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상의 노래/이승우/민음사]

 

그의 가면이 그의 얼굴을 가렸으므로 안도했다. 도대체 그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 그는 불현듯 자기가 쓰고 있는 가면을 자기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을 뿐 무슨 가면을 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야 하는데, 그러면 자기 얼굴을 노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지만 자기가 쓴 가면을 보고 놀라서 내지르는 그녀의 뜨거운 비명을 통해 자기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알 것 같아진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냥 버틸 수 없었고, 그러자 근육과 피와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던 몸의 흥분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는 그대로 어디로든 숨고 싶어졌고, 그러나 그를 숨겨 주던 가면이 더 이상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숨을 곳이 없었고, 가면을 쓰고 있으나 벗고 있으나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가면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같은 이유로 굳이 가면을 벗을 이유 역시 없었음에도, 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겨 냈다. 그의 얼굴에서 벗겨져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그는 그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의 얼굴이 쓰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의 입에서,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보다 더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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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바느질 자국이 없는 글을 읽을 때 마음이 그저 편하지만은 않고,
자신의 수고와 안간힘의 흔적인 바느질 자국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고의 흔적, 문장의 깊이가 느껴지는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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