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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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시대 시리즈 중 하나인, <우리가 꿈꾸는 나라> 가제본이 지난주에 도착했었다.


서평단에 당첨되고, 김현정의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와 노회찬의 <우리가 꿈꾸는 나라> 중,

한 권이 랜덤으로 도착할 거란 걸 알았는데, 

처음엔 이 책이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차라리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늘 읽고 싶은 것만 읽어버릇하는 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야기적인 글보다는 교양을 좀 쌓고 싶었다.

또 다시 한 번 그를 기려야 하는 일에서 잠시 회피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아직도 눈앞에 생생한 모습이라,

믿기지 않지만, 이 책에 담긴 말들이 그의 마지막 전언이라 생각하고,

그의 살아있음의 생생한 만큼, 이 말들도 시대의 전언으로

내 스스로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메시지, 말씀들,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라, 

아직도 이런 시대의 가도를 함께 타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벌한 그 분의 선택에 때론 책망하는 마음도 들지만,


글만큼은 이 시대정신에 대처해야 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다잡아주는 좋은 말씀들이라, 벌써 한 주 지났다고 그 단단했던 호기를

대부분은 흐릿하게 잊고 만 나의 마음가짐이 헛헛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쾌함이라는 그의 재능은

스스로를 엄정함의 토대에 넣음으로써 타인을 위해 발휘했던

인정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즉, 자신을 깎고, 버리고, 정제함으로써

그만큼 타인을 업을 품을 만드셨던 것 같다.



이정미 대표는 추도사에서 말한다.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촛불혁명을 통해, BC라는 기원 후 개념에 뒤이은

BC(BEFORE CANDLE)란 개념이 탄생했다며, 우리는 모두 촛불 이전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란 말로, 강의의 포문을 연다.

(*이 책은 그가 18.2.20 진행한 창비 연설 특강 '촛불시대, 정치는 우리 손으로'의 

녹취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우리는 이제 기원(촛불 혁명) 후를 사는 사람이 됐으므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강의를 읽으며 생각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으로 빈약하고, 많은 유린과 악침 속에 영위해 온 가느다란 희망의 밧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은 전부 부정부패로 옥살이를 했고,

두 명은 현재 옥에 있다.


허리케인 모금 행사를 위해 전현직 대통령 포함, 총 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미국이 그처럼 나도 부러웠다.


부정의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이 부정의인지 판가름할 수조차 없다.

또한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질을 차치하고) 허울 좋은 명패 속에 가리워져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1948년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로 대한민국은 아홉번의 개헌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 자기보존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개헌들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개념, 욕구, 대의가 반영된 개정은 4.19 혁명 후와 87년 6월 항쟁 후의

개헌이다.

그 마지막 개헌도 30년 전의 일로, 70년의 헌정사 동안 앞선 40년 동안 9번(5년에 한 번 꼴)이 일어났으며,

대부분 부정한 목적에 의해 이뤄졌고, 그런 미비한 (말하자면 분란했던 역사의 격동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30년간 멈춰 있는 것이다. 




사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촛불이 우리에게 준 과제는 무엇이냐. 그 과제란 촛불이 일어났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100만, 150만명의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였을 때 가장 많이 들고 있었던 팻말이 뭐였습니까.

'박근혜 퇴진하라' '이게 나라냐'입니다. 박근혜 퇴진하라는 구호는 실현됐지요. 

그렇다면 또 하나의 손팻말 '이게 나라냐'라는 사람들의 문제 제기는 해소되었습니까? 


그는 정유라가 유독 이상한 사람이어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불편함과 문제의식(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이 쌓여 있었는데, 정유라 문제로 스위치가 눌려

폭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근저에는 더 깊숙한 무의식이 있다.

바로, 전쟁의 문제다.


즉, 우리가 견뎌와야 했던 문제, 불공정과 불평등은 바로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표현되진 않지만)

그 안에 전쟁의 공포, 분리, 지배와 피지배라는 프레임을 전제하고 우위를 독점할 수 있었던 현상이었다.

즉 외부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전쟁, 불평등한 혹사도 묵인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을 바탕으로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응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 가지가 우리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① 첫째, 공정의 문제


- 불법채용에 관계한 전현직 의원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은폐되자 한 검사가 양심선언을 해 사실이 드러남.

- 그렇다면 왜 이런 불공정이 만연할까?

- 그건 잘못이 있더라도 잘못을 벌하는 사법의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기 때문.

- 일례로 우리나라의 사법부의 신뢰도는 OECD 국가 중 꼴찌. 

- 시장에 갔는데, 500그램을 달아도 저울이 800그램으로 표시한다면 아무도 그 시장에 가지 않을 것.

  우리나라의 현재 사법부가 그러한 시장이나 마찬가지인데 제 역할을 안 함.

- 이 불공정은, 빽을 원하는 사회를 만들고, 사람들 스스로 저울을 제대로 세우는 일보다는 기울어진 저울에

  대항할 부정의한 도구를 찾게 만듦으로써 악순환의 구조를 만듬. 


=> 즉, 사법개혁, 검찰개혁부터 이뤄지고, 국민이 사법부를 공정하게 느낄 만큼 권력자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면, 사람들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가져, 사회 전체에 그 영향이 지대하게 퍼질 것.



② 둘째, 평등의 문제


- 불법 해고, 무분별한 파견직의 확산화

- 제대로 된 정책 없이 복지만 늘리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일.

- 최저임금부터 보자면, 호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이 따로 있는데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이 25퍼센트 더 높음.

  각종 복지혜택에서 제외되는 만큼 임금으로 이를 보전한다는 의미. 영국도 비슷하게 취업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지원자가 고를 수 있음. 비정규직의 임금이 더 높은 건 그들은 고용 보장이 안 되기 때문. 

  반면 우리는 사람을 착취하는 횡포가 너무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음.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임금조차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터무니없이 적었음. 

  20년 전엔 정규직이었던 청소동자들은 비정규직도 모자라 파견직이 됨. 가장 만만한 약자를 가장 코너로 내몸.

  이를 통해 그들은 인건비를 낮출 수 있었고, 근로자의 고용 불안이라는 심리적 불안정을 이용하여 착취의 구조를 강화함. 

  심지어 간식도 없앰. 그토록 많은 흑자를 남기면서. 

- 최저임금으로 인한 자영업자의 우는 소리는 사실은, 최저임금의 문제라기 보단 대기업의 착취구조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크다. 본사에서 상당 부분의 수익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게다 임대료와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생각하면 대기업들은 완전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눈물 나도록 진땀나게 노력하는 서민들에 진드기처럼 흡착하여

  그 작은 돈들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는 것이다.


=> 최저임금을 가지고 당장이라도 세상이 어떻게 될 것처럼 소란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는 절대 불평등의 대안을 찾지 않겠다는 외침에 다름 아니다.

만성이 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길 바라는 강자들의 미디어적 지분율의 독점에 따른 기사량의 압승일까.


우리나라 GDP가 전세계에서 12, 13위라고 자랑하고는 하지요. 우리나라 인구는 전세계에서 25위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라가 200개국이 넘는데, 25위라면 꽤 큰 나라인 셈입니다.

게다가 생산은 12, 13위로 순위가 더 높은 것이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열심히 생산한 GDP 중에서

얼마나 나눠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8퍼센트를 나눠쓰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30퍼센트 중반의 비율을, 프랑스는 51퍼센트,

스웨덴은 58퍼센트를 나눠쓰고 있지요.

프랑스는 미국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달러 이상 떨어집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저전세계에서 대학교 등록금이 가장 비싼 편이고 프랑스는 아예 대학교 등록금이 없을까요.

프랑스의 복지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프랑스는 51퍼센트를 나누지만, 미국은 35퍼센트 정도를

걷어서 나눕니다. 우리는 소득이 적은데 28퍼센트만 나누니 복지제도가 더 부실할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그 28퍼센트도 많다며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8퍼센트의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냐, 35퍼센트, 51퍼센트로 나아갈 것이냐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노인들이 병원에 가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노 의원이 조사차 프랑스에 갔을 때 프랑스 사회엔 등록금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석사와 박사를 마칠 때까지 등록금이 없다고.

게다 학부생들은 매달 학생수당까지 받았다고 했다.

유학생들이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과 학생수당을 합치면 당시 한국의 초임 월급과

비슷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누가 결정야 합니까? 국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도 국민이고, 세금을 내는 사람도 국민이고, 나누는 주체도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복지를 어느 수준으로 하고 어떻게 나눌지는 국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요.

28퍼센트에 머물 것인가, 매년 1퍼센트씩 높여서 10년 후 38퍼센트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대통령 후보가 28퍼센트를 유지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늘 28퍼센트가 유지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요.



③ 셋째, 평화의 문제

 

예컨대 유럽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의견이 갈리는 문제는 경제나 복지입니다.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자는 것일 뿐 보수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 이 모든 것의 대안으로써,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선거제도의 개편이다.

국민의 지지의사가 제대로 된 선출 비율로 반영되지 않는 현 선거제도에서는

무엇을 하든, 국회에서 하는 결정들은 일종의 왜곡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개헌을 하면 국회의 권한은 지금보다 강화될 것인데,

그 전에 그렇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선거제도의 개편이라고 말한다.

국회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데, 국회의 권한이 먼저 강화되는 것은 제대로 된

개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민심은 발전했고 깨어 있으므로,

이가 제대로 반영되는 국민의 의사가 그만큼 중대해지는 국회가 선출되면

자연스레 더 건강한 보수가, 진보가 태어나고, 국회의 자정 능력도 더 깨끗해질 것이라는

것이 그가 그리는 정치 생태계다.


미국에서는 입법 관련된 현안 역시도 투표를 통해 결정하곤 한다고 한다.

많을 때는 투표 용지가 26~40개까지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단순히 투표용지가 많아지면

어르신들이 헷갈린다는 이유로, 국민의 권력(투표 범위)을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세계가 불합리하다고, 과도한 복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논리들을 요목조목 타파하면서 자신의 말을 입증시켜나가는 그의 논법은

글로 읽었을 때 역시 눈으로 보고 음성으로 들었을 때처럼

일목요연했고, 부드러우면서,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을 갖췄다. 



그가 정치권 안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인물이었던 것은,

각자의 셈법으로 이루어지는 말의 난타전 속에서, 그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핵심을 부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웃으며 가장 높은 곳으로 너무도 가볍게 도약했다.

그래서, 먼지 한 장 안 날리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었다. 마치 신선처럼 말이다. 




그는 촛불 이후 정치에의 참여는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댓글 역시도 참여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건강하지 못한 댓글이 많을수록, 양식 있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나 역시 댓글을 잘 쓰지 않는 편이고, (사실 댓글이야 워낙 악의적으로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장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나까지 굳이 공들여 무언가 좋던 싫던 잘 표현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때로 너무 화날 때 그래서 내가 아무도 안 읽을 그 작은 말로써, 한 번이라도 어떤 문제에 대해 꼭 말함으로써 기여해야 한다고 느낄 때,

댓글을 쓸 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스무 손가락 안에 꼽을 듯.)

하지만, 가장 작은 참여조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리한 무리들에 의해 사람들의 작은 진심들이 왜곡되지 않게,

내가 가장 못하는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게는 다른 일을 할 생각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로써 우리나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의 꿈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의 모든 말들이 너무 합리적이라,

왜 이 모든 합리들이 구현되지 못할까 문득문득 생각했다.


선거제도의 개편은 정말 중요한 문제 같다.

그리고 파견노동만큼 쓰레기같은 상상력은 없는 것 같다.

그건 노동자가 설 곳이 없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서비스를 받는 고객 입장에서도 사실은 진짜 주체에게 사후 조처를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언제든지 거세하고 숨김으로써,

영원히 돈의 권력 뒤에 숨어 서민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약자들 스스로가 서로 할켜 피를 흘리게끔 만드는 거의 유일무이한 방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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