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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사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평점 :
오랫만에 읽은 소설, #비행사
나는 표지를 다시 드로잉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책의 디자이너는 책을 읽고 어떤 영감을 받아서 표지를 이렇게 디자인했을까? 싶어서 따라 그려보고 싶어지고...)
표지의 프리즘같은 게 뭔가 싶었는데 쭉 독서를 마치고 나니 그 프리즘은 얼음덩이같은 거였다.
냉동인간, 뭐 그런 거지.
이 소설은 플라토노프라는 주인공이 기억을 모조리 잃은 채로 병원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치의는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니 매일 일기를 써보라고 권하고,
그는 반쯤은 강제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병원에서 누구와 어떤 얘기를 했는지, 지금은 어떤 요일인지 등으로 일기가 채워지지만
점점 과거의 기억이 점멸하듯 되살아나고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결말이...!
읽다보니 #창문넘어도망친100세노인 이 생각났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에게 온갖 역사적 사건이 엮어 일어나는 것처럼 (스페인 내전, 북한으로 탈출, 미국 핵폭탄 제조, 마오쩌둥과 스탈린과의 만남 등...)
<비행사>의 주인공에게도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소련 탄생, 스탈린 정권, 강제수용소 등의 사건들이 얽혀있다.
#무려 #100년에걸쳐... 물론 해학적인 느낌은 좀 걷어내고.
“세상에는 빅 히스토리와 스몰 히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흔히 역사라고 하는 이야기와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공존합니다. 이 두 종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라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의 일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이 부분을 알고 읽어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 개인의 작고 사적인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큰 역사의 흐름에 일조하게 되는 것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자조하며 빗댈 때 우주의 먼지라고 하는데 ㅋㅋㅋ (나만... 그런가...)
그런 먼지같은 사소한 개인의 일생이 모여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
한 세기를 건너뛴 시간여행자가 된 후, 스스로를 '시간을 초월한 비행사'로 여기는 플라토노프의 삶.
비상하는 듯한 기쁨, 추락하는 듯한 두려움, 한 명의 삶에 펼쳐지는 희극과 비극을 보며
역사라는 순환의 고리에서 비행하는 '나'라는 우주먼지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ehbook 은행나무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