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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요즘 세상에 100쇄를 찍은 책이 있다니…….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시대(2023년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한 걸까?
나는 CT 정밀검사 결과를 휙휙 넘겼다. 진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 사진은 내 것이었다. -p.19-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학을 공부하고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고,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려는 그 시점에, 그는 폐암 말기 4기 진단을 받게 된다.
그가 처음부터 의사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폴은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렸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였다.
삶과 죽음과 의미가 서로 교차하는 문제들은 대개 의학적 상황에서 마주치면, 필연적으로 철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주제를 파고들게 된다. (중략) 나는 가차 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신경외과의 소명의식에 이끌렸다. 신경외과는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적접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았다. -p.95~96-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p.198-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술 실력이 탁월한 건 당연한 거고, 가장 중요한 건 환자가 누구인지 환자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해왔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리고나서 폴은 의사의 입장뿐만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죽음과 마주한 채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결국 병원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안타깝게도 수술실로 복귀한지 7개월만에 암이 재발하면서 그는 의사로서의 모든 걸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 하지만 결국 가족들이 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몸을 크게 아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할 정도로 오늘은 몸 상태가 괜찮은 거 같다가도 내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없어질 수 있다는 걸……. 이것이 반복되는 삶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폴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알아내려고 애쓰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고민했다. 병마로 인해 원래의 계획대로 책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의사로서 환자로서 죽음을 앞둔 인간으로서 하루하루마다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죽음은 흔히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처럼 결코 아름답지 않다. 죽음은 냉혹하고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이다. 폴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재의 삶과 언젠간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