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익배 옮김 / 삼문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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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같이 여성도 최저의 생활을 갖지 못한다면 창작에 몰두하여 좋은 문학을 낳을 수 없다는 것.1년에 5백 파운드의 돈과 자기 혼자만 쓸 수 있는 방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여자들은 수천 년 동안 남자들을 본래의 크기보다 두 배나 더 크게 보이도록, 아주 마력적이고 기분 좋은 힘을 지닌 거울들로서 봉사해 왔고. 상상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데도 실제적으로는 전연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했다. [여보게, 여자가 작곡하는 건 개가 뒷발로 걷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라네. 멋지게 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해낸다는 것이 기특하지]라는 식의 취급을 받던 16세기에, 시인의 천분을 지니고 태어난 여성의 불행은 컸다.

여자란 올빼미나 부엉이 같은 생활을 보내고 짐승처럼 일하고 한낱 벌레와 같이 죽어간다고 하며, 여류 작가는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과감히 인정함으로써만이 높은 데를 향해 가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재미있다고 웃어 넘길 수 있지만 지난 날에는 문자 그대로 진지한 태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성의 의미와 위치>******

과거와는 달리 인간은 평등을 외치며,특히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 여성은 지금도 사회 전반의 곳곳에서 부당한 취급을 여전히 받고 있지만, 예전 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이라니... 우리보다 앞선 시대의 여성들을 생각해 보니, 갑자기 우울해 지고 그때의 암담했던 상황이 느껴져 오는 듯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이다.'라는 말도 있다. 여자들은 진정으로 같은 여자의 성공을 받아들일 수 없는건가. 이해해 주고 협조해 주는 것은 꼭 남자한테만 해야하는건가. 같은 여성을 이해하고 협조해서 보다 큰 일을 할 수 있게는 할 수 없는 걸까. 언제까지나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서로를 깎아내려야 하는걸까. 여성의 잉태와 양육의 역활이 모든 것을 이해받는 면죄부 같은 구실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갖는 사람은 가정을 팽겨치고 밖으로 나돌아 다녀야만 성공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건가. 차라리 아이 낳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시간과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솔직해 질 수는 없는가.

어떨때는 이 솔직함조차 용인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집중력과 인내력. 파고 드는 집착 같은 것의 결여가 아닐까. 남편과 아이들의 그늘 속에서 안주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하는게 우리 여성의 속마음이 일지도.함께 살아가는 세상, 함께 의논하고,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해결해 갈 수는 영원히 없는 걸까. 영원히 남자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여자는 그 남자를 움직이기만 하면되는 건가. 나도 같은 여성으로 자성해야 함을 느낀다. 기본 노력 자체도 하지않으며, 심각성 자체도 인식하지 못한 채. 늘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더 슬픈 것은 이용당하는 지도 전혀 모르며, 그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그게 마치 자아를 성취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인지. 알면서 그 이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위로하며 사는 것 인지. 나로서는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여자를 이해하는 건 동지인 여자.'가 되었으면...인간이란 자체를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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