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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의 하얀 우편함 푸른숲 그림책 36
아사이 유키 지음, 이와가미 아야코 그림, 양병헌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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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자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만 누르면 바로 가닿는 요즘 시대의 흔한 인스턴트 메시지가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적은 편지를 우체국에 가서 일반 우편으로 부친다. 보내는 사람은 조카바보 고모, 받는 사람은 열 살 일곱 살 조카들.


편지봉투에는 주소와 이름 말고도 고모의 마음을 담은 문구를 추가한다.

❝이 편지는 ㅇㅇ만 읽을 수 있어요❞

처음 편지를 부쳤을 때, 아이들이 이 멘트에 신이 나서 꼭꼭 숨어서 편지를 읽고 내용도 비밀이라고 하더라는 올케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조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편지로나마 아날로그 감성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또 다른 이유는 조카들이 조금 더 커 먼 훗날 고민으로 마음 앓이를 할 때, 편지를 통해 고모에게는 그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편지는 고모만 읽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조카들과 함께 읽고 싶다. 편지지에 마음을 담아 적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라라의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싶다. 수신인이 고모가 아니어도 좋으니 자기만의 하얀 우편함을 만들어 가기를. 그런 마음을 담아 다음 편지는 이 책에 동봉해서 택배로 보내야 할 것 같다.


❝라라는 매번 편지를 두 통씩 썼어요.가짜 마음을 담은 편지는 우체부 아저씨가 가지러 오는 빨간 우체통에 넣고, 진짜 마음을 담은 편지는 뒤뜰에 있는 하얀색 우편함에 넣었지요.❞


@yolko.bo_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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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부심을 발견할게 - 감정어로 그리는 표정 에세이
이옥토 외 지음 / 타이피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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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전철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 적이 있던가.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관심도 없었다. 피곤함에 짓눌리고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던 내가 찾은 해결책은 드라마, 영화 그리고 소설. 출퇴근길 스마트 폰 액정과 책에 빠져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기쁨과 슬픔은 과연 몇이나 될까.

 

유난히 업무 전화가 많이 걸려 온 오후. 그날은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어진 날이었다. 화장실에서 마주한 거울 속 빛을 잃은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는 정리되었지만 한껏 힘이 들어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제멋대로 구김살이 생긴 마음도 펴질 줄을 몰랐다. 내 마음이 힘든 날이라 그랬는지 퇴근길 전철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고 지쳐 보였다.

 

내가 전철 속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피로, 우울, 무기력을 느낀 것과 달리 당신의 눈부심을 발견할게에 담긴 글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네 명의 작가가 네 가지 감정을 관찰하고 자신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lovesome #사랑스러움 #이옥토 #33~34

예쁜 모습만 열심히 찍던 시간을 지나 어떤 모습이든 그저 사랑스럽고 귀해진다. 그가 그대로 있어 주는 것. 이렇게 살아 내 앞에서 여러 감정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드러나는 얼굴. 물감처럼 번지는 표정들. 나는 고민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하는 사람이 된다. 어느 것 하나만 고를 수 있을 리가. 사랑 앞에서 그럴 수 있을 리가. 사랑을,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내하고자 하는 사람 앞에서는 대상이 짓는 어떤 표정도 전부 사랑스러운 표정이 된다.

 

#delight #기쁨 #강혜빈 #74

슬픔이나 고통 덕분에 즐거울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더 우월하고 열등한 것은 없다. 같은 감정이라고 해서 매번 똑같은 강도로 다가오지도 않으며, 숫자로 나타낼 수도 없다. 우리의 감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과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정들을 기다리던 친구처럼 환대하면 그들도 나를 아껴 준다. 슬픔을 온전히 슬픔으로 인정하고, 피하지 않고 바라봐 주면 물에 녹듯 스르르 사라진다. 기쁨을 정확히 바라보면 무심히 지나칠 때보다 더 깊고 커다란 빛을 건넨다.

 

#sorrow #슬픔 #한소리 #157

역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 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나는 일기 예보를 챙겨 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우산이 없었죠. 그냥 머리를 푹 숙이고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때 내 머릿속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분명 비를 다 맞고 있는데, 빗물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내 안에 고이는 느낌.

 

#solitude #고독 #김이인 #190~191

자유, 충만, 이보다 좋을 수 없음, 무엇도 결여되지 않은 상태, 우주 혹은 영원과 닿아 있음,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몸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도 없는 총체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이 기분, 이 감정, 이 깨달음은 불수의적이다. 이 영역에 내 마음대로 발을 집어넣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왜, 언제 초대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오면 즐겁게 반기고 그것이 가면 다시 차분해지는 것뿐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회사도 그만두고 하고 싶던 일을 하는 지금 전철 속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면 어떤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까. 내 마음의 물결이 잠잠해진 만큼 그때 나와 마주 앉았던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기를, 부드러워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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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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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시골 가서 오순도순 살 수 있도록 준비하자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 혼자 그만둔 게 아니고 신랑도 같이.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 굴하지 않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백수 부부가 되었다. 하고 싶었던 일 하면서 먹고 살자며 그는 제빵 기술을 나는 번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하루 24시간을 붙어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이니 얼마나 좋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알다시피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기 마련이다. (웃음)

 

언제 또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겠냐 싶을 만큼 행복한 기억도 많다. 그리고 잘 지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내가 널 살아 볼게를 읽는 내내 그동안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내 말투.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할걸. 짜증 좀 줄일걸.

 

내가 널 살아 볼게는 노래하는 만수 씨와 그림 그리는 명진 씨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이야기인 동시에, 두 개의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소재를 놓고 먼저 만수 씨의 이야기 그리고 뒤이어 명진 씨의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추억 속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읽었다. 그중 공감했던 몇 개의 에피소드를 공유해 보려고 한다. ‘공감했다는 건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와 그의 모습을 보았다는 뜻이다.

 

산책(본문 14~15)

같이 살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지낼 때가 많았다. 산책은 그랬던 우리에게 햇볕 따라가기같은 것이었다. -만수

오빠와 함께한 시간이 깊어지면서 오빠 취향이 점점 내 것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책이 그중 하나다. (중략)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나조차도 모르던 나의 취향을 오빠 덕분에 찾은 게 아닐까. 정답은 잘 모르겠지만 하루 한 번 우리는 서로를 산책시켜 준다. -명진

 

프리마켓(본문 82~83)

함께 지낸 시간이 늘어갈수록 서로 할 말은 줄어든다. 그런데 이번 마켓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제품들을 준비하면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 삐치기도 하고 티격태격 말다툼도 자주 했다. 싸울 때는 언짢고 불편했지만 지나고 나니 예전보다 오히려 활력 있는 관계가 된 것 같다. -만수

이런 성격은 나의 오랜 콤플렉스다. 이제껏 난 왜 이 모양일까 하면서 무수히도 나 자신에게 상처내곤 했다. 그런데 오빠를 만나고부터 나의 이런 모습도 조금은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중략) 나는 내 부족한 것까지도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잘 때 내 옆에 있어서 좋다. 같이 산다는 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일인 것 같다. 같이 살지 않았으면 서로 부족한 부분은 감춰둔 채로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명진

 

사과나무가 있는 집(본문 140)

아침에 사과 먹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아직은 하나를 깎아놓고 절반도 먹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신맛이 나면 먹기가 어렵다. 과일 본연의 맛을 좋아하는 진이와 나는 입맛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함께 살면서 입맛 차이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만수

나는 특별히 싫어하는 과일이 없다. 게다가 내 돈으로 사 먹기 시작하면서 과일에 더 애틋함이 생겼다. 사과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과일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아침 사과는 금사과라는 말을 듣고부터는 ‘11사과습관도 자리 잡았다. 집에 사과가 똑 떨어지면 쌀이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오빠에게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한다. -명진

 

따스한 명진의 그림과 함께 두 사람의 글을 읽고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해보았다.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을 끓여 저녁을 먹었다. 책에 나온 봄동 비빔밥은 아니지만 봄동 겉절이도 곁들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했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비밀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빠도 읽어보면 좋겠어,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 라며 슬쩍 책을 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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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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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던 나는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뒤늦게 영문학에 심취하였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영문학 수업을 들었던 4학년을 인생의 많은 순간 가운데 좋았던 한때로 기억한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스콧 피츠 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은 그 시절 원서로 읽은 소중한 추억(+ 머리를 싸매고 힘겹게 읽어 내려가던 고통)과 함께 지금까지도 인생 소설로 꼽는 작품이다.

 

특히 폭풍의 언덕의 수많은 인물과 그들의 복잡한 관계는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손으로 직접 등장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며 빠져 읽었던 첫 완독 원서였다. 같은 시기에 영미 시 수업도 함께 들었는데, 그때 내 마음에 꼭 들었던 시가 바로 샬럿 브론테의 인생(Life)이라는 시였다.

 

인생은, 믿건대, 현자들이 말하듯이/그렇게 어두운 꿈은 아니에요./아침에 조금 내리는 비는/흔히 화창한 날을 예고하지요./때로는 우울한 먹구름도 끼지만,/그건 지나갈 뿐이지요./소나기가 내려 장미꽃을 피운다면,/, 비 오는 것을 왜 슬퍼하나요?

 

게다가 두 사람이 자매라니, 폭풍의 언덕작가와 제인 에어작가가 자매라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었겠는가. 그때부터 브론테 자매는 내 발표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자료 조사와 발표 준비가 조금은 더 수월했을 텐데하는 우스갯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는 샬럿 브론테가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자매의 아버지인 패트릭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마리아를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브론테 자매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상세히 서술하기에 브론테 자매의 전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편지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우리가 이제껏 읽어온 딱딱한 전기와는 거리가 멀다.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작품을 발표하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는 초판을 익명으로 출간했고, 브론테 자매는 필명으로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실체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진짜 이름 대신 커러(샬럿), 엘리스(에밀리), 액턴() 벨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처럼 모호한 이름을 선택한 것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성적 색채가 강한 기독교식 가명을 쓰는 건 양심상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딱히 우리가 글을 쓰고 사고하는 방식이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만 여성 작가들은 편견에 좌우되기 쉽다는 막연한 인상이 있었고, 비평가들이 때때로 비판을 위해 인신공격을 하며, 보상을 위해 진정한 칭찬이 아닌 아첨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본문 210, 212)

 

샬럿은 1836년 여러 편의 시를 묶어 계관 시인 로버트 사우디에게 보냈다. 로버트 사우디는 샬럿의 운문적 재능을 칭찬하면서도 문학은 여성에게 필생의 사업일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여성은 자신에게 합당한 직분에 몰두할수록 그저 교양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 문학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어지니까요라며 샬럿을 타이른다. (본문 118)

 

그러나 세 자매는 현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며 여성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웠으며(본문 19), 문학은 그들 삶의 중심이었다(본문 142).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 만큼 에밀리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샬럿이 편지에서 묘사하는 에밀리의 성향을 읽으면서 소설의 분위기와 장면, 공간적 배경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내 동생 에밀리는 황야를 사랑했다. 그 애의 눈에는 어두침침한 히스 들판에서 장미보다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광경이 떠올랐고, 검푸른 산비탈의 음침한 골짜기도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에밀리는 쓸쓸한 고독 속에서 소중한 기쁨을 무수히 찾아냈고, 자유를 적잖이,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 (본문 138)

 

작가 자신이 황야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다엘리스 벨은 그저 눈으로 보고 감상하며 그런 경관에서 기쁨을 찾아 묘사한 게 아니다. 그녀에게 고향 언덕은 단순한 자연경관 그 이상이다. 그녀는 들새처럼, 그곳의 동물들처럼, 아니면 야생화처럼, 농작물처럼 그 안에서, 옆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그녀는 그 풍경을 묘사해야만 하고 그것만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 (본문 230)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같은 저자의 책을 한 권 더 읽거나, 책에서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다음 책을 고르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읽은 뒤에는 오래전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제인 에어를 다시 꺼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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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오늘도 균형 - 반 농부 × 반 큐레이터
정광하.오남도 지음 / 차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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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내 삶의 방향성은 크게 달라졌다. ‘반농반X’란 농업으로 정말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며 작은 생활을 하는 동시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가리킨다. 나는 현재 반농반역(번역)’의 삶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처음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표지에 적힌 반 농부×반 큐레이터를 보고 생각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박물관 혹은 전시관의)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람이 쓴 책이구나.’

 

아뿔싸, 다섯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손과 눈이 멈칫했다. 저자가 정성스레 가꾸고 수확한 채소 꾸러미 사진 아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계절 채소와 맛을 소개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 한다. 때마다 수확한 작물이 요리하는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농부는 마치 작물 큐레이터 같다. (본문 8)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은 꽃비가 흩날리는 과수 정원 꽃비원을 가꾸며, 환경에 피해를 덜 주는 방식으로 직접 농사지은 채소의 맛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꽃비원 홈앤키친을 운영하는 정광하, 오남도 부부와 아들 원호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껏 읽어온 귀농·귀촌 에세이와는 매우 달랐다. 저자 정광하는 농부였던 부모님 일을 도우며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경험했다. 커서는 농업 고등학교 축산과, 대학의 농업 전공으로 농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그의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단순 체험식의 글이 아닌 현재 우리 농업이 가진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 깊이 있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규격화하기 위한 농사 기술이 미래 농업을 전부 대변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나 역시 농업을 오랫동안 공부하며 그런 식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식물 공장이라고 하면 새롭다기보다 낯설고 거부감이 먼저 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결국 소비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장 품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애초에 좋은 물건을 선택할 자유는 소비자 고유 권한이 아니던가. (본문 61)

 

소비자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심코 사 먹던 채소가 어떤 땅에서 얼마나 건강한 방식으로,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길러낸 채소가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출하되지 않고 버려지는 채소를 걱정하고 일부러 찾아 구매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농산물의 생산·유통 과정을 신경 쓰며 푸드 마일리지, 탄소 발자국 등이 적은 지역 농산물(로컬 푸드)을 구매하기도 한다.

 

농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농촌에는 이제 다른 역할을 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결성된 조직을 느슨한 연대(week ties)’라고 부르고 싶다.

느슨한 연대는 21세기 이전 세대가 중요하다고 배워 왔던 끈끈한 연대와는 반대 지점에 있는 개념으로 2020년대 라이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였다.

(중략) 나는 이 트렌드 키워드를 농촌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그룹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각자가 가진 재능을 나누면서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누군가의 강요가 없었으니 쉽게 뭔가를 기획, 실행할 수 있다. 과도한 끈끈함을 요구하지 않으며 서로를 평가하거나 서열화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서 새로운 의견도 구축이 쉬운 것이다. 이런 느슨한 조직의 가장 큰 특징 또한 서로 다름에 있다. (본문 205~206)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농업에 종사할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느슨한 연대라는 방식에 마음이 끌렸다. 나 역시 귀촌해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 각자가 가진 재능을 나누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꼭지는 계절을 느끼며 심고 가꾸는 나날이다. (본문 164~166) 내가 귀촌해서 시골살이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다. 오감을 총동원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삶. 봄에는 쌉싸름하면서도 봄 내음 가득한 봄나물을 뜯으며, 여름에는 밭에서 거둔 파릇파릇 채소로 식탁을 채우며, 가을에는 노랗게 익어 고개 숙인 벼 물결을 바라보며, 겨울에는 추위에 입김을 호호 불며 구운 고구마, 감자를 먹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


@yolko.bo_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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