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빛나는공기청정기의 램프를 볼 때마다 인간에겐 왜 램프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위험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센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또 어느 날엔 아니야. 자신이 망가져가는 걸 온전한 정신으로 자각하는 매일이란 너무 끔찍하니까 램프 따윈 역시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 P173
희망퇴직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알음알음 번지던 시기였다. 오 기사는 병철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연결음이 울리다 끊어지는걸로 보아 일부러 피하는 게 분명했다. 같이 버티자더니. 그러나 화가 났던 것도 잠시였다. 언제부턴가 그저 연결음이 이어진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 적어도 살아는 있다는 거니까.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또 볼 수 있다는 거니까. 세상엔 그런 식으로 확인되는 안부도 생사도 있는 것이다. -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