연장 등 문화생활을 위한 수준 높은 인프라, 높은 공공기관 접근성, 근거리에 위치한 병원, 사람이 모여있는 만큼 더욱 풍부한 일자리와 기회들까지. 하지만 이 모든 이점은 누릴 수 있는 자에게나 이점일 뿐이다. 도시는, 더구나 대도시는 언제나 양극화라는 뒷면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우리는 이미 도시가 초래한 여러 문제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든 무시하든 환경오염, 인구밀집으로 인한 중소도시의 붕괴, 도시빈민 등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더욱 심화되고 있다. 도시에 대한 환상은 서서히 빛이 바래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는 꺼지지 않는 불로 빛난다. 코로나 19로 인해 굳이 도시에서의 삶이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브루아 브레빌이 글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자동차와 줌과 아마존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삶의 형식도 생겼지만, 그로 인한 도시탈출은 말 그대로 자동차와 줌과 아마존에 의존한 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도시의 관습을 시골까지 가져와서 시골을 도시 생활방식의 연장이나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동화된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하는데, 시골로 이주하는 대도시인의 환상을 채우기엔 "도시탈출의 욕구와 노동시장, 서비스 이용 가능성, 가족과 친구와의 접근성, 좋은 학군, 부동산 가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합의점"을 찾기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안락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도시에서 사는 삶, 대도시에서 사는 삶, 도시에 살지 않는 삶, 모두 제각각의 모양과 이유를 갖고 있다. 일자리 때문이든, 학교 때문이든, 양육 때문이든, 여러 편의시설 때문이든 말이다. 나는 인구 150만의 도시에서 태어나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평생 그곳에서 살았고,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는 인구 천만에 육박하는 도시에서 살았다.


부모님의 눈치가 보이는 만만치 않은 월세에 늘 본전 이상을 해야한다며 효용과 쓸모를 추구해왔던 서울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았더래도 서울에서 살아야만한다고 생각했다. 젊었을 적에는 더더욱 서울의 다양한 인프라를 누려야 한다고,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서울과 서울 근교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아등바등 서울에서의 삶을 추구해왔다. 그런 삶이 과연 좋은것이었나?라고 묻는다면 단박에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인프라만으로도 충분한 도시의 이점을 누려야만 한다는 은근한 강박, 도시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그럴싸한 직장으로의 취직과 성공이라는 욕망은 분명했다. 아니, 나의 욕망은 서울이 아니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잘 사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더래도 말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 5호 '도시의 욕망'편은 이러한 사고에 대해, 도시에 대한 환상과 그에 얽힌 욕망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보다는 "지구촌 도시들의 거대화와 도시의 탈인간성 및 비민주성, 도시의 변형과 분열, 그리고 안식처를 향한 시민들의 저항을 담아 낸다." 지금의 도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현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하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관점이 있는 사유방식'을 의미하는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 라는 잡지의 제목 자체가 그러하듯이, 이 잡지에 실린 21편의 글은 도시와 그곳에 얽힌 무수한 욕망을 배경으로 벌어진 다양한 현상을 짚어내어 사유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독자는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버무려 나름의 사유방식을 찾아낸다.


이 서평이 마니에르 드 부아르 5호 '도시의 욕망'편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다면, 충분히 잡지를 펼쳐봐도 좋을 것이다. 도시에 살며 도시가 한번쯤은 지치기도 했다면 말이다. "무조건 더 넓게, 더 조밀하게, 더 무절제하게 성장한 대도시들"에 "지난 12년 사이에 인류의 절반 이상이 집중됐다." "사회적으로 대도시들은 끝없이 심각한 불평등의 용광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도시는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휴식을 안겨줄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우리의 거친 숨결을 고를 위한의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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