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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선생님의 이상한 미술 수업 - 엄마도 함께 자라는 미술 인문학
김지연 글.그림 / 웃는돌고래 / 2016년 7월
평점 :
같은 책을 여러번 읽지않는 편인데, 세 번을 읽게되었다.
흥칫뿡! 어랏? 흐음...하면서
묘하게 설레게하는 그런 책이다.
자칫 잔소리대마왕으로 늙어갈 뻔한 한 영혼을 구원한 책이다.
처음엔 그냥 많고많은 지자랑책인 줄 알았다.
이건 순전히 내가 샘이 많은 샘보라 그런 듯하다. 왕년에 아이들과 좀 놀아봤던 경험이 있는지라 엄청 부러워 배가 아픈거다. 그런 일들로부터 멀어진 지금의 상황이나,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는 혼나고혼내는 관계로 굳어가는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니, 내용이 제대로 보일리가 없었다.
두번째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15쪽)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나면 어른들이 더 많이 배웠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랬다. 어떤 목마름때문인지, 나는 20대를 아이들과 보냈다. 청소년 단체 활동가, 과외교사, 학습지교사, 공동육아조합 초등방과후 교사, 대안학교 교생실습...언제나 아이들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려고 갖은 애를 쓰며, 아이들과 지지고 볶았다. 돌아보면 제대로 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진지하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배우고 가르쳤다. 지난일이라 그런가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우르르 떠오른다. 다시 그렇게 순수한 열정으로 아이들과 호흡할 날이 올까?
...(29쪽)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일기를 쓸 때 그림을 상세하게 그리면 글은 상징적이고 시적으로 쓰는 게 좋다. 이미 그림에서 자세히 보여 줬는데도 글로도 자세히 쓰라고 하면 똑같은 일을 두번 하는 것과 같다.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림책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아하! 우리 첫째는 그리기를 좋아해서 그림일기의 그림은 즐겁게 얼른 그려내는데, 글로 쓰는 부분에서는 늘 짜증을 낸다. 내용도 '어디에 갔다. 무얼 보았다.' 이정도로 끝이다. 뭐라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나는 그리기가 힘들었지 글로 쓰는 부분이 어려워서, 아이의 상황이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잔소리가 될까봐 그냥 두고 있었는데, 딱 맞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53족) 부모도 받는 연습을 해야한다. 아이에게 존경과 신뢰, 사랑을 받는 것만큼 큰 선물이 어디있겠는가. 모든 아이는 날개를 달고 엄마 품을 떠난다. 날개는 아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주기도 바쁘고 늘 모자란 것같아 미안하기만 하다고 느꼈는데, 받는 연습을 해야한다니! 그게 물질적인 봉양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이라니! 그러고보니 우리집 아이들에게만은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받아마땅한 듯도하다. 여전히 미숙한 내가 세아이의 어미노릇을 하느라 매순간 마음의 그릇을 넓히고, 끝도없는 집안일을 해내느라 얼마나얼마나 애를 쓰는가말이다. 그런 나를 늘 모자라게 보는 스스로에 대한 태도부터 딱 고쳐먹어야겠다. 어랏? 이거 육아서인가?
...(72쪽) 내가 미술로 아이들과 삶을 노래하자는 생각을 품은 것은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글귀 덕분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내가 품은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 순수함을 잃는다면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나 있을까? 아이보다 더 낮은 소리로,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고맙다. 아이들 덕에 정직하게 살아야겠다. 마음도 더 반듯하게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다....
'아이들과 삶을 노래하자' 라니, 눈물이 왈칵난다. 이 무슨 꿈같은 이야기인가! 눈뜨면 밥해야하고, 돌아서면 빨래해야하고, 앉았다 일어나면 청소해야하는 집순이가...집순이가 내팔자인가보다하고 살았나보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에 허덕거리고, 소박한 울타리 지켜내는데 온 정신을 쏟다보니, 아이들과 마주보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배우고 모험하고 사랑하리라는 내 순수한 마음이 어디 멀리가지않고 내 안에 숨어있었나보다. 지우개 선생님의 다짐을 읽어내려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눈물이 맺힌다. 뭣이 중헌줄도 모르고....!
세번째로는 지우개 선생님이 아이들과 뭘하고 어떻게 노는지 꼼꼼히 봤다.
식물 표본만들기랑 질문의 책은 첫째랑 당장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00명의 사람그리기는 아이가 참 좋아할 것같은데, 겨울방학내내 이거 하고 놀면 되겠다. 그러고보니 아이랑 요즘 대화가
'엄마 나 컴퓨터 해도 돼?' '안돼' 말고는 거의 없는 것같다. 그외는 다 잔소리 아니면, 심부름.
지우개 선생님은 아이들과 생각을 나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도 들어본다. 아마도 지우개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존중'이 아이들의 부드럽게 감싸고 있을 것이다.
어른이고 엄마인 내 역할이, 그로 인한 책임을 핑계로 아이들을 때때로 힘으로 누르려할것이다. 그러지말아야지 다짐할 자신도 없다. 다만,지우개 선생님처럼 '존중'이라는 부드러운 기운으로 아이들과 세상을 배우고 누리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다시 그런 꿈을 꾸고, 살아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