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산만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아예 책 읽는 법을 잊어버린 느낌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책 읽기를 시도해야 할지 영 모르겠는 두어 달이었다. 친구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버지니아 울프 책을 몇 번 시도해보기도 했고, 전에 참여했던 과학책 스터디에서 정한 모임용 도서를 전자책으로 구매해 두어 번 머리말을 깨작깨작 읽기도 했지만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책을 읽고 있다고 말하려고 책 읽는 시늉으로 애쓰며 보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내가 한국어로 쓰인 종이책을 넘겨가며 읽기에 그다지 수월한 환경에 놓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 조그만 휴대폰으로 전자책을 읽을 때에도 하나쯤 좋은 점이 있다. 한 손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데, 물론 기기가 작아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제부터 저녁 때 씻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 책 읽기를 일과에 추가했다. 독서나 운동의 좋은 점은, 시작하기가 무진장 어렵지만 일단 집중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럭저럭이나마 꾸준히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는, 안 하던 짓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센트럴 런던에서 열리는 여성 독서 모임(아마 4월 초 즈음이었을 것 같다)에 약간 충동적으로 참여 버튼을 누른 덕분에 알게된 책이다. 물론 바로 전날 갑자기 들어온 번역일을 핑계로 '가지 않음'으로 결정을 바꾸기는 했지만 결제해둔 전자책은 구매목록에 계속 남아있는 거니까.

여태껏 내가 읽은 그의 유일한 장편은 『아메리카나』 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책 읽는 집중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작가가 어쩌면 가장 공들여 썼을지 모를 이야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늘 헥헥대며 억지로 달리는 사람처럼 아주 정신 없는 상태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일면은 사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보다는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주는 조금은 기만적인 성취감에 더 초점을 두니까. 『아메리카나』 가 내게 각별한 기억을 남긴 것은, 지치지 않고 재밌게 읽은 당시의 기분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 없이 책을 담았고, 한참 뒤 읽기를 '재개'할 때도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는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고 (전자)책장을 넘겨 간 소설이다. '치마만다'라는 작가 이름만으로 책을 사고 읽는 건, 나같이 독서가 명백한 지적 허영의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얄팍한 인간에게 퍽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그 여자가 보잘것없는 쓰레기란 사실이야.

두 남자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은 원시인 같은 요루바 쓰레기야.

늙고 못생긴 여자라고 들었어."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내가 치마만다를 좋아하는 건 위와 같은 제 어머니의 말에 아래와 같은 기분을 의식적으로 느끼는 올란나같은 인물을 그려내기 때문인 것 같다.

올란나는 벌떡 일어났다.

여자가 그렇게 생긴 게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늙고 못생긴"이라는 말이 아버지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싫었다.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건 아버지에게 정부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부에게 라고스 상류층이 사는 동네에다 집을 사 주었다는 사실임을 올란나는 알았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77년생인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비아프라'라는 국가가 잠시나마 존재했음을 배웠다. 영국이 제 입맛대로 조종한 탓에 나이지리아는 식민지배를 명목상으로나마 벗어난 후에도 몇 년 간 끔찍한 시간을 보낸다. 소설 속 올란나와 오데니그보는 비아프라 공화국이 나이지리아에게 완전히 항복한 후에야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데 나이지리아 군인들의 약탈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걸핏하면 총구를 문에 대고 나이지리아에의 충성을 빌미로 수탈을 일삼으며 그들은 남아있는 시민들에게서 '비아프라'의 흔적을 지워낸다. 집안 사람들을 모두 집 앞에 엎드리게 한 뒤 군인들은 숨겨놨을지 모를 '비아프라' 지폐를 찾아 샅샅이 뒤진다. 올란나는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군인을 대비해 비아프라 지폐를 전부 태워버리는데 이 때 부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오데니그보는 비아프라 국기를 접어서 바지 주머니 안쪽에 계속 보관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추억을 태우고 있어."

오데니그보가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 추억은 내 가슴속에 있어."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까지 이렇게 낭만에 빠져지낼 수 있는 오데니그보가 한 편으론 부러운 기분마저 든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를 읽으면서 이민진의 『파친코』 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파친코』 속 한수는 오데니그보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좀 있다. 두 작품이 모두 전쟁을 그린 장편 소설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인상을 준다면, 치마만다의 전쟁 소설이 갖는 거리감이나 시선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의 그것와 유사한 결이라고 느낀다. 『파친코』 를 다 읽고 난 직후에는 아쉬움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몰랐는데, 앞서 말한 두 소설에 비하면 『파친코』 는 '선자'라는 인물 한 사람에 집중해 그 주변을 좀 더 아웃포커싱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작가 이민진의 수식어가 '제인 오스틴'인 것도, 그의 소설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인 것도 좀 더 한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비겁하지만 '전쟁'을 그린 소설은 한 번 읽고 나면 마음이 좀 묵직해져서 당분간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은 피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이야기 마지막에 실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쓴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면 그가 전쟁 소설의 모범이라 소개한 심머 치노댜의 『가시 수확』 이나 치누아 아체베의 『전쟁터의 소녀들』 도 지금 곧장은 아니더라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스물스물 든다. 그가 꼬집은 이유, '작품을 읽는 동안 강의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도 인물 자신의 관점에서 당시 벌어진 사건들의 복잡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는 믿을 수 없게도 정말 독자가 그렇게 느끼도록 쓰인 소설이다.

물론 이건 작가 치마만다가,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의 제 1 독자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삼고 써내려간 덕택일 것이다.

마무리는 이 소설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든 대사로 해야겠다.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관점에서 보지 마세요.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보세요.

일부러 고통을 선택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고통을 먹기라도 할 겁니까?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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