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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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선율처럼 걷는군’ 래리 매캐슬린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뒤따라 서점으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 모두 책은 보지 않았다.
 라헬은 공항 라운지에서 빈 의자 쪽으로 걸어가는 승객처럼 결혼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냥 자리에 앉는다’는 기분으로. 그녀는 그와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그냥 자리에 앉는 기분으로 여자는 결혼을 했다.

여자의 걸음걸이를 보고 재즈선율을 떠올린 남자와 공항라운지를 걷는 승객처럼 결혼을 선택한 여자의 관계가 얼마나 어긋나게 될 것인지,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은 서사가 아닌 비유와 표현, 그러니까 문장 그자체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으로 가득하다. 이야기의 외연은 카스트 제도라는 계급사회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갈등, 남성중심 사회에서 만연한 성차별과 같은 큰 것들이 만드는 비극이지만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되는 분위기와 비수를 꽂는 것처럼 날카로운 감정 표현이 사건이라는 큰 것보다 개인이라는 작은 것의 비극에 통탄하게 만든다.

   

 

 결혼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고 암무는 이해하고 있었다. 최소한 현실적으로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후로 평생 그녀는 평상복을 입고 하는 작은 결혼식을 옹호했다. 그게 덜 잔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덜 잔인해 보이는 결혼식이란 표현이 암시하듯 이 소설에서 행복한 여자는 없다.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다.

두툼한 책 한 권 전체가 오로지 인물들의 체념과 방조로 가득 채워진다.

 '사건을 다루는 문학과 사건의 여파를 다루는 문학.

작은 것들의 신은 단연 사건의 여파를 이야기 한다.

아니, 사건보다는 감정의 여파를 다룬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가정 폭력이라는 사건보다 그 폭력에서 느끼는 인물들의 감정이 더 섬세하게 그려지고 그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며 극복이 아닌 체념으로 비극의 마침표를 찍는다.

   

 

 어린아이였을 때, 그녀는 읽으라고 받은 ‘아빠 곰 엄마 곰’ 이야기를 곧 무시하게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아빠 곰’은 ‘엄마 곰’을 놋쇠 꽃병으로 때렸다. ‘엄마 곰’은 조용히 체념하고 그 구타를 겪어냈다.

   

 

모두를 위한 질서를 강요하는 큰 세계에서 누구하나 행복하지 않은 작은 세계의 모습이 마냥 딴 나라 이야기만 같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세계에서도 얼마나 많은 침묵과 체념이 뒤엉켜 있던가

잔인한 4월, 좋은 음악마저 사람을 눈물짓게 하고 고요한 바다는 사람을 분노하게 만든다.

빗자루도 없이 자신의 발자국을 지워야만 하는, 아니 아예 발자국을 남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작은 것들이 쏟아내는 그 슬픔의 편린들이 내게는 분노의 원천처럼 느껴진다.

   

 

 첼라가 죽고서 그는 어머니가 있던 구석자리로 옮겨졌는데 쿠타펜은 그 구석자리를 ‘죽음의 신’이 죽음을 위한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맡아둔 자리라고 여겼다. 한쪽 구석은 요리하는 곳, 한쪽 구석은 옷을 보관하는 곳, 한쪽 구석은 이불을 개켜놓는 곳, 한쪽 구석은 죽어가는 곳.
 그는 자신이 얼마나 견딜지 궁금했고, 구석자리가 네 개 이상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나머지 구석자리에서 무엇을 할지도 궁금했다. 그런 집에선 어느 구석자리에서 죽을지도 선택할 수 있을까? 

   

 

구석자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의지도 없다.

죽음의 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도 없다.

작은 것들은 겨우겨우 어느 구석자리에서 죽을지 선택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읊조린다.

버려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슬픔이 아닌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그 어떤 선동적인 글보다 이 소설 한 편이 세계를 의심하게 만들고 변화를 갈망하게 만들 수 있을까?

책의 페이지 사이를 떠돌며 끝내 문장 마지막에 자리 잡지 못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작은 신’은 공허하게 웃어대며 쾌활하게 깡충깡충 뛰어갔다. 반바지를 입은 부잣집 소년처럼. 그는 휘파람을 불었고, 돌을 발로 찼다. 그가 보인 덧없는 의기양양함의 근원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불행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눈으로 기어올라가 좌절의 표현이 되었다.

   


 

반바지를 입은 부잣집 소년처럼 쾌활하게 뛰어가는 작은 신’.

소설 속에서 작은 신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너무나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사적이고 제한적인 개인의 영혼 또는 감정을 일컫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그 작은 신이 분노의 표정이 되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소설 속 인물들이 나를 에워싸며 꼭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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