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에서처럼 친구와 한참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내 편이 되어주는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깝고 끈끈해서 속까지 다 보여주고 서로에게 치대는사이가 아니었으면 했다. 나에게 결혼은 그런 것이었지만,
더이상 그런 관계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들지 않았다.
"새비 아저씨랑 새비 아주머니는 서로 친구처럼 지냈지. 새비 아저씨가 원체 그런 사람이었나봐. 도무지, 어떤경우에라도 남 위에 올라가서 주인 노릇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야. 그때는 아무리 개화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아내 위에는 올라가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던 세상이었는데도, 아저씨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어. 아저씨 고집 같은 거였나봐."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