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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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숨겨진,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시험에서 일등을 해도 9천 위안을 내야 다닐 수 있는 '9천 반'. 들어가도 '갑, 을, 병, 정' 네 개 반으로 나눠진 '학교 안의 학교'. 무시무시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학생들. 때론 치열하고 때론 비열하다. 1년 전 방영한 스카이 캐슬이라는 유명 드라마의 OST, "We all lie~"가 절로 귓가에 들려오는 소설, 바로 상쉐타오의 『9천 반의 아이들』이다.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인물은 혜나였다. 타고난 머리와 뛰어난 눈치로 다져진 강한 생존력. 그녀는 극 중 동갑인 친구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세상을 이용할 줄 아는 소녀로 나온다. 한마디로 "어른 찜쪄먹는 학생" - 그게 바로 혜나다. 그래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이 '혜나'라는 인물에 대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어린애답지 않게 너무 영악하다, 또는 불쌍하다로. 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어쩌다 이런 세상을 잘못 만나 저 어린아이가 저런 선택까지 할까, 왜 사회와 어른은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나.' 안쓰러움이 분노가 되고, 그것이 드라마가 방영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상쉐타오의 『9천 반의 아이들』을 읽으며 또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사회는 그들을 인정해주지 못하나."

글의 서두를 어른 찜쪄먹는 혜나로 시작했지만 사실 『9천 반의 아이들』에 나오는 안더례와 리모는 그녀의 성격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천진난만 딱 그때의 장난기 많은 남학생들 같다. 이들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교실의 맨 뒤, 칠판이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같이 앉아 중학교 3년을 함께 보낸다. 처음에 리모는 안더례가 맘에 들지 않았다.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안더례의 꾀죄죄한 몰골과 그에게서 풍겨오는 쿰쿰한 냄새에 그를 멀리하지만, 어느새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다가간다. 안더례 또한 마찬가지. 축구를 해도 무조건 리모에게 패스, 리모가 보지 않아도 리모에게 패스, 보이지 않으면 아예 밖으로 공을 보내버리는 한마디로 리모 덕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그들의 학창 시절과, 또 그 이후 리모가 마지막으로 안더례를 만나게 되는 날 까지를 담고 있다.

글의 부제를 "숨겨진,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정한 것은 순전히 안더례 때문이다. 앞서 스카이캐슬의 혜나를 가져온 것도 그 이유와 같다. 안더례는 9천 반의 괴짜다. 중학교 첫 수업 날, 쑨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로 3년 내내 교실의 맨 뒤에 앉아 책상에 낙서를 하는, 선생님들이 봤을 때 '꼴통'인 인물이다. 아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어느 날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상황이 생긴다. 안더례가 기가 막히게 선생님이 반으로 오는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안더례가 "쉿, 선생님 오신다."라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왔다. 신통방통한 그의 능력에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며 몰려가 물어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선생님의 안경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알아냈다고 답한다. 과학적 지식과 수학적인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할 일이다. 이렇게 똑똑한 안더례의 수학 성적은? 무려 100점 만점에 32점!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것을 풀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더 간단한 풀이 과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뒤에 남은 문제를 깡그리 잊고 몰두한 것이다. 그에겐 남들보다 높은 몰입도, 풍부한 호기심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끈기가 있다. 또한 후에 리모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어른들의 잘못을 주장할 줄 아는 힘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보인다. 아니, 아무도 그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 리모를 제외하고는. 리모 또한 현실에 치이자 그를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무엇이 안더례를 가려지게 만들었을까? 왜 사회는 그를 몰라볼까?

어딜 가나 주목받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특출난 인간형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규칙을 잘  따르며 사회가 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치에 부합하는 사람들이어야만 그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획일화된 시스템 속에서 쳇바퀴 마냥 굴러가는 입시 경쟁의 고리를 겪어보지 않은 학생들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주변의 수많은 언니 오빠, 동생들이 그랬다. 여기에 뒤처지거나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은 낙오자, 실패자로 찍힌다. 그들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9천 반의 아이들』은 이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해, 학교와 어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혜나는 테두리 안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회로부터 지켜지지 못했다. 안더례는 리모를 밀어 넣었지만 그 자신을 밀어 넣진 못했다.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들을 져버리게 만든 건 누구인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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