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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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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우누스 시리즈도 벌써 다섯 권 째다. 7권까지 다 합치면 3000쪽은 넘을, 이 두껍고 무거운 책들을 지치지도 않고 읽었다. 읽을수록 재미있고 또 읽고 싶다. 그냥 평생 타우누스 지도 안에서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졸졸 따라다녀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이미 ‘타우누스 오타쿠’다. 아, 자랑스럽다.

 

  이번 시리즈를 이끄는 감정은 복수심이 아닐까. 다니던 회사의 사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니스. 그에겐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연인인 줄 알았던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이용하고는 버린 니카. 그녀에게도 부당함을 밝히려는 정의로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적과 목숨을 위해 배신도, 타인의 상처도 불사하는 니카의 모습이, 미드 ‘뱀파이어 다이어리’의 캐서린과 닮았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피와 폐허, 남은 자들의 슬픔이 떠돈다. 이 책의 니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는 리키도 니카와 닮은꼴이다. 한편 리키는 재니스와도 닮았다. 허영심. 그 허영심 때문에 리키는 모든 걸 망쳤다. 이 주요 등장인물들은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처럼 서로 돌고 돌며 닮아 있다. 세 집합의 색을 모두 가지는 교집합 부분은 원전이 폭발한 곳과 닮아 있지 않을까.

 

  그런가하면 이들과 전혀 다른, 순수로 똘똘 뭉친 닮은꼴도 있다. 리키와 재니스를 사랑하며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마르크와, 사랑에 빠져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 보덴슈타인이다. 이들은 앞의 인물들과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종족들이라,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특징을 더욱 부각시킨다. 리키와 재니스라는 폭풍이 휩쓸고 간 곳에 마르크라는 갈기갈기 찢어진 순수함이 울고 있고, 니카라는 바람이 뿌려진 곳에 보덴슈타인이라는 중년의 순수함이 새삼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려 한다. 복수가 있는 곳엔 언제나 마르크나 보덴슈타인 같은 사람이 생기는 것 아닐까? 이 책에 의하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해를 준 대로 자신도 똑같이 갚아주려는 과정에서, 아무 상관없고 무고한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해서 복수에 성공하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승리감? 개운함? 『연기와 뼈의 딸』 시리즈의 3권에 해당하는 『Dreams of Gods and Monsters』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적의 고통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해도 복수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그러니까 결국 내가 받은 아픔을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복수가 아닐까. 마치 상대방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받았던 상처가 치유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증오심에 불타 주변에서 쓰러져가는 연약한 사슴들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내 복수가 끝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지만, 당한 자의 증오심도 만만치 않아서 결국 어느 한 쪽이 철저하게 파괴되지 않는 이상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면 또 마르크와 보덴슈타인이 생기게 되겠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복수하려는 자의 고통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복수심이 들면 이 책을 기억해야지.

 

  이번 시리즈는 여러 모로 닮은꼴이 많다. 등장인물도 그렇지만 시리즈 2인 『너무 친한 친구들』과도 닮았다. 여기서는 피해자인 파울리가 타우누스 고속도로 B8의 서쪽 우회로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을 했었고, 이번에는 재니스가 ‘풍차 없는 타우누스’라는 시민단체를 이끌며 풍력발전 단지 건설을 반대했다. 두 건설 모두 자연을 훼손하며, 교통이용량이 낮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라 풍차가 돌아가지 않는 등 굳이 건설할 이유가 없는데도 소위 높으신 분들께서 돈을 벌기 위해 사업 계획 단계의 도로 교통 감정평가와 환경 영향 평가를 조작했다. 결국 살인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풀리지만 넬레 노이하우스는 사회에 숨어 있는 이런 비리들을 폭로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불편과 자연 훼손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도 던지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므로 어떻게든 정보를 많이 모아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윗사람들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는 ‘범세계적 친환경 독재’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기후 정책이 기후 연구가, 언론, 기업, 정치가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다. 거짓을 기반으로 해서 태어났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득을 가져다주는 정책. 물론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크든 작든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순수한 대중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연관된 혹은 관련이 없는 다른 복잡한 사건들 때문에 살인 사건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타우누스 시리즈가 거의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인사건으로 물꼬를 트고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넬레 노이하우스의 마법의 빛을 따라가느라 독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이런 바쁨이라면 3000쪽이라도 좋다.

 

P.S. 시리즈 순서대로 번역되지 않은 탓일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는 피아가 크리스토프에게 반말을 했지만 『바람을 뿌리는 자』에서는 존댓말을 하고 있다. 또 피아가 크뢰거에게 존댓말을 하고 크뢰거는 피아에게 하대하는데, 피아가 실은 크뢰거보다 6살이나 위다. 크뢰거가 감식반 반장이기는 하지만 나이 차이가 6살이나 나는 것이 걸렸다. 독일의 문화인 걸까. 반장인 것을 고려한 역자의 재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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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 마음이 삶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마음챙김
엘렌 랭어 지음, 이양원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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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힘든 일이 많았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자기들이 옳은 양, 그와 맞지 않는 나를 이상한 사람 혹은 틀린 사람으로 취급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는 그런가, 나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상처받았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난 이상한 사람 같았다. 난 왜 이러지, 내가 그렇게 이상한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 그들이 정해놓은 길, 틀에 박힌 사고방식, 획일화된 가치관들이 너무 싫었다. 반항심 때문인지, 내가 원래 그런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런 세상의 기준에 역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됐다. `너는 ~해야 한다? 다 xx!!`라고 세상에 외치고 내 멋대로 살고 싶었지만, 콩알만한 자신감과 바다같은 걱정이 함께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썩어갔다. 그런 나를 누군가는 이상하다 너, 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어졌다. 오히려 고맙다. 그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 책과 만나지 못 했을 것이고 내가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과 창의력을 탑재한 인간이라는 걸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너 이상한 거 아니야, 라고 말해준 책.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인간에게 한계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덤으로 알려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이전과 같은 식으로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정말이다. 이런 책을 읽고 어떻게 읽기 전과 같겠는가.

*우리는 자신의 실재 및 남들과 공유하는 실재를 구축하고, 그런 다음 그 실재라는 것들이 사람이 만든 개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것의 희생자가 된다. p24 

*심리학자들은 소설가들이 먼저 지나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경향이 있다. p71

*규칙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야지 지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p162 

*`정상`의 정의는 가치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반신 불수`나 `당뇨병 환자`, `너무 뚱뚱한 사람`이나 `너무 마른 사람`과 같은 말은 곧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이상적인 존재 방식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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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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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제목부터가 나의 공감을 이끌었다. '맞아, 맞아!'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내가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을 작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남자들 때문에 짜증났던 일들, 너넨 이제 죽었다며 저자와 함께 남자들 욕을 실컷 하고픈 소심한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랬는데 어머나, 처음부터 통쾌했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 왜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자신들이 아는 것을 여자들은 모르는 양 떠들어대는 것일까? 여자라는 성에게 강해보이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동물적 본능일까, 아니면 작가의 말대로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하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일까. 어찌되었든,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이런 남자들의 행동은 나를 짜증나게 한다. 나는 작가와 같은 통쾌한 경험을 하진 못 했지만, 작으나마 비슷한 경험을 했다. TV에 한 때 내가 푹 빠졌던 영국 배우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내 옆에서 밥을 먹던 남자는 '저 배우가 누구냐면—' 하면서 내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 난 속으로는 반항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처음 알았다는 듯이, 당신 참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이 일화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같은 거창한 일화는 아니지만,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 남자는 왜 자신은 알지만 나는 당연히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무지한 이 여자를 계몽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그저 자기 자랑이 하고 싶었던 걸까. 다음은 나의 반응이다. 왜 나는 그 상황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남자에게 순종적이었을까.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상황에서 그 순간에는 작가도 썩 잘 대처하지 못했다고 하니,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이 틀렸다, 혹은 나도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겐 무척 어려운 일 같다. 남자들은 '맨스플레인'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그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을까. 이렇듯 나는 그저 작은 공감, 소심한 복수(이 책을 읽으며 '맞아, 맞아!'를 외치는 것이 나의 거창한 복수였다)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작가는 그 외에도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이란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는, 헤쳐나가야 하는,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각이었다. 이 책은 가볍고 통쾌한 일화로 시작하지만 강간과 폭력, 살인이라는 본질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여자는 남자의 힘이 무서워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아내를 때려 죽였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본다. 나도 맞을까 봐 말을 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이 남자는 선배는 후배를 때리는 게 당연하며 자기가 아랫사람을 폭력으로 혼내준 이야기를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는 듯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남자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가진 물리적인 힘 때문에 여자들의 자유가 억압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강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보니 정말 그랬다. 여자들은 언제나 강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고, 여자들을 위한 강간 예방책은 하도 들어서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것만 같지만, 지구 인구의 나머지 반인 남자들에게는 강간예방을 위한 교육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는 것. 강간 당하기 싫으면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지 말던가, 하는 소리는 정말 많이 들어봤다. 다 여자의 잘못인 것처럼. 그럼 왜 여자는, 섹시하게 입고 다니는 남자를 강간하지 않는가? 강간하기엔, 남자들이 덜 섹시하게 입고 다니기 때문인가? 작가는 강간 뿐만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에는, 남자들의 권리의식이 기반이 되어있다고 한다. 여자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이 남자들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하는 여자친구를 죽이고, 교회에 가고 싶어하는 아내를 못 가게 막고, 밤에 집에 가는 여자를 뒤따라가 강간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아무리 꽁꽁 싸매고 다녀도 일어날 강간은 일어난다. 강간문화에 대한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 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라고 한다. 이 본질적인 부분을 뒤집어 엎을 수 있을까? 여자들이 남자들의 물리적 힘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희망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행동이 소용없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가깝게 우리 엄마나 할머니 세대와 비교해 보더라도 여성들의 위치와 권리는 많이 신장되었다. 이런 책이 번역되고 출간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책을 읽고나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집 안에서 애나 키워야지'하는 말이, 사고방식이 사라지고 여자들이 구속에서 벗어나 표현, 행동 등 모든 자유를 두려움없이 누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위해, 남자의 자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

*아무리 사소한 대화에서도, 남자들은 자기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지만 여자들은 잘 모른다는 소리를 여자들이 자꾸만 듣게 되는 것은 세상의 추악함을 지속시키는 일이자 세상의 빛을 가리는 일이다. p20

*우리 행동의 효과는 우리가 예견하지 못한, 심지어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다. p131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말하자면 그녀의 아킬레스건이었다. p155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강간문화, 성적 권리의식 등은 많은 여성들이 매일 접하는 세상을 재정의하고 그런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어주는 언어도구들이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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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 개정판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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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감동적인 소설을 읽은 건지, 깨달음을 주는 연사의 강연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 사막을 기어코 건넌 저자의 경험은 한 편의 소설같은 이야기가 되었고, 그와 나란히 전개되는 인생에 대한 비유는 마치 내가 사막에서 무릎을 꿇고 우러러보며 듣는 강연같았다.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이 책을 읽으면 씻은 듯이 날아갔다. 이 책은 나의 구세주였다. 아직 올해가 다 가진 않았지만, 내가 읽은 책 중 올해 최고의 책은 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나를 뒤돌아보기도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내일을 위해 참고, 흘려보내면서. 대의를 위해서라면 이런 소소한 것을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신을 속이면서. 저자는 말한다. 우리 인생에서 이러한 성취나 성공, 또는 목표가 전부는 아니라고. 우리는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시간은 종종 현재에 충실하게 해주는 오아시스에서 일어난다고. 우리는, 아니 나는 현재를 버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걸까. 인생에서 성공이 과연 전부일까? 소소하게 살 순 없을까? 동물 키우면서, 책 읽고 글 쓰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성공, 성공 부르짖는 것일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패배자로 깔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 왜 성공의 기준을 획일화시켜서 그에 걸맞지 않으면 실패자로 낙인찍는 걸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 또한 어김없이 이러한 성공의 물살에 휩쓸려 떠다니는 부표일 뿐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면 초조해지고, 쉬어서는 안 될 것 같고,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모자라고, 소중한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겠지. 그런 나에게 작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 사막을 건너는 중이며,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어가도 된다, 말해주었다. 그제야 뒤돌아보았다. 나의 하루를, 나의 어제를, 나의 인생을. 나는 너무나 전전긍긍해 있었다. 언제나 스트레스 상태에 있고, 소중한 것을 사랑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렇게 앞을 향해서만 달려갔는데 남은 건 '오아시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생각해보면 친구와, 엄마와, 또 다른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지금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내 보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항상 들었다. 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나도, 친구들도, 우리 사회의 고된 면면들도 다 안타깝다.

 

 인생의 사막에서 뜨거운 샤워를 한 적이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놀랍게도 있었다. 나는 이별의 사막을 건너는 중이었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나를 괴롭히기만 할 뿐인 끝없는 질문. '도대체 왜?' 그를 잊지 못해 밤마다 찾아오는 그리움과 눈물. 하지만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런 내 마음을, 진심을 전하면서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은 후 나는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동안 나를 사막에 가둔 건 내 자신이 만들어 채운 사슬이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말했을 때, 백설공주가 사과를 토해내듯 시원했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 왜 그렇게 끙끙댔는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처음으로 맛본 '뜨거운 샤워'는 달콤했다. 이 샤워만 있다면 사막에 있어도 그리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샤워가 찾아올 거라는 걸 아니까.

 

 '사막'은 끝없이 황량한, 죽음의 장소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엔 사람도 있고, 정도 있고, 고기도 있고, 오아시스도 있고, 밤에만 볼 수 있는 별빛도 있고, 캠프파이어도 있고, 뜨거운 샤워도 있었다. 사막, 아니 인생에 이 정도만 있으면 살만 한 거 아닌가. 덤으로 나도 사막을 건너보고 싶다. 아직 체코도 못 가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은 `그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p41

*이렇듯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진다. 아마 그래서 투아레그족 언어인 타마셰크어에는 내일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49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p109

*사막을 건널 때 우린 해변은 안중에도 없었어. 남쪽으로 계속 가면서 오아시스에서 쉬는 일에만 온통 관심이 있었잖아.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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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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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서 성선설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깊은 상처>를 읽고도 치를 떨었지만, 이건 뭐, 한 마디로 끝판왕이다. 이기적이고 추악한 인간들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총출동했다. 그러나 재미있다.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고 해야 하나, 뇌 속의 이성적 부분이 작동을 멈춰버린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좋으니까 좋지, 하는 느낌이랄까. 이 책이 너무 좋은데,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싶은데, 내 머릿속엔 그저 `와` 밖에 없다. 너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와`라는 감탄사 한 마디가 열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인생은 그렇게 순식간에 바뀐다. 잘못 디딘 한 걸음, 잘못된 사람과의 잘못된 만남, 그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58

*"왜 데려와? 너희들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조각조각 해부할 게 뻔한데. 그다음엔 온 가족이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놓겠지." -테레자 p86

*"왜?" 그 자신을 괴롭히려는 것 외에 그 어떤 목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보덴슈타인 p319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거예요. 왜 그런지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보세요." -피아 p348

*"가족이라는 소속감만으로 반드시 그 사람을 감싸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요." -하이디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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