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2년 전 이자영씨를 떠올리며 내가 가까스로 발견해낸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듯했다.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