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말하는 호락호락 한국사 5 - 조선 시대 1 초등 한국사 토론왕 5
문원림 지음, 김규준 그림, 이익주 감수 / 뭉치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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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한국사 토론왕 5
보고 듣고 말하는 호락호락 한국사
조선 시대 1

보고, 듣고, 말하고
또 보고, 또 듣고, 또 말하고
책을 보고 읽고 또 읽고
QR코드로 저자가 직접 들려주는 한국사 이야기
토론방을 통해 토론을 하며 말하는 한국사 책

보이는 역사, 들리는 이야기
초등 학국사 토론왕



차례
조선시대1에서는 조선의 건국 이야기부터 조선의 과학,
또 조선의 풍속과 임진왜란 까지의 일들을 들려 주고
있어요.



1장 새 나라 조선이 세워졌어
돌이 전해주는 조선의 건국이야기
조선은 왕건이 세웠던 고려를 이성계가 무너뜨리고
새로 세운 나라이지요.
경복궁은 조선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궁입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다 타버려서 고종 때
대원군이 다시 지었지만 일제가 또다시 훼손을 했고,
지금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요.
창덕궁은 두번째로 지어진 궁인데 산과 골짜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지어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궁입니다.
창경궁은 성종 임금이 선왕의 왕후들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옆에 지은 궁궐인데, 일제가 그곳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만들어 놀이 시설이 되었었죠.
경희궁은 광해군인 세운 궁으로 원래 왕족인 정원군의 집이 있던
곳인데 임금이 될 기운이 서렸다는 소리를 들은 광해군이 빼앗아서
궁궐을 지었다네요. 그후 정원군이 인조가 되어 진짜 경희궁의
주인이 되었죠.
경운궁은 왕족인 원산대군의 집이었는데 임진 왜란으로 궁들이
불타자 선조 임금과 광해군이 임시로 머물면서 경운궁이 되었다
합니다.



2장 15세기 조선은 과학 강국이지
장영실이 들려주는 조선의 과학이야기
조선시대에서 천한 신분이 관리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그걸 세종대왕이 장영실이라는 천한 신분을 재주를 신분보다
높이 봐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무릎쓰고 종3품 대호군
벼슬까지 내리며 재주를 펼치게 해주셨어요.
세종대왕은
왕권을 강화하기보다는 신하들과 잘 의논하여 함께하는 정치를
펼치려 하셨죠. 집현전을 만들어 조선을 이끌 인재를 키우셨어요.
현명한 이들을 모아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조선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우셨죠.
또 백성의 듯을 살피어 백성과 함께하기를 주저하시 않으신 분
인재를 잘 활용하는 임금으로 사람의 능력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랍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
농사를 바탕으로 한 나라여서 농산물이 얼마나 생산되는가,
또 농사 걱정을 하셨고,기우제를 직접 지내시고
생산량을 높이는 비법을 적은 책 조선 농부들의 최고의 농사 방법 모음집인

농사직설 이라는 책도 내놓으셨고,
아무리 농사 비법이 뛰어나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안되니
비의 양을 잴 수 있는 측우기
천문학자들을 명나라로 유학을 보내 그들의 앞선 천문 기술을 배워 오게
하시고는 궁궐안에 우리의 천문대를 만들 수있었고 별자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관측하는 간의와 혼천의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던 거지요.
또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책 만드는 일에도 열심하였지요.
시간과 절기를 알려주는 앙부일구, 자격루
이미 책이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앙부일구 시계와 달력의 역할을 했지요.
해가 뜨지 않는 밤이나 비 오는 날은 이시계가 먹통이여서 밤낮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든 자격루
많은 사람들이 세종 임금님의 업적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우리의 글자,
한글을 만든 것이지요, 우리의 글자가 없었다면 아직도 그 많은 한자를
외우고 잇었겠지요.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잘 알고 있죠.
글자를 만든 까닭과 만든 방법까지 자세히 적은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 되지 않았다면 문창살 무늬라는 오해를 받을뻔했다지요.
우리의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를 책 속에
담겨져 있으니 읽어보면 좋을꺼 같아요.
세계의 글자
지금의 언어학자들도 우리의 글자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며
세종 임금님을 뛰어난 언어하자로 존경하다고 합니다. 글자 수도 적고
단순하여 쉽게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을 만들어다네요.
글자란 모든 백성이 쉽게 익혀서 널리 쓰여야 한다던 우리 임금님의 뜻을
세상이알아주니 조선을 넘어 세상이 알아주는 임금님 이시네요.



3장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야
옥분이가 들려주는 조선 시대 풍속 이야기
조선은 나라의 근본으 성리학과 농사로 삼았다는데요.
성리학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농사로는 사람의 몸을 살찌우는
거랍니다.
옛날에는 국사 시간이었죠.
그때 달달달 외우고 시험문제에도 나오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했지요.
삼강오륜은 사람이 지켜야 하는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삼강이란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
오륜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군신 유의, 부부유별, 부자유친, 붕우유신, 장유유서
조선의 세시 풍속
조선은 농사를 으뜸으로 여기는 나라여서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와 음식은
모두 농사 일정에 맞춰져 있어요,
세종 임금님 때 만들어진 농사직설 과 칠정산 내외편 덕분에  달마다 어떤
놀이와 음식을 즐겼는지 알 수 있어요.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초하루인 설날, 설을 쇠고 15이이 되면
정월대보름인데 한 해 중에서 제일 크고 밝은 달이며,
머슴들의 성년식도 있었다네요. 이건 처음 알았어요,
단옷날로 백성들은 고되 농사일을 잠시 쉬며 창포에 머리 감고, 그네 뛰고,
널뛰고. 씨름도 하면서 흥겨운 놀이를 즐겼데요.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은 더운 날이라 모든 일을 접고 계곡이나 산을 찾아
더위를 이길 음식을 먹으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답니다.
7월 7일 칠석 까치와 까마귀가 만든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전설은 누구나 다 알것입니다.  기쁨과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지요.
8월 한가위 한해동안 쑥쑥자란 농작물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면서 강강술래도 하며 농사의 고단함도 풀리고 부자가 된 것
같아서 풍요료운 한가위를 지냈어요.
9월 은 중양절 제비가 강남으로 날아가고, 산에는 단풍이 들고 들에는
국화도 활짝 피어 국홪를 담고 국화전을 만들어 먹으며 단풍놀이를
즐겼답니다.
10월은 집안을 지키는 신들에게 고사를 지낸데요, 식구들이 평안하기를
빌어요. 미신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며
살았다지요.
11월 동짓날 질병을 가져오는 역귀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해서
팥죽을 먹었다지요. 역귀가 싫어하는 붉은색인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놓아 두었지요.
12월은 섣달그므 이라 하는 작은설이라고도 하지요. 떡꾹을 끓어먹고
닭이 울때까지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고 해서 자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스스로 잠들어 버리죠.
자연과 삶이 하나가 되어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
지금도 매 달 마다 아직도 하고 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는 풍습들
입니다.



4장 왜적의 침략은 조선을 뒤흔들었어
기별이가 들려 주는 임진왜란 이야기
조선이 세워진 200년 만인 1592년 4월이 넘어가는 해
조선이 세워진 이후에 왜세의 침입이 없었는데
200년 만인 1592년 4월 13일 해가 넘어갈즈음 부산진성의
앞 바다를 700척이나 넘는 일본배가 애워쌌어요.
부산 지역을 3일 만에 점령한 일본군  조정에서는 나흘만에 알았고,
나라를 지켜야 하는 관리들은 도망기가에 바쁘고, 제대로 된 군대가
없어서 급히 모은 사람들을 이끌고 일본군을 막게 되었어요.
임금인 선조는 피난길에 떠났고, 백성들은 분노했어요,
20일만에 한양에 들어온 일본군, 임금은 평양과 함경도까지 피난길에
올랐고 명나라의 지원에 매달렸다네요.
백성들은 어찌 하라고 임금을 백성들을 버리려 합니다.
그때 조용히 전쟁에 대비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 이었죠. 전라좌수사로 있으면서 전쟁 전부터 전라도
해안을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일본의 수군이 서해를 타고
올라오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일본군은 이순신 장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죠,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유명한 한산도 대첩은 백성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죠.

달아나는 척하면서 일본군을 한산도 넓은 바다로 끌어낸 다음 마치
학이 날개를 편것처럼 에웠나서 공격하는 학익진 전법을 펼쳤고, 송곳을
잔득 박은 360도 회전하는 돌격선인 거북선은 일본군의 진영을 아주
휘젓고 다녀 두려움에 떨게 했고 일본군의 배가 가라앉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는 대참패를 당했고, 당연 우리 조선군의 배는 단 한 척도
가라안지 않았지요. 완전한 승리란 바로 이런것
1597년 정유년에 다시 일본군이 쳐들어왔어요.
그유명한 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우리 군의 배는 고작 13척인데 에워싸워 들어온는 적의 배는 330척
하루에 네 번이나 바뀌는 거센 물살을 건널 수 없었던 일본군은 후퇴
이 승리를 명량 대첩이라고 하고 명량은 울돌목을 한자로 말한 거랍니다.
긴 전쟁을 끝낸 노량 해전
명나라군과 힘을 합쳐 노량 앞바다에서 밤새 도망치는 적선을 부수며
큰 승리를 앞에 두고 그만 적의 총탄에 맞고 말았죠. 전투에 영향을을
줄까봐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는 말씀을 하셨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신 이순신 장군
7년간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컸지요.
위인전이나 영화 명량을 보면서 그 긴박함, 긴장감 으 안고 봤어요.
우리 이순신 장군의 치밀하고 꼼꼼한 전략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던,
아마 다들 보셔서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조선은 고려의 뒤를 이은 나라지만 고려와의 정책이 확연히 달랐어요.
유학인 성리학을 제일로 중요시 했고, 농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인을 낮은 신분으로 보았죠.

고려와 조선은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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